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월드조에서 불붙은 동남아와 유럽의 격돌[세계바둑산책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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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통합예선 월드조는 1회전부터 결승까지 동남아시아와 유럽의 자존심 대결로 이어졌다.
데이먼 우에게는 유럽 무대에서 증명한 경쟁력이 세계대회에서도 통할지를 확인하는 첫 시험대였고, 하꾸윈안에게는 지난해 동남아시아 바둑의 새 역사를 쓴 저력을 다시 보여줘야 하는 방어전이었다.
유럽은 벤자민의 극적인 승리를 앞세워 지난해 동남아시아에 내줬던 월드조 티켓을 되찾는 듯했다.
이번 월드조를 관통한 동남아시아와 유럽의 경쟁이 마지막 한 판에서 절정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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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제31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통합예선 월드조는 1회전부터 결승까지 동남아시아와 유럽의 자존심 대결로 이어졌다.
영국의 데이먼 우가 받아 든 첫 대진부터 쉽지 않았다. 상대는 지난해 월드조에서 우승하며 베트남 선수 최초로 삼성화재배 본선에 진출했던 디펜딩 챔피언 하꾸윈안이었다. 단순한 영국과 베트남 선수의 대결이 아니라, 유럽과 동남아시아 바둑의 현재를 대표하는 두 강자의 정면승부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홍콩에서 태어나 현재 영국 국적으로 활동하는 데이먼 우는 영국을 대표하는 정상급 기사다. 노팅엄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도 유럽의 주요 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며 실력을 키웠다. 특히 유럽 정상급 기사 16명만 출전한 2025 유럽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이름을 유럽 바둑계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데이먼 우는 조별리그를 통과한 뒤 8강에서 폴란드 최초의 프로기사 마테우시 수르마를 꺾었다. 준결승에서는 우크라이나 출신 프로기사 안드리 크라베츠를 물리쳤다. 유럽을 대표하는 프로기사들을 연이어 넘어 정상에 오른 것은 일시적인 돌풍이 아니라 그가 유럽 최정상급 기사로 성장했음을 보여준 결과였다.
따라서 하꾸윈안과 데이먼 우의 삼성화재배 1회전은 유럽 그랑프리 챔피언과 월드조 디펜딩 챔피언의 맞대결이었다. 데이먼 우에게는 유럽 무대에서 증명한 경쟁력이 세계대회에서도 통할지를 확인하는 첫 시험대였고, 하꾸윈안에게는 지난해 동남아시아 바둑의 새 역사를 쓴 저력을 다시 보여줘야 하는 방어전이었다.

2회전에서도 동남아시아와 유럽의 정면충돌이 이어졌다. 올해 유럽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오른 체코 챔피언 루카시 포드페라와 싱가포르의 천재 소년 쉬샤오판(Xu Xiaofan)이 마주했다.
열일곱 살 때 처음 한국을 찾아 바둑을 공부했던 루카시는 오랫동안 유럽 정상권을 지켜온 체코의 대표 기사다. 그러나 쉬샤오판은 풍부한 경험을 갖춘 강호를 상대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바둑을 펼쳤다.
결과는 쉬샤오판의 승리였다. 싱가포르 바둑의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쉬샤오판은 유럽선수권 3위의 강자를 넘어 결승을 향한 발걸음을 이어갔다. 데이먼 우에 이어 루카시까지 탈락하면서 유럽의 기세는 한동안 잦아들었고, 동남아시아의 상승세는 더욱 뚜렷해졌다.

하꾸윈안은 1회전에서 데이먼 우를 꺾으며 디펜딩 챔피언의 저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벤자민 역시 전 유럽 챔피언이라는 경력에 프로기사로서의 무게까지 더한 유럽 진영의 핵심 전력이었다. 사실상 동남아시아의 선봉과 유럽의 마지막 보루가 결승 문턱에서 만난 셈이었다.
한국기원 소속 헝가리 출신 프로기사 디아나의 평가에 따르면 벤자민은 대국 내내 불리한 흐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승부의 여신은 벤자민을 향해 미소 지었다. 벤자민은 극적인 반집승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했다.
지난해 결승에서 유럽의 론 반 자이스트를 꺾고 본선에 올랐던 하꾸윈안의 2년 연속 본선 진출 도전은 여기에서 멈췄다. 유럽은 벤자민의 극적인 승리를 앞세워 지난해 동남아시아에 내줬던 월드조 티켓을 되찾는 듯했다.
대망의 4회전 결승에서는 싱가포르의 쉬샤오판과 유럽 프로기사 벤자민이 만났다. 이번 월드조를 관통한 동남아시아와 유럽의 경쟁이 마지막 한 판에서 절정에 이른 것이다.
벤자민은 전 유럽 챔피언이자 프로기사로, 유럽 진영이 내세운 가장 높은 벽이었다. 반면 쉬샤오판은 싱가포르 바둑의 미래를 짊어진 천재 소년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앞선 대국에서 유럽의 강자들을 차례로 넘어뜨리며 결승까지 올라왔다. 경력과 무게에서는 벤자민이 앞섰지만, 쉬샤오판에게는 무한한 가능성과 거침없는 기세가 있었다.

싱가포르의 천재 소년 쉬샤오판은 유럽의 거대한 골리앗 벤자민을 쓰러뜨리며 월드조에 걸린 단 한 장의 본선 티켓을 차지했다. 지난해 베트남의 하꾸윈안에 이어 올해는 싱가포르의 쉬샤오판이 본선에 오르면서 월드조의 주도권은 2년 연속 동남아시아의 몫이 됐다.
최근 중국 충칭에서는 중국바둑협회의 지도 아래 동남아시아 선수들을 초청한 '백마산배 동남아시아 바둑초청대회'가 열렸다. 중국·라오스·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베트남 선수들이 참가한 이 대회는 동남아시아 바둑이 더 이상 세계 바둑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지난해 삼성화재배 월드조를 통과한 하꾸윈안도 이후 중국에서 열린 여러 국제대회에 동남아시아 대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신한은행이 후원하는 기선전의 베트남 국가 시드 선발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베트남을 넘어 동남아시아 바둑을 상징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유럽의 성장세도 만만치 않다. 유럽프로기사제도의 정착과 그랑프리 시리즈, 유럽선수권대회를 바탕으로 선수들의 경기력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번 월드조에는 유럽 그랑프리 챔피언 데이먼 우, 유럽선수권 3위 루카시 포드페라, 전 유럽 챔피언이자 프로기사인 벤자민이 출전했다. 어느 한 선수도 쉽게 볼 수 없는, 사실상 '유럽 드림팀'에 가까운 진용이었다.
아세안 11개국으로 대표되는 동남아시아와 유럽의 바둑은 인공지능의 확산과 한국·중국을 비롯한 바둑 강국들과의 교류를 발판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제31회 삼성화재배 월드조는 그 변화된 흐름과 두 지역의 성장세가 가장 선명하게 충돌한 무대였다. 그리고 올해 승리의 여신은 다시 한번 동남아시아의 편에 섰다. 그 중심에 선 이름은 쉬샤오판이었다. 체코의 강호 루카시 포드페라를 넘어 결승에 오른 뒤 유럽 프로기사 벤자민마저 쓰러뜨린 싱가포르 소년. 쉬샤오판이 손에 넣은 단 한 장의 삼성화재배 본선 티켓은 한 소년의 승리를 넘어 싱가포르 바둑의 새로운 가능성을 세계에 알린 티켓이었다. 지난해 베트남의 하꾸윈안에서 올해 싱가포르의 쉬샤오판으로 이어진 두 장의 티켓은 동남아시아 바둑의 지형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천재 소년 쉬샤오판'이라는 새로운 이름은 이제 삼성화재배 본선이라는 더 큰 무대에서 세계의 강자들과 마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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