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이 매달 학부모에 편지…‘범준쌤’의 11년째 “신뢰 쌓는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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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3학년 1반 담임 최범준입니다."
부산 동래구 학산여중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최범준 교사(38)는 새 학년이 시작되는 지난 3월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를 학부모에게 보냈다. 최 교사가 매달 쓰는 '월중 학부모 편지'는 그가 담임을 맡은 학급의 모든 학부모에게 학생들의 손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지난 26일 학산여중에서 만난 최 교사는 "물론 학급 학부모님에게 같은 내용으로 나가긴 하지만, 편지는 일대일 관계에서 전해지는 것이라는 특수성이 있다"며 "딱딱한 가정통신문과는 달리 나에게만 말을 거는 것 같은 특별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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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거는 듯한 특별한 느낌 전달”

“안녕하십니까, 3학년 1반 담임 최범준입니다.”
부산 동래구 학산여중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최범준 교사(38)는 새 학년이 시작되는 지난 3월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를 학부모에게 보냈다. 최 교사가 매달 쓰는 ‘월중 학부모 편지’는 그가 담임을 맡은 학급의 모든 학부모에게 학생들의 손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최 교사는 처음 교단에 섰던 2016년부터 지금까지 이 편지를 쓰고 있으며, 2022년부터는 자신의 손글씨로 직접 만든 폰트로 편지를 출력하고 있다.
학부모 편지에는 교실의 생생한 풍경이 자주 담긴다. 현장체험학습에서 있었던 일, 체육대회를 준비하며 생겼던 일, 시험 기간에 운영한 ‘온라인 독서실’(화상 앱을 통해 여러 사람이 각자 공부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함께 집중하는 행위)의 모습, 시험을 앞두고 몰래 준비한 학부모들의 영상 편지를 받고 눈물바다가 됐던 교실 모습, 교실 내 책상의 구성을 어떻게 바꿨는지 등. 최 교사는 편지를 쓰기 시작할 때 그달에 학생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을 법한 장면을 떠올린다. 해가 갈수록 학교와 학부모 간 담장은 높아져 가지만, 학부모들은 덕분에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조용하게 쌓이는 신뢰는 덤이다.
왜 하필 편지일까. 지난 26일 학산여중에서 만난 최 교사는 “물론 학급 학부모님에게 같은 내용으로 나가긴 하지만, 편지는 일대일 관계에서 전해지는 것이라는 특수성이 있다”며 “딱딱한 가정통신문과는 달리 나에게만 말을 거는 것 같은 특별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최 교사가 보내는 편지의 표면적인 수신자는 학부모지만, 실질적으로 닿길 원하는 수신자는 학생이기도 하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보다 보면 많은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싶은데, 그걸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만약에 학생에게 직접 쓰는 편지라면 읽지 않고 내버려두는 경우도 많을 텐데, 학부모에게 전달하라고 하면 혹시나 무슨 내용이 있을까 먼저 읽어보더라고요.”
최 교사 역시 중학교 2학년 시절 담임 교사의 ‘편지 같은 글’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를 자주 일으켰던 아이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은사는 그를 ‘데미안’과 ‘삼국지’를 사랑하는 문학 소년이자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아파하며 성장했던 제자로 기억했다. 어느 날 그의 은사는 학급 아이들 전원에게 각자의 장점을 세 가지씩 써준 쪽지를 나눠줬다. “저에게 글솜씨가 뛰어나고,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있으며, 시원시원하게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써주셨어요. 단점 투성이라고 생각했던 저에게서 가까이에 있는 어른이 장점을 봐줬다는 것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서 교사를 꿈꾸게 됐고요. 그 장점을 적은 쪽지는 아직 코팅해서 보관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월중 학부모 편지’의 원형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편지를 받아든 학부모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교실 모습이 잘 그려져 안심하고 보낼 수 있었다”, “선생님 덕분에 아이 학교 생활을 더 잘 들여다보게 될 수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먼저 몰래 편지를 읽어본 학생들도 편지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2023년 최 교사의 학급 학생이었던 우지현(부산 중앙여고 3학년)양은 “중학교 3학년 때 진학 문제로 한참 예민해지고 부모님에게도 투덜대던 때였는데, 범준쌤이 보내준 편지로 부모님과 학교 생활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됐다”며 “그 과정에서 부모님도 저에 대해 많이 이해하시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같은해 같은 학급이었으며, 교사를 꿈꾸는 이다인양도 최근 최 교사에게 보낸 답편지에서 “선생님께서는 편지를 통해 최고가 아닌 최선을 사랑한다고 했다. 주위 어른과 친구들이 최고가 돼야 한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최선을 바라봐주는 어른이 있음에 힘과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편지에는 마냥 따뜻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두 동화 같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교우관계에서 소외되거나 의도적으로 배제되는 학생이 생기기도 하고, 도난 문제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는 특정 학생이 드러날 만한 사건은 기술하지 않되, 교실 내 갈등이나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이 일어났을 경우 편지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점을 짚기도 한다. “‘그러기 쉽다’라고 해서 그렇게만 살아간다면, 인간으로서 교육받는 것을 포기하고 짐승으로서 사육당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사육당하는 길로 들어서지 않기를 바랍니다.”(2022년 6월의 편지)
무엇보다 그가 생각하는 교실은 “무균실이 돼서도, 될 수도 없는 공간”이다. 아이들이 교실에서만큼은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의 갈등에 충분히 노출되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학교 현장에서 모든 문제가 될 상황을 금지하거나 피하는 방식의 대응이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갈등을 다루는 법을 배울 기회를 빼앗고 있다고 진단했다.
물론 갈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그도 오해를 받기도 했다. 교내에 폐회로텔레비전(CCTV)를 더 달게 된 경위에 관해 설명하는 편지를 썼다가, 한 학부모로부터 “우리 아이를 저격한 것이 아니냐”는 항의를 받았다. 어떤 해에는 학생들 간 갈등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학부모로부터 “편지에서만 사람 좋은 척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는 ‘편지 쓰기가 위선적인 행위인가’라는 고민으로 결국 그 해 편지 쓰기를 중단했다. 그러나 최 교사는 여전히 편지가 갈등을 예방하는 완충재 역할을 하고,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낼 수 있는 ‘말 걸기’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일부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던 어떤 해가 있었거든요. 내 능력과 성품은 남을 판단할 때 쓰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어요. 이후에 그런 친구들의 태도 때문에 어려움을 느꼈던 학생이 먼저 상담을 신청해오기도 하고, 그 학생을 대하는 반 전체의 분위기가 좀 누그러들기도 했습니다.”
최 교사는 교권 침해와 학부모 민원 우려로 교사들이 점차 학부모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언론에 비치는 것만큼 교직 분위기가 얼어붙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교사 개인 연락처나 에스엔에스(SNS)를 통한 민원 접수 등을 금지하거나, 개인 번호가 아닌 업무용 ‘투폰'을 쓰게 하는 등 학부모와의 소통 창구를 점차 차단하는 최근의 흐름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교육 활동에 대한 정당한 보호는 필요하지만, 소통 자체를 막는 제도는 교사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마치 사람들이 인공지능 상담사와 한참 씨름한 뒤 인간 상담사와 연결되면 격앙되는 것처럼, 오히려 그런 방식 때문에 화가 난 상태의 학부모님을 만나게 될 확률을 높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 7월 자신이 쓴 편지를 모아 책 ‘교실이 무너졌다고 생각할 당신에게’(느린서재)를 출간했다. 어찌 보면 내밀할 수 있는 편지를 책으로 펴낸 이유에 대해 “이름 없는 선생님들 중 이렇게 애쓰는 선생님들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교실은 여전히 믿을 만한 공간이라는 메시지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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