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장진영, 떠나기 나흘전 ‘법적 부부’ 됐다…남편은 유산 대신 ‘마지막 사랑’ 택했다

배우근 2026. 9. 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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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나기 불과 나흘 전, 배우 고(故) 장진영은 오랜 연인이던 김영균 씨와 법적으로 부부가 됐다.

장진영의 사망으로 법적 배우자가 된 김씨에게 상속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지만, 김씨는 상속과 관련한 모든 권리를 고인의 부모에게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김씨는 소속사를 통해 자신과 장진영이 하나와 같았으며, 아픈 길을 혼자 보내게 할 수 없어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었다는 심경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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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당시 모습. 사진|SNS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세상을 떠나기 불과 나흘 전, 배우 고(故) 장진영은 오랜 연인이던 김영균 씨와 법적으로 부부가 됐다.

1일은 장진영이 세상을 떠난 지 17년 되는 날이다. 장진영은 2009년 9월1일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37세.

그의 마지막 시간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랑이 있었다. 장진영과 김씨는 2008년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장진영은 같은 해 위암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투병 중인 연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장진영의 마지막 생일이 된 2009년 6월14일 청혼했고, 두 사람은 한 달여 뒤인 7월26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귀국 후 장진영의 병세가 악화됐다. 김씨는 8월28일 서울 성북구청을 찾아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김씨가 직접 구청을 찾았다. 장진영이 세상을 떠나기 나흘 전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연인에서 법적인 부부가 됐다. 그러나 결혼생활에 주어진 시간은 단 나흘뿐이었다. 장진영은 9월1일 끝내 눈을 감았다.

연합뉴스


남편 김영균 씨의 부친은 김봉호 전 국회부의장이다. 며느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김 전 부의장은 “혼인 소식에 놀랐지만 아들의 선택은 장진영을 위해서 아주 잘한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 전 부의장은 10대, 12~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제15대 국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김영균 씨는 그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사업가와 대학교수로 활동했고 20대 국회의원 총선에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이들 부부의 혼인신고 사실은 장진영의 별세 이후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소속사 예당엔터테인먼트는 장례식장에서 브리핑을 열고 두 사람의 결혼과 혼인신고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또 하나의 사실도 공개했다. 장진영의 사망으로 법적 배우자가 된 김씨에게 상속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지만, 김씨는 상속과 관련한 모든 권리를 고인의 부모에게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소속사는 관련 서류 작업까지 마쳤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씨는 소속사를 통해 자신과 장진영이 하나와 같았으며, 아픈 길을 혼자 보내게 할 수 없어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었다는 심경을 전했다.

사진|MBC


장진영이 남긴 것은 사랑 이야기만이 아니다.

1993년 미스코리아 충남 진으로 선발된 그는 배우로 전향한 뒤 영화 ‘반칙왕’을 시작으로 ‘소름’, ‘오버 더 레인보우’, ‘국화꽃 향기’, ‘싱글즈’, ‘청연’,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에 출연했다.

특히 ‘소름’과 ‘싱글즈’로 두 차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당대 대표 여배우로 자리 잡았다. 마지막 드라마는 2007년 SBS ‘로비스트’였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이름은 이어졌다. 장진영은 투병 중 모교인 전주중앙여고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기부의 뜻을 남겼다.

아버지 장길남 씨는 딸의 뜻을 이어 2010년 장진영의 아호를 딴 계암장학회를 설립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했다. 2011년에는 전북 임실에 ‘장진영 기념관’도 세웠다.

그러나 아버지마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딸 곁으로 떠났다. 장길남 씨는 2024년 5월 장진영의 15주기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기념관을 찾았다가 돌아오는 길에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별세했다. 향년 89세.

장진영이 떠난 지 17년. 그가 남긴 영화는 여전히 스크린에 남아 있고, 투병 중에도 놓지 않았던 사랑과 나눔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특히 세상을 떠나기 나흘 전 법적 부부가 된 두 사람의 마지막 선택은 17년이 지난 지금도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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