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 어렵다는데 반도체·로봇은 무섭게 치고 올라온다…올드 차이나와 뉴 차이나의 두 얼굴

중국 경제를 두고 상반된 신호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부동산 침체는 길어지고 소비와 민간투자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지방정부의 재정 여력도 약해졌다. 반면 반도체와 로봇과 첨단 제조업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창신메모리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들이 자본시장으로 몰려들고 휴머노이드 로봇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세계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중국 경제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보기에도 어렵고 첨단산업의 성장만 보고 중국 경제가 건강하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 원장은 지금 중국을 올드 차이나와 뉴 차이나라는 두 개의 렌즈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안유화 원장은 중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부동산을 꼽았다. 중국 경제에서 부동산이 차지해온 비중은 단순히 주택 건설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 가계의 자산이 부동산에 집중돼 있고 지방정부 재정 역시 토지와 부동산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다. 주택을 새로 사면 가전과 인테리어와 각종 소비재 수요가 함께 발생한다. 부동산이 움직이면 소비와 투자와 지방정부 재정까지 동시에 움직이는 구조였다.
문제는 이 구조가 2020년 이후 크게 흔들렸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부동산으로 몰린 자금을 첨단산업과 자본시장으로 옮기려 했다. 그러나 이미 높은 가격에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가계 입장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고 해서 자금을 쉽게 빼 새로운 자산으로 옮길 수 없다. 집값이 크게 떨어져도 대출 원금은 그대로 남는다. 자산가격 하락은 가계의 소비 여력을 약화시키고 다시 내수 부진으로 연결된다.

중국 정부가 금리를 계속 낮춰온 것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된 상황에서는 금리 인하만으로 가계와 기업의 투자심리를 되돌리기 어렵다. 금리를 지나치게 낮추면 은행의 수익성도 악화되기 때문에 금리를 내리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중국 경제 전체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안유화 원장은 중국의 국내 소비와 투자는 좋지 않지만 수출이 이를 상당 부분 보완하고 있다고 봤다. 중국은 세계 제조업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글로벌 제조업 수요가 늘어나면 중국 수출 역시 크게 증가할 수 있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소비와 투자와 부동산이 약한데도 전체 GDP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견조하게 나타나는 이유다. 이것이 안유화 원장이 말하는 올드 차이나다.
뉴 차이나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인 분야가 반도체다. 안유화 원장은 한국을 반도체 강국이라고 부를 때 조금 더 세밀하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반도체 전체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다기보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나라다. 반도체 공급망은 시스템 반도체 설계, 파운드리, 메모리, 후공정 패키징이 모두 포함된다. 중국은 이 전체 공급망을 넓게 구축하고 있다.
중국의 강점은 메모리 한 분야의 압도적인 기술력이 아니라 반도체 공급망의 상당 부분을 자국 안에서 구축하려는 데 있다. 미국이 첨단산업을 국가안보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이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미국은 중국 공급망을 줄이려 하고 중국 역시 미국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 한다. 중국이 선택한 방향은 자립이다. 미국이 첨단 장비 수출을 제한하면 중국 안에서 장비를 만들려고 한다. 기존 기술을 그대로 따라가기가 어렵다면 다른 기술 경로를 선택한다.
한국에는 단기적으로 기회다. 미국이 중국을 공급망에서 밀어낼수록 그 빈자리를 한국이 채울 수 있다. 특히 한국이 강점을 가진 메모리에서는 공급자가 제한될수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협상력이 커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위협이다. 창신메모리를 비롯한 중국 메모리 업체들의 기술은 계속 올라오고 있다. 현재는 한국 업체와 같은 수준의 수율과 양산 능력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격차가 좁혀질 수 있다.
안유화 원장은 중국 반도체가 당장 한국을 위협한다고 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HBM처럼 한국 기업이 빠르게 세대를 전환하는 영역에서는 중국이 따라오는 동안 한국이 다시 앞서갈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다. 2년에서 3년 안에 중국이 격차를 크게 줄인다면 한국 기업에 상당한 위험이 될 수 있다. 5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면 한국이 그 사이 다시 새로운 기술 장벽을 쌓을 여지가 있다.

안유화 원장은 최근 중국 반도체와 로봇 기업들의 IPO를 이런 변화의 결과로 봤다. 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정부나 은행에서 조달하는 대신 수많은 투자자의 자금을 주식시장을 통해 끌어오는 구조로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위험도 투자자들에게 분산된다. 중국 정부가 자본시장 활성화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뉴 차이나를 키우려면 장기간 대규모 자본을 공급할 시장이 필요하다. 반도체와 AI와 로봇 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하고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면 다시 새로운 기술 개발에 돈을 투입할 수 있다.
반도체와 함께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뉴 차이나의 또 다른 축은 로봇이다. 중국은 휴머노이드와 사족보행 로봇을 비롯한 여러 로봇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 기업의 최대 강점은 가격과 양산 능력이다.
안유화 원장은 중국이 테슬라 옵티머스와 같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궁극적으로 스마트폰 가격에 가까운 수준까지 낮추려 한다고 설명했다. 로봇 한 대의 가격이 충분히 떨어져야 공장과 물류센터와 서비스 현장에서 사람을 대체할 정도로 대규모 보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값싸게 대량 생산하는 경쟁에서는 중국을 이기기 어렵다. 중국에는 특정 지역 안에 필요한 거의 모든 부품 공급업체가 모여 있는 제조 클러스터가 있다. 설계를 바꾸면 가까운 거리에서 부품업체와 바로 협의할 수 있고 새로운 부품을 빠르게 만들어 다시 테스트할 수 있다. 이런 제조 생태계는 단기간에 복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로봇에서도 한국이 잡을 수 있는 영역이 있다. 한국에는 자동차와 조선과 반도체와 전자와 배터리와 철강 등 다양한 제조업 현장이 남아 있다. 현대자동차처럼 자체 제조공장을 운영하면서 로봇 기술까지 보유한 기업도 있다. 제조 현장에서 축적된 데이터와 휴머노이드 기술을 결합할 수 있다면 중국과 다른 경쟁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가격으로 경쟁하기보다 실제 공장에 가장 빠르게 로봇을 투입하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경쟁해야 한다.
중국 역시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기업들이 너무 빠르게 생산능력을 늘리면서 내부에서는 극심한 가격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에서 네이쥐안으로 불리는 과도한 내부 경쟁이다.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가격을 계속 낮추면서 판매량은 늘어도 이익을 거의 남기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중국 기업들의 다음 목표가 해외 진출이 되고 있다. 중국 안에서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 돈을 벌기 어렵지만 해외에서는 중국에서 축적한 가격 경쟁력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의 직접 수입을 막으면 중국 기업은 베트남과 헝가리와 다른 국가에 공장을 세우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안유화 원장은 이 변화가 한국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중국 기업의 기술과 제조능력을 한국의 공급망과 결합하는 새로운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을 단순한 경쟁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공급망 속에서 한국이 가져올 수 있는 산업과 자본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미중 관계 역시 이런 뉴 차이나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안유화 원장은 현재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전면적인 냉전보다 양전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완전히 관계를 끊은 상태가 아니라 부부가 별거하는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관계는 좋지 않지만 필요할 때는 만난다. 중국은 첨단 반도체 장비와 핵심 기술에서 여전히 미국과 서방에 의존한다. 미국 역시 희토류와 정제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다.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쥐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관계를 끊기도 어렵다.
중국 경제가 어렵다는 말만 보고 중국을 과소평가하면 위험하다. 반대로 중국의 로봇과 반도체 기업 몇 곳이 빠르게 성장한다고 해서 중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는 것도 맞지 않다. 지금 중국에서는 낡은 성장모델이 무너지는 동시에 새로운 산업이 올라오고 있다. 중국 경제가 흔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한국이 앞으로 3년에서 5년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