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건설기계… 굴뚝 산업도 데이터센터 특수
HD현대중공업은 이달까지 미국 데이터센터용 발전설비 1조5831억원어치를 수주했다. LG전자의 AI 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 수주액은 상반기에만 6000억원을 넘어섰다. 현대제철도 최근 신규 데이터센터 7건의 철강재 공급을 수주했다. 대한항공도 AI 화물 호조에 2분기 화물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46.1% 늘었다.
AI(인공지능) 붐의 과실이 엔비디아와 빅테크, 반도체 생태계의 울타리를 넘어 조선·철강·가전·건설기계·물류 등 굴뚝 산업의 지형까지 흔들고 있다. 24시간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고 고열을 뿜어내는 AI 데이터센터가 전 세계에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이를 세우고 돌리는 과정에서 전통 중화학 공업 전반에 전례 없는 낙수 효과가 번지고 있는 것이다.
HD현대중공업이 독자 개발한 중형 엔진 힘센(HiMSEN)은 전력망 포화로 비상이 걸린 미국 빅테크들이 자체 비상 발전용으로 눈을 돌리면서 수요가 폭증했다. 원래 선박 발전용으로 쓰이던 엔진이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 미국 에이페리온에너지그룹(6271억원)에 이어 이달 코반에너지그룹(9560억원)과 잇따라 손을 잡으며, 올 들어서만 데이터센터 발전용 엔진으로 1조5831억원어치를 수주했다.

◇1GW 데이터센터에 철강 18만~20만t 필요
철강 업계에선 ‘데이터센터 1기가와트(GW)당 철강 18만~20만t’이라는 새로운 수요 공식이 등장했다. 1GW급 AI 데이터센터는 원전 1기 발전량에 맞먹는 전력을 소모하는 만큼, 이를 지탱할 초고중량 골조와 H형강, 정밀 배관재가 필수다. 현대제철은 지난 3월 전담 태스크포스(TFT)를 신설하고 에너지저장장치(ESS)·송전망·센터 골조를 아우르는 ‘패키지 강재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이미 신규 데이터센터 7곳의 납품권을 따냈다. 포스코 역시 고내식 도금 강판과 특수 변압기 강재를 앞세워 수주 반경을 넓히고 있다.
LG전자는 ‘열과의 전쟁’에서 새 먹거리를 찾았다. GPU 성능이 극대화될수록 서버 랙(Rack) 내부 온도가 치솟으면서 기존 공랭식(공기 냉각)은 한계에 부딪혔다. LG전자는 반도체 칩에 직접 냉각판을 대고 차가운 물을 순환시키는 600kW급 냉각수분배장치(CDU)를 개발해 지난달 엔비디아의 품질 인증을 획득했다. 올 상반기에만 6000억원 이상의 냉각 솔루션을 수주한 LG전자는 올해 수조원대 프로젝트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굴뚝 산업까지 번진 AIDC 특수
낙수 효과는 기초 인프라와 공급망 전반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세계 최대 중장비 업체 캐터필러의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4% 급증한 205억달러(약 28조3000억원)를 기록했다. 넓은 부지를 평탄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서버와 발전·냉각설비의 무게를 견딜 기초를 만드는 데 굴착기와 불도저 같은 대형 장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항공업도 수혜를 보고 있다. 대한항공의 2분기 화물 매출은 1조5419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0% 넘게 증가했다. 반도체와 서버 부품처럼 값이 비싸고 납기가 중요한 화물은 운임이 비싸더라도 항공편을 택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거대 발전기와 변압기를 설치 전 보관할 산업용 부동산 수요마저 폭증세다. 북미 최대 물류 부동산 업체 링크로지스틱스는 1년 새 신규 임대 물량의 15%를 데이터센터 및 관련 장비 보관용으로 채웠다. 1GW 센터 하나당 인근에 축구장 25개 크기(약 5만6000평)의 장비 조립·보관용 창고가 새로 필요한 셈이다. 소프트웨어와 실리콘 칩에서 출발한 AI 혁명이 전력 인프라와 철강, 중장비 등 실물 경제의 기초 체력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물리적 산업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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