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떠내려갔다, 강 하류를 채운 통곡
김명진 기자 르포

네팔 북부 바그마티주(州) 라수와 지역에서 대홍수가 발생한 지 닷새째인 30일(현지 시각), 이번 홍수로 최소 3800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히말라야 산악 지대를 덮친 대홍수는 바위와 토사, 나무뿐 아니라 시신까지 강 하류로 밀어냈다.
본지가 29일 찾은 치트완은 이번 홍수가 발생한 라수와에서 100㎞ 넘게 떨어진 곳이다. 보테코시강(江)을 따라 산악 지대를 휩쓸고 내려온 강물은 평야 지대인 치트완에 이르러 유속이 느려진다. 이번 대홍수로 떠내려온 시신이 이곳 강변에 걸리거나 물속에 가라앉았다. 국립공원 등으로 유명한 치트완은 이번 참사로 거대한 영안실이 됐다. 네팔 국가재난위험경감관리청(NDRRMA)에 따르면 이번 대홍수 후 29일까지 네팔 전체에서 수습된 시신 675구 가운데 259구가 치트완에서 발견됐다.
치트완 엑스포센터에는 실종자 가족 수십 명이 벽에 걸린 모니터를 살피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수습된 시신 사진이 10초마다 한 장씩 넘어갔다. 얼굴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시신이 많았다. 이곳에서 만난 생존자 라즈 미서카르마(28)씨는 “나는 겨우 살아남았지만 급류에 휩쓸려 간 아내와 아기는 아직 찾지 못했다”고 했다.
강을 따라 시신이 계속 밀려들면서 치트완의 안치 시설은 한계에 이르렀다. 네팔 당국은 병원 영안실이 가득 차자 오랫동안 쓰지 않은 산업기업개발원 건물 강의실에도 임시 안치소를 꾸렸다. 그래도 시설이 부족해 시신 수십 구를 병원 주차장에 설치한 천막 아래에 보관했다. 네팔 당국은 냉동 장치가 부족해 이날 하루에만 얼음 1톤을 날라 시신이 담긴 가방에 채워 넣었지만 부패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치트완 당국은 이날 신원 확인이 끝나지 않은 시신 229구를 긴급 매장하기로 했다.

◇시신 안치소 포화… 냉동고 부족해 신원 확인도 못하고 긴급매장
29일 오전 네팔 치트완의 엑스포센터에는 대홍수로 실종된 사람을 찾는 가족들로 붐볐다. 치트완 당국은 대홍수로 떠내려온 시신을 수습해 사진을 찍은 뒤, 이곳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가족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구급차를 타고 센터를 찾은 라즈 미서카르마(28)씨는 건물 입구에서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바라봤다. 머리와 다리에 붕대를 감은 미서카르마씨는 이번 홍수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함께 급류에 휩쓸린 아내와 아기는 아직 찾지 못했다. 그는 “급류에 휩쓸렸다가 떠내려가던 나무를 붙잡고 겨우 살아남았지만 아내와 아기는...”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엑스포센터에 형을 찾으러 온 머니스 아리얄(23)씨도 시신 사진을 하나하나 확인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엔지니어인 아리얄씨의 형은 라수와 랑탕콜라 수력발전소에서 근무하다 홍수가 난 뒤 연락이 끊겼다. 아리얄씨는 “사진을 보는 게 무섭다”며 “형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지난 26일 대홍수가 발생한 뒤 29일까지 치트완에서 수습된 시신은 259구. 네팔 전역에서 수습된 시신 675구의 38%가 이곳에서 발견됐다. 강을 따라 시신이 계속 밀려들면서 시신 안치소로 쓰는 엑스포센터도 한계에 이르렀다. 치트완 당국은 엑스포센터 건너편에 있는 산업기업개발원 건물에도 임시 시신 안치소를 설치했다. 비어 있던 개발원 강의실에 오전에만 시신 69구가 들어왔다. 냉동고가 없어 시신 가방 안에 얼음을 채워 부패를 늦추고 있었다.

치트완에서 수습된 시신 259구 가운데 이날까지 신원이 확인된 시신은 9구.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은 지문을 채취하고 부검과 DNA 시료 확보 등을 거친다. 하지만 한꺼번에 시신 수백구가 밀려들면서 치트완 당국은 홍수 나흘째인 29일에야 DNA 시료 채취를 시작했다.
치트완 당국은 이날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 223구를 매장하기로 했다. 무더위에 부패가 빨리 진행돼 더 이상 시신을 보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힌두교 문화권에선 화장(火葬)이 일반적이지만, 네팔 당국은 방역을 위해 매장을 택했다. 당국은 매장 전 시신마다 DNA 시료를 채취하고 고유번호를 매긴 것으로 알려졌다. 나중에 실종자 가족과 DNA가 일치하면 시신을 다시 발굴해 가족에게 인계하겠다는 것이다.
외신을 통해서도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홍수로 실종된 누나와 매형 부부, 조카 2명을 찾으러 나선 야브라즈 라마는 “그들이 살던 마을 전체가 사라졌다”며 “한 살배기 조카를 찾아야 하는데, 누구라도 살아남았을 거라는 희망이 더 이상 없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말했다. 네팔-티베트 국경을 오가는 운전기사 남편을 찾는다는 아내 모니타는 “홍수 1시간 전 산책 중이던 남편과 통화했지만, 지금은 그의 휴대전화가 꺼져 있다”며 “그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소속 엔지니어인 오빠를 찾으러 군 구조대 막사를 찾은 프리티 카렐은 AP에 “벌써 나흘이 지났다”며 “정부가 그를 최대한 빨리 구출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홍수가 국경을 넘는 순간 정부가 경고만 해줬더라도 제때 대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 티베트에선 대홍수로 쓸려 내려간 흙과 바위가 하천을 막으면서 자연 댐 호수가 형성됐는데 붕괴 가능성이 제기됐다. 원래 있던 호수에서 2.8㎞ 아래쪽에 위치한 산비탈이 다시 무너지면서 새로운 자연 호수도 생긴 상태다. 다만 티베트 인민정부 신문판공실은 “국경 관문 핵심 지역 상류에 형성된 자연 댐 호수는 이미 물이 넘쳐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상태는 안정적”이라고 했다.
네팔 당국은 30일 100여 명이 고립된 것으로 알려진 트리슐리 3A 수력발전소 내부로 통하는 구멍을 뚫고 공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네팔군 62명과 경찰 20명 등 82명으로 구성된 구조팀은 전날 저녁 드릴을 이용해 터널 상부에 작은 구멍을 뚫은 뒤, 파이프를 설치해 카메라와 산소를 고립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으로 보이는 길이 4㎞ 터널 안으로 공급하고 있다. 수단 구룽 네팔 내무부 장관은 “이미 작은 구멍을 통해 공기를 넣기 시작했으며, 굴착 작업 이후 구조팀을 안으로 투입할 것”이라고 했다.
트리슐리 3A 발전소에서 30㎞쯤 떨어져 있는 어퍼트리슐리(UT)-1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실종된 한국인 근로자 9명에 대한 구조 소식은 여전히 들리지 않고 있다. 라수와 지역 최상류에 있는 이곳에서는 네팔군 구조대가 두산에너빌리티 소속 6명과 한국남동발전 소속 3명 등 한국인을 비롯, 실종자 200여 명에 대한 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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