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충분했던’ 말씀… “강의 끝나면 짜장면 먹으러 가세”[그립습니다]

2026. 9. 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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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대 등에서 후학을 기르며 수필을 쓰셨던 다운(茶雲) 정진권 선생님과 함께 한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선생님과는 소천하기 몇 년 전부터 한 달에 한두 번 만났다.

어쩌면 선생님께서는 이미 짜장면 한 그릇에 담긴 정을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함께 강의를 마치고 허기를 달래며 마주 앉아 먹는 짜장면 한 그릇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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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다운(茶雲) 정진권(1935~2019) 수필가(상)
정진권(가운데) 교수가 지난 2019년 타계하기 보름 전 흥사단 강당에서 강연을 할 때, 필자(왼쪽) 등 후학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국체육대 등에서 후학을 기르며 수필을 쓰셨던 다운(茶雲) 정진권 선생님과 함께 한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선생님과는 소천하기 몇 년 전부터 한 달에 한두 번 만났다. 내가 한 감리단에 속해 있었는데, 현장소장 사무실 캐비닛에는 이름도 생소하고 맛도 알 수 없는 다국적 위스키가 다양하게 늘 비치되어 있었다. 소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중 하나를 보듬고 선생님을 만나러 다녔다.

다운 선생님은 취기가 들면 “매원(梅園), 덕계(德溪) 선생과 함께 수필계 미꾸라지 3인방인데, 이제 나 혼자만 남았다”고 허전해 하시며 그분들과 있었던 문학계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들려주셨다. 그 말씀을 들을 때면 나는 문학이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쌓이는 기억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정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2019년 2월 어느 날, 다운 선생님께서 서재를 정리하고 싶다며 나를 댁으로 오라고 부르셨다. 책 몇십 권만 곁에 두고 나머지는 도서관으로 옮겨갔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수백 권의 책을 내가 속해 있는 도서관에 기증하게 되었다. 책을 옮기고 나니 서재가 허전해 보였다.

며칠 뒤 작은 책장을 마련해서 고서적 공간을 꾸며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며 쇠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나는 다운 선생님의 명수필 ‘짜장면’을 생각하며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러는 게 아니다. 쇠고기로 대접하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선생님 내외분과 함께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그날 짜장면은 지금도 내게 특별한 음식으로 남아있다. 음식 맛 때문만은 아니다. 오래 알고 지낸 스승과 제자가 마주 앉아 한 그릇 짜장면을 나누며 웃고 이야기하던 그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때 그것을 알지 못했다. 사람은 언제나 마지막인 줄 모르고 평범한 하루를 살아간다. 그래서 지나고 나서야 그날 한마디, 한 끼, 한 번의 악수가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깨닫는다.

짜장면을 먹을 때, 5월에 ‘피천득 문학 새로 읽기’가 흥사단 강당에 있을 예정인데 한 시간 정도 강의를 부탁하며 정정호 회장 뜻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늙은이가 무엇을 잘하겠느냐? 젊은 사람이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내 고집도 황소고집이어서 결국 승낙을 받아냈다. 계좌번호를 여쭈니 스승에 관련한 강의를 하는데 어떻게 강사료를 받을 수 있겠느냐며 사양하셨다. 나는 계좌로 보내는 일도 사무총장 직무 중 하나라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럼, 강의 끝나면 짜장면 먹으러 가세.” 나는 그 말이 오래 남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선생님께서는 이미 짜장면 한 그릇에 담긴 정을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거창한 식사도, 값비싼 음식도 아니었다. 함께 강의를 마치고 허기를 달래며 마주 앉아 먹는 짜장면 한 그릇이면 충분했다. 문학도 그런 것이 아닐까. 어려운 이론이나 화려한 수사보다 결국 사람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은 사람 체온이 담긴 한마디와 한 장면인지도 모른다.

5월 9일, 흥사단 3층 대강당이 좁았다. 방청객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사회는 제물포고등학교 제자인 정정호 교수가 맡았다. 고교 시절 은사이니 두 분은 기쁨이 충만했을 터. 세미나에 참석한 회원들은 이런 사제 관계를 소개할 때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

김진모(금아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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