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한순간에 ‘사라진 나의 집’···“누울 자리조차 없어요” 좁은 대피소에서 버티는 이재민들

박민규 기자 2026. 8. 3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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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NGO, 네팔 홍수 지역에 첫 구호품 제공
현지 실정 맞춰 바닥 매트·랜턴·위생용품 등
이재민들 집 잃은 채 좁은 쉼터서 수십가구 생활
문광진 선교사 “복구 상황 맞춰 추가 구호 지속”
31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비두르 4구역 내 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이재민들이 바닥 매트를 깔고 누워 있다. 박민규 기자

“강물에 10분 동안 휩쓸리며 죽는 줄 알았어요. 파도가 물가 쪽으로 밀려날 때 간신히 빠져나와 목숨을 건졌죠.”

31일(현지시간) 오후 네팔 누와코트 게르쿠따르 마을에서 만난 소스틱 포우델(14)이 온몸에 긁힌 상처를 내보이며 말했다. 필사적으로 뭔가 붙잡으려 했는지 손바닥과 팔목엔 빨갛게 피부가 벗겨진 자국들이 역력했다. 동생 소스티마 포우델(9)도 같은 급류에 휩쓸려 깊은 물 속에 빠졌다가 겨우 구조됐다. 몸 곳곳에 찰과상을 입었다.

이곳에는 지난 26일 발생한 대홍수로 집과 터전을 잃은 약 100가구의 주민들이 학교 교실과 강당 등 대피소에 분산 수용돼있다. 기적적으로 화를 면한 고빈더 포우델(39)의 네 식구도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홍수로 그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을은 몰려든 토사와 진흙으로 쑥대밭이 됐다. 두 자녀의 어머니인 어시므타 포우델(32)은 “마을에 있던 집에서 이 학교 대피소까지 원래 10분 거리인데, 길이 끊겨 이제는 정글 길로 돌아가야 해 4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31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게르쿠따르 마을 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소스틱 포우델(14)이 대홍수에 휩쓸렸을 당시 입은 다리의 상처들을 보여주고 있다. 박민규 기자
31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게르쿠따르 마을 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고빈더 포우델(39·맨 왼쪽)과 그의 가족들이 구호품을 실은 차량을 바라보고 있다. 박민규 기자

이날 한국 비영리기구(NGO) 단체인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긴급구호 물품을 들고 이재민들을 찾았다. 한국 NGO 단체가 피해지역에 구호 물품을 제공한 첫 사례다. 이 단체는 네팔 바그마티주 라수와와 누와코트 일대에서 대홍수가 발생하자 현지 체류 중이던 박재면 선교사와 문광진 선교사를 중심으로 구호팀을 꾸렸다. 한국에서도 추가 인력이 합류했고, 네팔에 거주하는 한인 10여명도 동행해 현장 운반과 배분을 지원했다.

구호팀은 네팔 정부의 구호 방침과 이재민들이 처한 실정을 고려해 쌀 등 식료품 대신 당장 필요한 바닥 매트와 위생용품, 태양광 랜턴 등 생필품을 중심으로 구호품을 마련했다. 문 선교사는 “현지 조사 결과 정부와 대형 구호단체를 통해 쌀 등 기초 식량은 공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진흙 바닥의 공공시설에서 지내는 이재민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침구류와 위생 도구, 조명이라는 판단에 따라 품목을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팔 정부 관계자의 협조 아래 구호 물품 배부가 시작되자 이재민들은 “이 마을 학교도 KOICA(한국국제협력단)에서 지어줬다”며 “한국 사람들이 도와줘서 너무 좋고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31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비두르 4구역에서 만난 이재민 가정 어린이들. 박민규 기자

게르쿠따르에 들르기에 앞서 구호팀은 오전에 누와코트 비두르 4구역에서도 이재민 50가구에 구호품을 전달했다. 비두르 지역은 접근부터 난항을 겪었다. 카트만두에서 비두르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는 산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로 끊겨 있었다. 이 도로는 본래 중국까지 이어지는 국경 도로로, 지역 왕래에 꼭 필요한 도로였다. 강에서 범람한 진흙과 산에서 밀려온 토사가 섞여 도로 및 주변 전체가 거대한 펄처럼 변했다. 성인 남성도 발이 빠지면 쉽게 벗어나기 어려웠다.

비두르 4구역에는 홍수로 물에 잠긴 심초우르 마을 이재민들이 모여있었다. 이재민 대다수가 마을 관공서 강당이나 임시 쉘터(대피소) 등에 수용돼 있으나, 좁은 공간에 수십 가구가 머물다 보니 누울 자리조차 부족하다. 위생 시설 유지도 제대로 안 되고 전기 공급마저 끊겨 생활 환경은 열악했다.

31일(현지시간) 네팔 카트만두에서 누와코트 비두르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가 홍수와 산사태로 밀려든 토사와 진흙으로 매몰돼 끊겨있다. 박민규 기자

현장에서 만난 심초우르 마을 주민 지텐드라 사만(50)은 “다리 근처에 있던 집과 토지가 물에 쓸려 내려가 전부 없어졌다”며 “7명 가족은 다행히 모두 살아남았지만 당장 돌아갈 집도 땅도 없다. 구호품을 받아 도움이 되지만 정부가 하루빨리 복구 대책을 마련해 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마을 주민인 부르노 바하드르 타먼(22)도 “가족 4명은 다치지 않았으나 집과 토지를 잃어 현재 임시 숙소에 머물고 있다”며 “이런 일을 겪으니 머릿속이 하얗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구호 물품 배분을 도운 비두르 4구역 상수도센터 관리자 비제이 아차레(38)는 “심초우르 마을은 집이 전부 물에 잠겨 가족을 잃고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이 많다”며 “지금도 실종된 가족을 찾으며 비상 상태로 이재민들을 돕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7시30분 구호품을 싣고 카트만두를 떠난 구호팀은 오후 늦게까지 마을 세 곳을 돌며 전체 220가구에 구호품을 전달했다. 문 선교사는 “비두르와 게르쿠따르 일대 배분을 마친 뒤 고립 지역의 도로 복구 상황에 맞춰 추가 구호 활동을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누와코트 | 박민규 기자 mingyu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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