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대신 내가 사라졌어야"…신의 절규도 진흙더미에 파묻혔다 [네팔 대홍수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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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지진도 겪어봤지만, 이번 홍수는 훨씬 끔찍합니다."
네팔 대홍수 닷새째인 30일(현지시간) 한국일보가 찾아간 다딩 지역 가주리 마을은 남김없이 파괴된 채 잿빛 흙더미에 뒤덮여 있었다. 주민들은 뼈대만 남은 집에서 삽으로 진흙을 퍼내다가도 종종 넋을 잃은 채 하늘만 멍하니 올려다봤다.
이렇게 먼 곳까지 흘러오고도 마을 하나를 초토화시킬 정도로 어마어마했던 대홍수의 위력에 새삼 두려움이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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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마을에서 구호물품 지원
여신을 모시던 자리도 흔적만
과거 국왕 장례식 터도 사라져
군부대 앞에선 헬기만 바라봐

"2015년 대지진도 겪어봤지만, 이번 홍수는 훨씬 끔찍합니다."
네팔 대홍수 닷새째인 30일(현지시간) 한국일보가 찾아간 다딩 지역 가주리 마을은 남김없이 파괴된 채 잿빛 흙더미에 뒤덮여 있었다. 발이 푹푹 빠져 한 걸음 내딛기도 어려웠다. 주민들은 뼈대만 남은 집에서 삽으로 진흙을 퍼내다가도 종종 넋을 잃은 채 하늘만 멍하니 올려다봤다.
다딩은 빙하 붕괴와 돌발 홍수가 발생한 티베트 접경 지역에서 트리슐리강 줄기를 따라 남서쪽으로 120㎞가량 떨어진 하류 지역이다. 이렇게 먼 곳까지 흘러오고도 마을 하나를 초토화시킬 정도로 어마어마했던 대홍수의 위력에 새삼 두려움이 엄습했다. 며칠 새 물살은 약간 잦아들었지만, 상류에서 떠밀려온 시신 유해가 떠올라 주민들은 또 다른 공포에 떨고 있다.

가주리 마을에서 사망자나 실종자는 없었다. 그나마 대피할 시간이 확보된 덕분이다. 람서런(30)도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노모와 삼촌 등 가족과 함께 마을 맞은편 산 위로 도망쳤다고 했다. 물이 빠진 뒤 돌아온 집엔 망가진 가전제품 몇 가지만 나뒹굴었다. 람서런은 "며칠간 먹을 것이 없어서 마른 나무를 불에 태워 겨우 끼니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날 이웃 마을에서 쌀과 휴지, 이불 등 구호물품을 보내왔다. 주민 60여 명이 몰려들어 줄을 섰다. 하지만 한 가구당 배정된 쌀의 양은 성인 손바닥 두 개 크기 대접으로 세 번 퍼담을 수 있는 양에 불과했다. 현지 관계자는 "구호물품이 곧 또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주민들을 달랬다.
친정집에서 산후 조리를 하다 재난을 맞은 소바(18)는 2개월 된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채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은 차로 9시간 떨어진 도시에 머물고 있지만 도로가 끊겨 올 수 없는 까닭에 전화로만 안부를 확인하고 있다. 소바는 "아기를 안고 산으로 올라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천운이라 생각한다"며 "다만 환경도 열악하고 의약품마저 부족해 아기가 아프진 않을지 매일매일 걱정"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전날 찾아간 누와코트 지역 데비가트 마을도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가주리 마을보다 위쪽 중류인 데다 트리슐리강과 타디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피해가 특히 컸다. 양쪽에 강을 끼고 있는 마을은 뻘밭이나 다름없었다. 건물 상당수가 물살에 떠내려갔고, 남은 건물은 벽이 날아간 채 위태롭게 서 있었다. 주민들은 쓸 만한 살림살이라도 챙기려 집 안에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나왔다. 라스와(31)는 "의자와 항아리 등 몇 가지만 건져서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가려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데비가트란 지명은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여신을 모시는 신성한 나루터'라는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홍수는 인간은 물론 신에게도 무자비했다. 주민 바하드(71)는 "여기에 '잘파 데비'라는 여신이 모셔진 신전과 네팔 샤 왕조 초대 국왕의 장례식이 진행된 신성한 화장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가리킨 곳에는 신전도 화장터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부서진 기둥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데비가트에서 10㎞ 정도 떨어진 트리슐리 군사기지 앞에선 실종자 가족들이 애타는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사고 현장을 수색하는 군 헬기가 뜨고 내릴 때마다 철책 주변으로 인파가 몰렸다. 실종된 가족을 찾는 전단지를 들고, 저 헬기가 내 가족을 찾아오기를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었다. 수닐 카카르(30)는 "형의 차량 위치가 내 휴대폰에 뜨는데, 걸어서는 갈 수 없고 헬기로만 접근이 가능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죄책감에 몸서리쳤다. 마이스쿠 나딩(62)은 대홍수가 터지던 날 며느리와 함께 성지순례에 나섰다가 혼자만 목숨을 건졌다. 그는 "며느리가 아니라 내가 사라졌어야 했다"고 하염없이 되뇌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지나가는 경찰을 붙잡고 며느리 사진을 보여주며 행방을 묻고 또 물었지만, 경찰은 대답 없이 고개만 저었다. 나딩은 "당시 36명이 한 차량에 같이 타고 있었는데 그중 30명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군사기지 안에서 군인 4명이 헬기에서 부상자를 들것에 실어 내리자 철책 안팎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부상자는 양팔로 배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부상이 심하지 않으면 군사기지 내부 의무대에서 치료를 받지만, 중상자들은 군사기지를 거치지 않고 곧장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다. 군 관계자는 "홍수에 휩쓸려 간 군인과 경찰도 적지 않다"며 "혹시 알던 동료가 있을까 다들 한 번씩 확인한다"고 전했다.

다딩·누와코트(네팔)= 남병진 기자 sou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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