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간선거 결과는 투표 전 결정? 365일 '선거구 짬짜미' 시대 개막 [세계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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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보도되는 국제 뉴스를 읽다 보면 사건의 배경이나 해당 국가의 역사 등을 알지 못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그 결과 1992년 중간선거에서는 과거에 흑인 차별 문제가 심각했던 남부 지역에서 이른바 '소수자 선거구'가 줄줄이 등장했고, 유색인종 후보들이 대거 정계 입문에 성공했습니다.
초당파 정치 분석기관 쿡 폴리티컬 리포트 등 민간 연구기관들은 지난달 말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당선이 확실하거나 유력한 '공화당 선거구'가 198곳이라고 전망했습니다.
NYT는 사무엘 알리토 연방 대법관이 남부에서 소수자 투표율이 증가하는 등 "광범위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 유색인종 선거구가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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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10년마다 반복
정당이 유권자 인종·재력·성향 등 분석
자당 정치인 유리하게 선거구 그려
올해는 '흑인 선거구' 취소돼 혼전 양상
편집자주
매일 보도되는 국제 뉴스를 읽다 보면 사건의 배경이나 해당 국가의 역사 등을 알지 못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5월 9일부터 격주 금요일에 만나는 '세계는 왜'는 그런 궁금증을 쉬운 언어로 명쾌하게 풀어주는 소화제 같은 연재물입니다.
이번 총선에서는 여야가 수도권 국회의원 의석을 절반씩 가져갈 것이 확실시됩니다. 의회가 최근 선거구를 획정한 결과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호남 출신 유권자가 밀집한 지역을 묶어 신규 선거구를 다수 생성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영남 유권자가 많은 기존 선거구를 상당수 지켰습니다. 민주당 선거구는 13곳, 국민의힘 선거구는 12곳입니다.
만약 한국인이 이런 뉴스를 듣는다면 누구나 귀를 의심할 겁니다. 유권자가 투표하기도 전에 “선거 결과가 확실시되다”니 이상합니다. ‘OO당 선거구’라는 표현도 생소하죠. 무엇보다 유권자 고향을 고려해 선거구를 정한다니요?
하지만 태평양 건너 미국에선 이런 식의 보도가 실제로 가능합니다. 가상 사례에서처럼 정당이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려고 선거구를 멋대로 그리는 행태인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 합법인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게리맨더링은 1800년대 초 처음 나타난 현상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선거구를 정하는 한국에선 교과서 속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나라, 미국에선 게리맨더링이 주기적이고 공개적으로 발생합니다.
나눌까? 합칠까? 정당별 수싸움 치열
미국은 대통령 임기 중간에 연방 상·하원의원은 물론, 주지사와 주의회 의원 등 주요 지방 공직자 수천 명을 선출하는 중간선거를 치릅니다. 여당에는 국정을 평가받는 무대, 야당에는 차기 대선까지 정국 주도권을 쥘 기회입니다. 당장 오는 11월에 선거가 예정돼 있습니다.
이때 하원의원 선거가 게리맨더링에 가장 크게 좌우됩니다. 미국은 헌법에 따라 10년마다 인구총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에 비례해 주마다 하원의원 의석을 배분합니다. 한국은 헌법기관인 선관위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선거구를 정해 당파적 게리맨더링이 불가능하지만, 미국에서는 선거로 심판받아야 할 당사자인 주의회가 직접 10년 주기에 맞춰 선거구를 확정합니다. 게리맨더링을 벌일 적기인 셈이죠.
게리맨더링이 판치는 선거는 유권자가 정치인을 선택하는 정치 활동이라는 상식과 정반대로 작동합니다. 미 뉴욕대 법학전문대학원 산하 브레넌정의센터가 “정치인이 유권자를 선택한다”고 비판하는 이유입니다. 정당이 자당 정치인이 당선되게끔 선거구를 조작한다는 뜻이죠. 미국 정치권은 주민의 성향, 재력, 인종 등을 세세하게 분석해 선거구를 짜는 작업에 익숙합니다.
‘균열(cracking)’과 ‘결집(packing)’이 대표적 게리맨더링 전략입니다. 브레넌정의센터에 따르면 균열은 A정당 지지자들을 여러 선거구로 분산시키는 방식입니다. A정당 지지자가 전체 인구의 과반이 넘더라도 개별 선거구에서는 소수이니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결집은 A정당 지지자를 한 선거구에 몰아넣는 방식입니다. A정당은 해당 선거구에서만 80, 90% 득표율로 압승하고 나머지 선거구에서 줄줄이 패합니다.

흑인, 히스패닉만 모인 선거구 만들기도
인종을 고려한 선거구 획정이 반드시 민주주의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은 연방 투표권법이 1965년 시행 당시부터 흑인 등 사회적 소수자 유권자의 참정권을 보장해 왔다고 강조합니다. 투표권법 제2조는 인종, 피부색 등을 이유로 유권자의 투표권을 침해하거나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히스패닉, 아시아인 유권자 표를 사표로 만드는 게리맨더링을 막았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소수자가 유권자 과반을 차지하도록 선거구를 그리는 것은 허용합니다. 소수자를 대표하는 후보가 당선 가능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뜻이죠.
특히 미 의회는 1982년 소수자 참정권을 더 강화하도록 투표권법을 개정했습니다. 정치적 의도를 불문하고 선거구 획정 결과가 소수자 유권자의 참정권을 축소한다면 해당 선거구는 무효입니다. 그 결과 1992년 중간선거에서는 과거에 흑인 차별 문제가 심각했던 남부 지역에서 이른바 ‘소수자 선거구’가 줄줄이 등장했고, 유색인종 후보들이 대거 정계 입문에 성공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소수자 선거구 바깥에서 공화당 후보들이 압승하는 결과가 나타났지만 1992년 중간선거는 미국 소수자 역사에 기념비적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당시 정립한 선거구 지형도는 최근까지 이어졌습니다. 양당은 중간선거 때마다 이를 바탕으로 선거 전략을 수립했고 올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재 하원의원 435석 중 공화당이 219석을, 민주당이 212석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어느 당이든 과반(218석)을 얻어야 하원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초당파 정치 분석기관 쿡 폴리티컬 리포트 등 민간 연구기관들은 지난달 말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당선이 확실하거나 유력한 ‘공화당 선거구’가 198곳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민주당 선거구는 194곳입니다. 양당 세력이 비등한 선거구는 43곳으로 이들 지역에서는 양당이 막판까지 소송을 무릅쓰며 자당에 유리한 선거구를 그립니다. 게리맨더링 최전선인 것이죠.

365일 게리맨더링 시대 개막
올해 중간선거는 게리맨더링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을 전망입니다. 게임의 규칙을 뒤흔드는 이례적 사건이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미국 시민사회에서는 올해처럼 치열한 시기가 없다는 탄식이 쏟아집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두고 “연중 무휴 선거구 획정 시대가 열렸다”고 논평했습니다.
게리맨더링 과열 조짐은 지난해부터 나타났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청을 받은 텍사스주 주의회가 인구총조사 후 5년 만에 공화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다시 그린 겁니다. 양당이 암묵적으로 지키던 10년 주기 규칙을 깨뜨린 것이죠. 이를 기점으로 양당은 미국 곳곳에서 중간선거 전 선거구를 다시 그린다고 나섰습니다. 케네디스쿨은 이른바 ‘바닥을 향한 경주(race to the bottom)’가 시작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진보적 연구기관들은 이 경주의 목표가 민의를 선거에서 고르게 반영하는 데 있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한 정당이 주에 배분된 하원의석을 독식해야 경쟁이 끝난다는 겁니다. 실제 올해 중순부터는 도처에서 선거구 획정 관련 소송전이 벌어졌습니다. 민주당이 민주당 선거구를 늘리면 공화당이 이를 취소하고 기존 선거구를 인정해 달라고 법원에 호소하는 식입니다. 반대 경우도 빈번합니다.
최대 이변은 ‘소수자 선거구 무력화’
무엇보다 미 연방 대법원이 최근 30년간 이어진 선거구 획정 관례를 뿌리째 뒤흔드는 판결을 지난 4월 내놓으면서 게리맨더링이 전례 없이 격화했습니다. 루이지애나주 주의회가 소수자(흑인) 선거구를 획정하면서 인종적 요소를 불법적으로 이용했다고 판시한 겁니다. 투표권법 제2조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앞으로 소수자 선거구를 만들거나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워진 것이죠. NYT는 사무엘 알리토 연방 대법관이 남부에서 소수자 투표율이 증가하는 등 “광범위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 유색인종 선거구가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고 전했습니다.
하원 탈환이 유력했던 민주당은 뜻밖의 일격을 당한 처지입니다. 기본 선거 전략이 소수자 선거구를 발판으로 경합 지역을 공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민주당은 버지니아주에 민주당 선거구를 늘려 손실 만회를 시도했지만 이 역시 무산됐습니다. 버지니아주 대법원이 민주당이 신설한 선거구를 5월 초 취소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버지니아에서 공화당과 미국에 거대한 승리가 찾아왔다."
반면 미국·이란 전쟁 수렁에서 허우적대던 공화당에는 희망이 돌아왔습니다. 두 대법원 판결을 적극 활용한 결과, 남부 지역에서 소수자 선거구가 줄줄이 해체됐거나 축소됐습니다. 앨라배마주 흑인 선거구가 2곳에서 1곳으로 줄었고, 테네시주 내 유일한 흑인 선거구는 3곳으로 쪼개졌습니다. 쇼마리 피겨스 민주당 하원의원은 NYT에 “앨라바마주 흑인의 정치적 대표성이 1950, 1960년대로 돌아갔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미국 사회가 게리맨더링을 완전히 용인한 것은 아닙니다. 하원이 직접 게리맨더링을 완화하는 법안을 2021년 만들기도 했습니다. 법 제정은 무산됐지만 게리맨더링을 억누르려는 시도가 항상 있었던 것이죠. 특히 학계는 정치권이 유권자 정보를 과거보다 쉽고 빠르게 대량으로 확보하는 추세를 우려합니다. 케네디스쿨은 정당들이 유권자 집단을 입맛대로 쪼개고 있다면서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대선이 있는) 2028년까지 아마도 모든 주가 바닥을 향한 경주에 돌입할 겁니다. 양측 모두 물러서지 않고 최대한 많은 의석을 짜내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주, 일리노이주에서 공화당 의석이 0석인 지도를 그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오렌지들에게서 짜낼 즙이 아직 남은 것이죠. 그 결과, 이상한 지도가 그려지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치적 결과가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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