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당겨쓰는 한화, 젊은 투수들 무덤 됐다

프로야구 한화의 왼손 투수 황준서(21)는 지난달 30일 NC전에서 84일 만에 선발 등판했다. 최근 구원 투수로만 나서다 팀의 5연패 사슬을 끊는 중책을 맡았지만, 홈런 포함 안타 7개를 얻어맞고 4점을 내주며 3이닝 만에 강판됐다. 7-7로 맞선 9회엔 지난 시즌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김서현(22)이 등판했는데, 10회 결승 적시타를 허용하는 등 1과 3분의 2이닝 3실점(1자책)으로 패전 투수가 됐다. 2023·2024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출신인 두 선수가 올해 거둔 승리는 단 2승에 불과하다.
고교 시절 ‘초특급 유망주’로 꼽히며 한화에 입단한 강속구 투수 4인방이 올해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한화는 지난해를 제외하고 수년간 최하위권을 전전하며 문동주(23), 황준서, 김서현, 정우주(20) 등 시속 150㎞ 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고교 최고 투수들을 줄줄이 영입했다. 지난해 문동주가 11승을 거두고, 김서현이 33세이브를 올리며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다. 한화도 이들 활약에 힘입어 1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하지만 1년 만에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문동주는 어깨 부상으로 지난 5월 시즌을 조기 마감했고,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에 뽑혔던 정우주는 1승 3패 평균자책점 7.97로 극심한 난조를 보이고 있다. 김서현은 지난 시즌 막판부터 ‘믿을 맨’이 아닌 ‘시한폭탄’으로 전락했고, 황준서도 안정감을 찾아볼 수 없다. 팀의 현재이자 미래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유망주들이 모두 핵심 전력에서 이탈했다. 한화도 올시즌 8위로 추락하며, 사실상 가을야구 경쟁에서 탈락했다.
고교 시절 국내 최고로 꼽히던 투수들이 하나같이 망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한화의 부실한 육성 전략이 문제로 꼽힌다. 장기 로드맵에 따라 어린 투수의 잠재력을 키우기보다 눈앞의 승리에 급급해 주먹구구식으로 투수들을 기용했다는 지적이다. 현대 야구는 선발 투수감은 선발로, 구원 투수 요원은 그에 맞게 관리·육성하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한화는 지난해 19세 신인 정우주를 선발·구원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기용했다. 황준서 역시 2024년 데뷔 후 아무런 기준 없이 선발과 불펜을 오갔다. 정우주는 변화구 제구 개선, 황준서는 체력 보강이라는 숙제가 명확한 데도 1군에서 ‘땜질식 등판’으로 소모되며 성장할 기회를 놓쳤다.
‘믿음의 야구’로 포장되는 김경문 감독의 스타일이 어린 선수에게 독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서현은 지난 시즌 말부터 프로 선수로 보기 힘든 제구 난조를 겪고 있다. 시즌 중 일본 훈련 센터에 단기 유학까지 다녀올 정도로 절박하다. 2군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데, 김경문 감독은 “1군에서 자신감을 찾게 해야 한다”며 기회가 될 때마다 김서현을 콜업해 중요한 상황에 내보내고 있다. 김서현은 지난주 한화가 치른 5경기 중 4경기에 나와 95구를 던졌다. 결국 부담감이 높은 동점 상황에 등판한 30일 NC전엔 결승 실점을 내주며 무너졌다. 당장 한 경기를 이겨보려고 인내심을 갖고 키워야 할 유망주를 끌어다 쓰고, 어린 선수는 부담감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모양새다. 한화 출신 한 해설위원은 “한화는 유독 어린 선수들에게 처음부터 중압감 있는 자리를 맡기는 경향이 있다”며 “결국 선수들이 이겨내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상위 지명을 받은 고졸 투수들이 막상 프로에서 꾸준한 활약을 못 내는 건 한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와 올해 전체 1순위였던 정현우와 박준현(이상 키움) 역시 1군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고교 시절 기초 체력 훈련이나 제구력을 가다듬는 것은 소홀히 하고 단지 구속을 끌어올리는 데만 치중한 영향이 크다. 서울의 한 고교 야구부 감독은 “프로 스카우트들이 일단 구속을 먼저 보는 경우가 많으니 선수들도 사설 센터에 가서 구속 올리는 훈련만 한다”며 “많은 고교 선수가 공 30~40개 던지면 지치는데 프로에서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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