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진짜’ 우선주가 없다?… 보통주 대비 45% 싼 ‘무늬만 우선주’

한국 증시에 상장된 우선주 114개 중 괴리율 상위 10종목은 보통주보다 평균 71% 싼값에 거래된 것으로 나타났다(7월 말 종가 기준). 의결권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사회가 우선주 주주를 공정하게 대우할지 못 믿는 지배구조 문제가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우선주는 보통주의 의결권을 포기하는 대신 배당과 청산 시 잔여재산 분배 등의 청구권을 보통주보다 먼저 보장받는 주식을 말한다.
31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에서 ‘은폐된 한국 우선주 디스카운트 문제와 그 해법’ 세미나를 열고 우선주 저평가를 지배구조 문제 때문으로 해석했다. 토론자들은 “한국에는 애초에 우선주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주 정의상 청구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적 실질이 미국의 무(無)의결권 보통주(클래스C)와 같으므로 가격도 보통주에 수렴해야 정상인데 30~65% 할인이 수십 년째 지속되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괴리율이 가장 컸던 우선주는 두산퓨얼셀1우로 81.4%였다. 한진칼우 76.8%, 솔루스첨단소재1우 76.5% 등도 보통주와 우선주 간 격차가 컸다. 영국계 행동주의 투자사 팰리서캐피털은 한국 우선주 전체의 평균 할인율을 45%로 집계했다. 선진국에서 무의결권 주식의 할인 폭이 한 자릿수에 그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배당도 안 주면서 의결권만 뺏은 우선주
미국은 우선주의 정의에 충실하다. 골드만삭스가 발행한 우선주 시리즈는 연 5~6.85%의 고정배당률을 증서에 못 박았다. 청산 시 보통주보다 먼저 변제받는 권리도 명시돼 있다. 미국 우선주 상장지수펀드(ETF)의 실제 수익률은 6~8%대다.
그러나 한국은 이에 크게 못 미친다. 삼성전자 우선주(삼성전자우)는 보통주 배당에 우선주 액면금액 100원의 1%인 주당 1원만 더 준다. ‘보통주에 배당하지 않으면 우선주에도 배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도 정관에 적혀 있다. 배당의 우선성 자체가 없는 것이다. 투자자가 체감하는 시가(현 주가)로 환산한 가산배당률은 0.1%에 못 미친다.
신형 우선주도 마찬가지다. 신형 우선주는 1995년 상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액면가의 1%만 얹어주던 구형 우선주와 달리 정관에 최저배당률을 반드시 적도록 했다. 종목명 끝에 붙는 B는 채권처럼 최저 배당을 보장한다는 표시다.
그러나 최저배당률의 기준을 시가가 아닌 액면가로 잡을 수 있게 하면서 취지가 무력화됐다. 현대차 우선주 중 하나인 현대차2우B의 정관상 최저배당률은 액면가의 2%, 주당 100원이다. 시가 대비로는 0.039% 수준이다. 잔여재산분배에서도 우선권이 보장되지 않고 그냥 주식 수에 비례해 나눠 받게 돼 있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이사(변호사)는 “한국의 우선주는 미국의 의결권 없는 보통주인 클래스C와 같다”라고 했다. 배당과 청산 우선권이 없다는 점에서 성격이 같지만 가격 할인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이사는 “미국 클래스C는 클래스A와 별 가격 차이 없이 거래되지만 한국은 우선주가 보통주 대비 30~65% 할인된다”고 했다. 김 이사는 이를 지배구조 문제로 봤다. 한국 우선주의 실질이 보통주인데도 이사회가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서 우선주를 빼놓고 있다는 것이다.
◇지배주주가 ‘진짜 우선주’ 발행을 피하는 이유
미국의 우선주는 지배주주에게 불편한 증권이다. 4중 장치가 우선주 배당 지급을 사실상 강제하기 때문이다.
먼저, 우선주 배당을 거르면 보통주 배당과 자사주 매입이 함께 막히는 ‘배당 제한’ 조항이 증서 표준으로 들어간다. 우선주주에게 줄 몫을 미루면서 지배주주와 경영진에게 갈 돈만 챙기는 폐단을 막기 위해서다. 다음으로 거른 배당은 연체금으로 누적된다. 또, 통상 6개 분기를 미지급하면 우선주주가 이사 2명을 따로 선임할 수 있게 하는 의결권 부활 조항이 뉴욕증시(NYSE) 상장 표준에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배당을 미지급한 우선주 발행사는 신규 자금 조달시장 접근이 차단되고 신용등급이 떨어진다. 회사채를 찍거나 유상증자로 새 자금을 끌어올 길이 막힌다는 뜻이다.
한국에는 이 중 어느 것도 없다. 배당 제한은 정관상 없고, 대부분 비누적적이며, 배당 미지급 시 의결권이 부활하도록 한 옛 상법 370조 강제조항은 2011년 개정 때 삭제됐다.
미국은 배당과 잔여재산처럼 보통주와 같은 순위로 나눠 갖는 몫에 대해서는 계약에 없어도 이사의 충실의무를 적용한다. 2012~2015년 구글 클래스C 주주소송이 대표 사례다. 소송 결과 2015년 화해로 발행 후 1년간 의결권 없는 클래스C가 의결권 있는 클래스A보다 1% 이상 싸게 거래되면 회사가 현금으로 보상하기로 했다. 의결권이 없다는 이유로 주가가 싸게 형성되는 것을 이사회가 방치하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에는 유럽⋅일본에는 있는 ‘의무공개매수’ 제도가 없어서 최대주주가 되려는 매수자가 보통주는 물론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를 사줄 유인이 없다.
◇싸게 살 수 있는데 비싸게 사는 이사회
세미나에선 자사주 소각을 우선주로 하면 더 싸게 더 많이 소각해 주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돌려줄 수 있는데도 이사회가 외면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DS투자증권 김수현 리서치센터장은 우선주가 25% 할인된 상황에서 자사주 1조원을 쓰면 보통주는 1000만주, 우선주는 1333만주 소각 가능한 것으로 봤다. 같은 예산으로 33% 더 소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래에셋증권 유건호 책임연구위원에 따르면 현대차가 구형 우선주와 3우B를 모두 매입 소각하면 보통주 주당순이익(EPS)은 10.6%, 주당배당금(DPS)은 10.7% 오르는 것으로 계산됐다. 회사가 우선주 소각을 안 해서 그만큼 보통주 주주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의 경우도 우선주를 소각하면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제약과 지배구조 문제를 함께 줄일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합산 지분율은 10%로 금산법상 10% 한도에 1주 차로 붙어 있다. 보통주를 소각하면 지분율이 올라 금융계열사가 주식을 팔아야 한다.
이때 우선주를 소각하면 보통주보다 부담이 덜하다. 김수현 센터장은 만약 삼성전자가 주주환원 재원 100조원 가운데 보통주만 20조원어치 소각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2조원가량의 삼성전자 지분을 팔아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역대 최대 블록딜이 1조50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2조원은 시장이 한 번에 소화하기 어려운 규모다. 반면, 소각 재원의 30%를 우선주에 배분하면 매각해야 할 지분은 1조40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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