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생존자’에서 ‘장애인 인권 화가’로··· 김근태 화백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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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18 민주화운동의 비극적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시키며 평생을 가장 낮은 곳의 이들을 그려온 '장애인 인권 화가' 김근태 작가가 1일 별세했다.
고인은 1980년 5·18 당시 23세의 나이로 옛 전남도청 정문을 지키던 오월 시민군이었다.
목포 고하도 재활원에서 만난 지적장애인들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 고인은 '가장 낮은 자를 담는 것이 곧 5·18 정신'이라는 신념으로 세계 유일의 지적장애인 전문 화가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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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18 민주화운동의 비극적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시키며 평생을 가장 낮은 곳의 이들을 그려온 ‘장애인 인권 화가’ 김근태 작가가 1일 별세했다. 향년 69세.
고인은 1980년 5·18 당시 23세의 나이로 옛 전남도청 정문을 지키던 오월 시민군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홀로 살아남았다는 지독한 자괴감과 트라우마 속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등 깊은 방황을 겪었다. 이후 시련 속에서 한쪽 눈의 시력과 청력을 잃는 신체적 고통까지 겹쳤으나, 그는 붓을 잡으며 절망의 끝에서 다시 일어섰다.
목포 고하도 재활원에서 만난 지적장애인들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 고인은 ‘가장 낮은 자를 담는 것이 곧 5·18 정신’이라는 신념으로 세계 유일의 지적장애인 전문 화가의 길을 걸었다. 100호 캔버스 77개를 이어 붙인 100m 대작 ‘들꽃처럼, 별들처럼’을 비롯해 수많은 군상 작품을 남겼으며, UN 본부, 파리 유네스코, 평창 패럴림픽 등 세계 무대에서 인권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 눈은 잃었지만 그림은 잃지 않았다”며 오직 마음의 눈으로 희망을 그려내던 고인은, 40년 만에 자신이 지키던 옛 전남도청 자리(국립아시아문화전당)로 돌아와 대규모 전시를 선보이는 등 마지막까지 예술을 통한 치유와 화합의 유산을 남기고 별이 됐다. 빈소 목포 금호장례식장 302호, 발인 3일.
김현주기자 5151k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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