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시간 버틴 다섯살 마니샤 “곰인형 주세요”

카트만두/김명진 기자 2026. 9. 1.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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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 겪은 네팔
김명진 기자 르포
31일 카트만두 트리부반교육대병원 소아과 병동에서 홍수 발생 엿새만에 구조된 마니샤 우차이 마가르가 병상에 누워있다. /김명진 기자

네팔 북부 바그마티주(州) 라수와 지역에서 대홍수가 발생한 지 엿새째를 맞은 31일(현지 시각), 이번 홍수로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이 57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참사 속에서도 생환(生還) 소식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8일에는 홍수가 휩쓸고 간 라수와의 건물 잔해 밑에서 다섯 살배기 여자아이 마니샤 우차이 마가르(5)가 구조됐다. 급류에 쓸려간 지 60시간 만이었다. 마니샤를 포함해 지금까지 홍수 현장에서 구조된 사람은 8000명이 넘는다.

지난 26일 아침, 라수와 티무레에 사는 마니샤는 집 안에서 놀고 있었다. 엄마는 마니샤에게 비스킷을 쥐여준 뒤 집 뒤편 밭으로 시금치와 파를 뜯으러 갔다. 이들이 10년째 살아온 강변 마을은 이날 아침도 평온했다.

그런데 갑자기 굉음이 들렸다.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높은 곳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마니샤 엄마가 뒤를 돌아보자 거대한 물이 마을을 향해 덮치듯 밀려오고 있었다. 그는 집을 향해 “내 아이! 내 아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딸이 있던 집도 순식간에 급류에 휩쓸렸다.

마니샤 엄마는 이후 딸을 찾아 사람들이 떠내려 간 트리슐리강(江) 일대를 헤맸다. 사흘 가까이 아무런 소식이 없자 “아이 시신조차 찾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홍수가 난 지 약 60시간 만에 구조대가 무너진 건물 잔해 밑에서 마니샤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구조대는 잔해 속에서 들려온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희미한 소리에 돌과 진흙, 부서진 목재를 걷어낸 끝에 아이를 구조했다.

31일 카트만두 트리부반교육대병원 소아과 병동에서 만난 마니샤는 침대에 누워 머리맡의 흰 곰 인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쪽 이마와 왼쪽 눈두덩이, 코와 뺨에 앉은 딱지가 수마가 할퀴고 갔음을 떠올리게 했다. 마니샤는 코에 관을 꽂고 왼팔에는 깁스를 한 채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구조된 지 이틀 만에 엄마를 만난 마니샤는 엉엉 울기만 할 뿐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아이가 이날 처음 입을 열어 “엄마, 곰 인형을 주세요”라고 했다. 모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내 가족도 살아 있었으면...” 하며 울먹였다.

살았지만 온몸이 부상 31일(현지 시각)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교육대병원에서 만난 생존자 람 프라사드 타루씨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발전소 한국 직원들, 호각 불며 잠자던 야간 근무조 대피시켜”

지난 26일(현지 시각) 네팔 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대홍수는 한국인 직원들이 근무하던 ‘어퍼 트리슐리 1’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도 덮쳤다. 보테코시강(江) 상류에 있는 발전소 건설 현장엔 두산에너빌리티(16명)와 한국남동발전(3명) 소속 한국인 직원 19명이 있었다. 이 가운데 두산에너빌리티 직원 10명은 구조됐지만 나머지 9명(두산 6명, 남동발전 3명)은 실종 상태다. 구조된 두산에너빌리티 직원 10명 중 현장소장 A씨를 제외한 9명은 31일 귀국했다.

A씨는 홍수가 덮쳤을 때 파워하우스에서 발전 설비로 들어가는 터널 안에 있었다고 했다. 지난 30일 카트만두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난 A씨는 “사고 소식을 듣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사방에 물보라가 쳐 앞이 보이지 않았다”며 “강 건너편에 한국인들이 근무하던 캠프 사무동과 숙소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홍수가 지나간 뒤 3~4시간이 지나서야 현장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A씨 등 구조된 직원들이 주로 머물던 파워하우스는 비교적 지대가 높아 급류를 피한 것으로 보인다. A씨는 다른 한국인 직원 9명과 함께 지대가 높은 발전 시설로 대피했다가 구조됐다. 이곳에는 한국인 10명과 네팔 현지 근로자 등 450명 이상이 함께 머물렀다고 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사무동과 직원 숙소 등은 급류에 휩쓸렸다. 실종 상태인 한국인들이 사고 당시 정확히 어느 지점에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AFP 통신에 따르면, 어퍼 트리슐리 1 터널에서 31일 시신 한 구가 발견됐지만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본지가 만난 생존자들은 몰아닥친 물이 “검은 벽 같았다”고 했다. 31일 카트만두 트리부반교육대병원에서 만난 니마 도르제 타망(25)씨는 “마을 전체가 먼지로 뒤덮이더니 굉음과 함께 검은 구름 같은 것이 강 위로 밀려왔다”고 했다. 그는 “강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시멘트를 섞은 물 같았고 냄새도 고약했다”고 했다.

대홍수 한가운데서 버틴 ‘기적의 집’… 일가족 모두 구조 지난 26일(현지 시각) 네팔 대홍수에도 살아남은 2층집. 주변 집은 전부 흙탕물에 휩쓸려 갔지만 이 집만 그대로 서 있다. 홍수 당시 찍은 영상에 이 모습이 담겨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집 안에 있던 일가족은 모두 구조됐다. /소셜미디어 X

한국인들이 실종된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타망씨는 홍수가 들이닥쳤을 때 근처 마을에 있었다. 강 수위를 살펴보러 가다가 급류에 떠밀려온 돌에 맞아 다리가 부러졌다. 걸을 수 없었던 그는 강가에서 2시간가량 버텼다. 이후 아버지와 형이 찾아왔지만 도로가 끊겨 빠져나오지 못했고, 그 자리에서 하루를 더 보낸 뒤에야 네팔 당국에 구조됐다. 타망씨 친척 누나들도 발전소 현장 식당 주방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는 “홍수 당시 한국인들이 호각을 불고 깃발을 흔들며 야간 근무 직후 자고 있던 직원들을 대피시켰다고 누나에게 들었다”고 했다.

함께 있다가 생사가 갈린 가족도 있었다. 리뚜 덩골(32)씨 세 자매와 어머니, 사촌 동생 등 6명은 홍수가 닥쳤을 때 네팔·중국 국경 지역에 있는 가건물 카페에 있었다. 덩골씨는 “밖으로 나가 보니 이미 물살이 거셌다”며 “가족들에게 도망치라고 외치는 사이 건물이 통째로 휩쓸렸다”고 했다. 언니는 먼저 몸을 피했지만 덩골씨와 동생은 각각 다리와 눈을 다쳤다. 사촌 동생은 강 하류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어머니는 실종 상태다.

생사를 가른 건 신이었을까. 중국계 수력발전 회사에서 목수로 일하는 람 프라사드 타루(35)씨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기숙사로 향하던 중 거대한 물길에 휘말렸다. 타루씨는 “1.5㎞쯤 떠내려갔다”며 “물살 속에서 발버둥 치다가 나무뿌리를 붙잡고 가까스로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했다. 라즈 미서카르마(28)씨도 급류에 휩쓸려 내려가다 함께 떠내려오던 나무를 붙잡았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발버둥 치던 그가 정신을 차려 보니 아내와 아기가 보이지 않았다. 미서카르마씨는 아직 두 사람을 찾지 못했다.

정부와 두산에너빌리티는 31일 헬기와 육상 수색팀을 투입해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두산에너빌리티 측은 이날 오후 2시쯤 헬기를 띄워 실종자들이 근무했던 사무동과 인근 댐 일대를 살폈다. 당초 헬기 2대를 투입하려 했지만 네팔 당국으로부터 1대만 이륙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소방청 인원 9명으로 구성된 육상 수색팀도 이날 현장으로 출발했다.

네팔 당국은 이번 홍수로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이 31일 기준 4247명(외국인 592명), 사망자는 최소 903명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집계한 티베트 지역 사망자 16명, 실종자 546명(외국인 261명)과 합치면 전체 사망자는 최소 919명, 실종자는 4793명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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