[맛있는 이야기] “천년 이어온 한그릇”…‘미역국’ 산모 보양식서 글로벌 건강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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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에는 아주 기운이 없고 입맛이 없고. 그 씁쓸하고 맛없고 비위 안 당기는 곽탕(藿湯)을 왜 먹게 마련했을까요."
당시 산모라면 누구나 미역국을 먹었지만 정작 그 이유를 밝힌 옛 의서를 찾을 수 없다며 답답해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1681∼1763)은 '성호사설'에서 미역이 산모의 선약(仙藥·신선이 먹는 약)이지만 중국 문헌에 이 내용이 없는 것은 중국인이 그 효능을 몰랐기 때문이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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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즐긴 독특한 K 문화
새끼낳은 고래 배 들어간 사람
미역 효험 목격담 설화 전해져
쇠고기·지역생선 등 넣어 조리
생일 음식 정착…낙방 의미도
영양 풍부 해외서 웰빙식 주목

“산후에는 아주 기운이 없고 입맛이 없고…. 그 씁쓸하고 맛없고 비위 안 당기는 곽탕(藿湯)을 왜 먹게 마련했을까요.”
1935년 한의학 잡지 ‘동양의약’ 창간호에 실린 글이다. 곽탕은 미역국의 한자어다. ‘정암거사’라는 필명의 한의학자는 왜 출산 후 미역국을 먹는지 궁금했다. 당시 산모라면 누구나 미역국을 먹었지만 정작 그 이유를 밝힌 옛 의서를 찾을 수 없다며 답답해했다.
한반도 사람이 미역을 먹은 정황은 1123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 처음 확인된다. 그는 고려의 가난한 백성도 미역 같은 해산물을 귀천 없이 즐겨 먹는다고 적었다. 16세기 명나라 의학자 이시진(1518∼1593)도 ‘본초강목’에 ‘곤포갱(昆布臛)’ 항목을 둬 ‘고려미역’을 쌀뜨물에 하룻밤 담가 짠맛을 뺀 뒤 파와 소금·식초·생강·귤피·후춧가루를 넣어 끓인다고 소개했다.
조선시대 학자들은 미역국을 산모 보양식으로 먹는 게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였음을 강조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1681∼1763)은 ‘성호사설’에서 미역이 산모의 선약(仙藥·신선이 먹는 약)이지만 중국 문헌에 이 내용이 없는 것은 중국인이 그 효능을 몰랐기 때문이라 봤다. 조선 후기 만물박사 이규경(1788∼1856)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조부 이덕무가 1778년 베이징에 갔을 때 현지인에게 마른미역을 보여줘도 용도를 알지 못했다는 일화를 적었다.
같은 글에서 이규경은 산후 미역국이 식탁에 오르게 된 유래로 당시 전해지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갓 새끼를 낳은 어미 고래가 숨을 들이쉴 때 바다에서 헤엄을 치던 사람이 그 뱃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고래 뱃속에 미역이 가득 붙어 있고 산후 뭉친 피가 녹는 것을 목격했다. 간신히 빠져나온 후 이 광경을 전파하면서 사람들이 미역의 효험을 알게 돼 아기를 낳고 먹게 됐다는 것이다.
요리연구가 방신영은 ‘조선요리제법’(1921)에 미역을 불려 간장·기름을 치고 쇠고기를 넣어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이는 쇠고기미역국 요리법을 실었다. 또 홍합이나 강고도리(말린 물치다래의 살을 오이 모양으로 뭉쳐 말린 것)를 더하면 더 맛있다고도 했다. 해안지역에선 쇠고기 대신 제 고장 생선을 썼다. 제주 어촌에서는 옥돔을, 동해안 어촌에선 가자미나 도다리를, 남해안 어촌에선 돔이나 농어를 넣었다. 미역국은 지역과 살림 형편에 따라 저마다 다른 얼굴을 지녀왔다.
20세기 들어 미역국은 생일상 단골 음식이 됐다. 동시에 ‘미역국 먹었다’는 낙방·탈락을 뜻하는 관용구로 널리 쓰였다. 1907년 8월 조선통감부가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解散)’ 한 사건이 아이를 낳는 ‘해산(解産)’과 발음이 같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일제강점기 신문·잡지에 나온다. 미역의 미끄러운 성질이 낙방·탈락을 연상하게 한다는 설도 있다.
오늘날 미역국은 태평양을 건너 웰빙음식으로도 주목받는다. 2026년 7월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미국 배우 조지 클루니의 아내이자 국제 인권 변호사인 아말 클루니가 참기름과 마늘을 넣은 미역국을 매일 아침 먹는다고 보도했다. 방탄소년단(BTS) 정국이 쇠고기미역국을 즐겨 먹는다고 알려지며 해외 팬 사이에서도 다이어트와 건강관리 음식으로 관심이 높아졌다. 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미역국이 21세기에 이르러 영양과 가치를 인정받으며 세계인의 식탁으로 당당히 지평을 넓히고 있다.

주영하 음식 인문학자·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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