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웠습니다”…눈물과 꽃다발 속 폐업한 ‘40년 밀양 분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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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과 한 약속인 만큼 폐업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를 지켜야지요."
31일 오전 9시경 경남 밀양시 내이동 제일병원 산부인과 진료실.
형편이 어려운 산모들과 다문화가정, 오랜 시간 함께 한 70여 명의 병원 직원들이 눈에 밟혔다는 것이다.
제일병원의 폐원은 밀양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 분만 인프라가 무너진 상징적인 단면이라는 게 의료계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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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발길 이어지며 ‘눈물의 작별’
저출생·만성 적자·구인난에 결국 폐업

31일 오전 9시경 경남 밀양시 내이동 제일병원 산부인과 진료실. 산부인과 전문의인 홍성권 원장(73)이 병원의 마지막 진료를 시작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병원은 1986년 개원 이래 2만 명이 넘는 신생아가 태어난 밀양 유일 분만 의료기관이지만 저출생 문제와 의사 구인난, 재정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이날을 끝으로 자진 폐업했다. 홍 원장은 “응급 분만 등 24시간 365일 의료진과 시설을 유지해야 하기에 마지막 진료일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 40년 지킨 밀양 분만실 ‘눈물의 작별’
마지막 진료일 산부인과 병동을 비롯한 병원 곳곳에선 아이 울음소리 대신 어른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병원을 찾은 밀양시민 정혜경 씨(67)는 “오늘이 마지막 진료일이라는 소식을 듣고 12년 동안 진료해준 간호사 선생님께 ‘그동안 수고하셨다’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홍 원장의 진료실로도 장년 여성 여러 명이 차례로 들어와 “그동안 수고하셨다” “이제 못 봐서 어떡하냐”는 말과 함께 꽃다발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홍 원장의 책상 한 켠에는 이 병원에서 태어난 어린이가 선물한 장미꽃 한 송이와 오래전 출산한 부부가 건넨 꽃바구니가 놓여져 있었다.
제일병원은 산부인과, 내과, 소아과, 마취과 등 4개 진료과와 79개 병상을 갖춘 지역 핵심 거점 병원 역할을 해왔다. 한 달에 100명이 넘는 아이가 태어나고 연간 1000건 이상의 분만을 기록하기도 했다. 홍 원장은 “하루에 분만 3, 4건과 응급 수술, 100여 명의 외래 진료를 혼자 한 적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 “지방 근무 기피에 후임 지원자 없어”
그러나 병원도 급격한 인구 절벽 앞 운영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밀양시의 연간 출생아 수는 2000년 1280명에서 지난해 249명으로 25년 만에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최근 2년간 병원의 분만건수도 연간 100명을 겨우 넘기는 수준에 그쳤다. 정부의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을 통해 연간 5억 원을 지원받아왔지만 24시간 3교대 분만 인프라를 유지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연간 20억 원에 가까운 규모의 적자가 이어졌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30억 원에 달하는 손실까지 떠안으며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고 한다.
병원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홍 원장과 2013년부터 함께 일해온 김창수 산부인과 과장(64)의 헌신이 컸다. 두 사람은 일주일에 각각 사흘과 나흘씩 번갈아 가며 병원 당직실을 지키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응급 분만에 대비했다고 한다. 병원에서 30분 이상 떨어진 곳으로는 외출하기 어려웠고, 밤새 분만을 마친 다음 날에도 곧바로 주간 외래 진료를 이어가는 생활을 수년간 지속했다. 홍 원장은 “체력적으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 후임 전문의를 구하려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지방 근무 기피 현상 탓에 지원자가 없었다”고 말했다.
●10년간 전국 분만 병원 30% 줄어…“지방의료 살릴 대책을”

그는 “응급 수술 후 돈이 없어 진료비 대신 계절마다 민물장어와 메기를 가져다 준 환자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며 “형편이 어렵거나 한국어가 서툰 이주여성들과 20년 이상 장기 근속한 직원들 생각에 고심했지만 부도로 임금마저 주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일병원의 폐원은 밀양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 분만 인프라가 무너진 상징적인 단면이라는 게 의료계의 시각이다. 지역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의료기관 자체가 폐업한다는 것은 곧 임산부와 신생아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지역 필수의료 붕괴의 신호라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국 분만 병원은 2015년 620곳에서 지난해 436곳으로 약 30% 줄었다. 올해 6월 기준 전국 시군구 중 34.4%(86곳)는 분만 의료기관이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 역시 9개 군에 분만 병원이 없는 가운데 밀양마저 폐원하면서 양산, 부산, 창원 등 인근 대도시로 원정 진료와 출산이 불가피해졌다.
홍 원장은 “병원이 폐업하면 의사들이야 시골을 떠나면 더 좋은 여건에서 근무할 수 있지만, 시골 주민들은 그야말로 큰 타격을 입는다”며 “무너져 가는 지역 필수의료를 살릴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밀양=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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