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처음 만났을 때 우승은 0개"…페더러의 103개 트로피를 함께 들어 올린 연상 아내 미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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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로저의 투어 우승은 몇 개였을까요. 제로(0)였습니다. 제로."
페더러의 이름 옆에는 메이저 20회 우승, 투어 103승, 세계 1위 310주, 투어 통산 1251승 같은 숫자가 새겨집니다.
미르카가 페더러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ATP 투어 우승은 '0'이었습니다.
그 뒤 페더러가 들어 올린 103개의 우승 트로피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두 지켜본 사람도 미르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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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6위까지 오른 미르카…부상 은퇴 뒤 히팅 파트너부터 투어 생활까지 동행
첫 쌍둥이 임신 때 페더러 “당신이 여행 못 하면 나도 테니스 그만두겠다”
두 쌍둥이 네 아이와 세계 투어…페더러 “미르카 없었다면 오래전 은퇴했을 것”
명예의 전당에서 26년 동행 돌아보며 눈물…개인 종목 테니스가 보여준 ‘또 하나의 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로저의 투어 우승은 몇 개였을까요. 제로(0)였습니다. 제로."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의 국제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로저 페더러(45·스위스)의 통산 103번째 우승을 이야기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내 미르카 페더러가 26년 전,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던 남자 친구를 떠올리며 꺼낸 이야기였습니다.
지난 주말 국제테니스 명예의 전당 헌액식의 주인공은 물론 페더러였습니다. 메이저대회 단식 20회 우승, ATP 투어 통산 103승, 세계 1위 310주. 이미 숫자만으로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입니다. 그런데 이날 그의 긴 테니스 여정을 소개하기 위해 먼저 단상에 오른 사람은 전설적인 라이벌도, 명코치도 아니었습니다. 26년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미르카였습니다.
이날 연설은 페더러의 커리어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돌아보게 했습니다. 테니스는 가장 개인적인 스포츠 가운데 하나입니다. 코트에 들어가면 결국 혼자 서브를 넣고, 혼자 판단하고, 혼자 패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24년에 걸쳐 세계 정상에서 버틴 한 선수의 삶을 따라가 보면 그 뒤에는 또 다른 '팀'이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미르카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출발점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이었습니다. 모두 스위스 대표 테니스 선수였습니다. 당시 페더러는 18세, 미르카는 21세였습니다. 페더러는 남자 단식에서 4위에 올랐지만, 아직 ATP 투어 단식 우승은 없었습니다. 미르카는 이번 연설에서 자신이 '연상 여성'이었다고 웃으며 "로저는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계속 다가왔고, 다행히도 끈질겼다"라고 회상했습니다. ATP 공식 프로필에는 두 사람이 당시 시드니에서 첫 키스를 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미르카를 단순히 '테니스 황제의 아내'로만 기억해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본명 미로슬라바 바브리네츠인 그는 한때 세계 무대를 누비던 프로 선수였습니다. 2001년 9월 WTA 단식 세계 76위까지 올랐고, 그해 US오픈에서는 32강에 진출했습니다. 프로 단식 통산 전적도 202승159패였습니다. 반복된 발 부상으로 2002년 선수 생활을 접었습니다.
자신의 선수 생활은 일찍 끝났지만, 테니스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페더러가 지금처럼 거대한 팀을 거느리기 전에는 미르카가 직접 연습 상대가 됐습니다. 이번 헌액식에서 미르카는 객석에 앉아 있던 앤디 로딕을 바라보며 오래된 에피소드 하나를 끄집어냈습니다.
신시내티 결승에서 페더러에게 패한 로딕이 "여자친구가 워밍업을 해준 선수에게 졌다니 믿을 수 없다"고 농담했다는 것입니다. 미르카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면 웃는다"고 했습니다. 세계랭킹 1위와 메이저 챔피언이 되기 전 페더러의 투어에는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연습 상대가 필요하면 여자친구가 라켓을 들었습니다.
선수였기에 미르카는 프로 테니스의 냉혹함도 알고 있었습니다. 한 시즌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훈련과 이동, 패배 뒤의 허탈함, 다시 다음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과정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선수와 선수로 만나 한쪽이 먼저 라켓을 내려놓은 뒤에도 같은 언어로 투어를 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역할은 달라졌습니다. 히팅 파트너에서 일정과 생활을 챙기는 동반자로, 다시 네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가족 전체가 투어와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과정에는 페더러의 선수 인생을 끝낼 수도 있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미르카는 이번 명예의 전당 연설에서 첫아이를 임신했을 당시 이야기를 공개했습니다. 앞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자신이 예전처럼 세계 곳곳을 따라다닐 수 없을 것 같다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페더러는 곧바로 답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테니스를 하지 않겠다."
미르카는 "과장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이었다"고 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가족을 투어에 맞추겠다는 말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할 수 없다면 투어를 그만둘 수도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미르카는 이를 두고 "그게 로저다. 그의 가족은 언제나 먼저"라고 했습니다.

결국 둘은 테니스와 가족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는 대신 가족 전체가 함께 이동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2009년 결혼한 두 사람에게 같은 해 쌍둥이 딸 마일라와 샬린이 태어났습니다. 2014년에는 다시 쌍둥이 아들 레오와 레니를 얻었습니다. 한 집에 두 쌍의 쌍둥이입니다.
TV 카메라에는 가족이 선수석에서 아빠를 응원하는 아름다운 장면이 주로 잡혔습니다. 하지만 실제 투어 생활은 다릅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다시 아시아와 호주로 움직이며 네 아이의 비행기와 숙소, 학교와 생활 리듬까지 챙겨야 합니다. 그 와중에 페더러는 매일 몸을 만들고 경기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페더러는 자신의 선수 생활이 길어질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할 때 미르카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2018년 호주오픈에서 자신의 20번째이자 마지막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뒤 그는 "아내가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미르카의 지원이 없었다면 자신은 이미 여러 해 전에 테니스를 그만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선수 생활을 계속할지를 놓고 일찍부터 솔직하게 대화했고, 자신도 아이들과 2주 이상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미르카가 '안 된다'고 했다면 지금 같은 투어 생활은 불가능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 말을 하고도 페더러는 이후 4년을 더 뛰었습니다.

2022년 런던 레이버컵에서 마지막 프로 경기를 치렀을 때도 미르카와 네 아이는 코트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라파엘 나달과 나란히 앉아 눈물을 흘리는 페더러의 모습이 은퇴 장면의 상징처럼 남았지만, 그의 마지막에는 언제나 그랬듯 가족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4년이 흘렀습니다.
이번에는 미르카가 남편보다 먼저 뉴포트의 단상에 섰습니다. 놀라운 점은 103개의 우승이나 20개의 메이저 타이틀보다 남편이 어떤 아버지이고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더 오래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의 로저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내 남편이자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이제 국제테니스 명예의 전당의 새로운 회원을 소개한다"며 페더러를 불렀습니다.
페더러도 자신의 연설에서 미르카 이야기에 이르자 감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미르카가 자신에게 테니스에는 더 집중하면서도 그 밖의 모든 삶에서는 기쁨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네 아이의 훌륭한 엄마이자 가족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일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도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벽을 뚫고 달려갑니다."
페더러가 26년을 압축한 표현이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는 기록이 남습니다. 페더러의 이름 옆에는 메이저 20회 우승, 투어 103승, 세계 1위 310주, 투어 통산 1251승 같은 숫자가 새겨집니다.
하지만 기록표에 나타나지 않는 숫자도 있습니다.
선수가 아닌 아내가 경기 전 몇 번이나 공을 쳐줬는지, 네 아이의 여행가방을 몇 개나 싸고 풀었는지, 몇 번의 비행과 호텔 이동을 감당했는지는 ATP 통계에 없습니다.
미르카가 페더러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ATP 투어 우승은 '0'이었습니다.
그 뒤 페더러가 들어 올린 103개의 우승 트로피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두 지켜본 사람도 미르카였습니다.
26년 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페더러를 소개한 사람이 미르카였던 것은 그래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개인 종목인 테니스에서 우승 트로피는 한 선수의 이름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긴 여정까지 혼자 만드는 선수는 없습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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