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의 퇴근길 대소동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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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영화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신화에서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괴물(키클롭스)에게 감언이설로 포도주를 먹인 뒤, 자신의 이름을 '노바디(우티스)'라고 소개하고 괴물의 눈을 찌른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 밧줄에 몸을 묶은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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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오디세이. 영화를 보고 왔다. 그것도 아이맥스로. ‘신드바드의 모험’이나 만화 ‘원피스’, ‘인디아나 존스’처럼 신나는 모험과 낭만적인 판타지 영웅 신화를 기대한 나에게는 살짝 아쉬움이 있었다. 신화라는 게 엄연한 판타지 장르인데,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해서인지 놀이동산을 기대하며 왔다가 템플스테이 하고 가는 기분이었다.
공작새처럼 스펙터클하고 화려한 컬러를 기대했는데, 오래된 누런 종이 위에 뿌려놓은 수묵담채화처럼 어두운 색감이 극장의 공기마저 무겁게 했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화면과 사운드 속에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 말을 걸어왔다. 살짝 들떴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고 스크린 속으로 훅 빨려 들어갔다.
‘오디세이’는 ‘여정’, ‘여행’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우리네 인생도 길고도 짧은 항해이자 모험이 아닐까? 우리가 어머니의 양수에 있을 시절, 세상은 무한한 바다라고 느껴졌을 것이다. 각자만의 바다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나 역시 ‘캡틴락의 항해일지’를 쓰며 나를 찾아 항해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오디세이’는 수많은 로드무비의 조상처럼 느껴진다. ‘은하철도 999’도, ‘어린왕자’도, 심지어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다이하드’마저도 어딘가 오디세이의 후손 같다. 결국 어딘가를 향해 떠나고, 온갖 일을 겪으며 자신을 발견하는 이야기니까.
오디세이의 큰 주제는 ‘나를 찾아 떠나는 인생이라는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름도 없이 태어났다. 지금의 나다움이 과연 언제부터였을까? 우주 어딘가에서 뿌려진 민들레 홀씨처럼 우리는 우연히 이 세상에 피어난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영화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신화에서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괴물(키클롭스)에게 감언이설로 포도주를 먹인 뒤, 자신의 이름을 ‘노바디(우티스)’라고 소개하고 괴물의 눈을 찌른다.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키클롭스에게 괴물 동료들이 모여들어 누가 눈을 찔렀느냐고 묻자, ‘노바디’라고 대답한다. 아무도 아니라고 대답하니 어이없어하며 괴물 동료들은 돌아간다. 이 대목에서 문득 ‘나 자신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존재. 이름도, 소속도, 계급도 없이 나에게 주어진 삶을 여행하며 나를 찾아 나서는 여행. 그것이 인생 아닐까?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에 돌아갔을 때, 이름 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나는 내 이름과 소속 없이 나를 증명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갑자기 진서연 배우가 쓴 책의 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내가 오디세우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인간적인 영웅이기 때문이다. 지혜로 모험을 헤쳐가지만, 또 오만함 때문에 온갖 수난을 겪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 오만을 ‘휴브리스’라고 표현한다. 그리스 신화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영웅은 ‘휴브리스’ 때문에 온갖 역경을 딛고 성공하다가도 미끄러진다.
오디세우스는 키클롭스의 눈을 멀게 한 뒤, 그냥 떠나면 될 것이지 꼭 안 해도 될 말 한마디를 덧붙인다. 부하들이 말리는데도, “그대의 눈을 멀게 한 것은 이타카의 집에 사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괴자 오디세우스라고 말씀하시오!”라고 말한다. 결국 휴브리스, 그 오만이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오디세우스가 오히려 인간적이라 마음이 간다. 만약 그가 결점 하나 없는 완벽한 영웅이었다면, 오디세이는 오랜 세월 사랑받는 고전이 될 수 있었을까? 욕망의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꼭 우리와 닮아 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 밧줄에 몸을 묶은 장면이다. 밀랍으로 귀를 막아 유혹을 아예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호기심 많은 오디세우스는 노래를 듣는 대신 자신을 묶어 놓는다. 세이렌의 음악을 들으며 마약 중독자의 금단 현상처럼 괴로워하지만 결국 견뎌낸다. 호기심 때문에 항상 개고생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통제하며 지혜를 얻는다. 호기심, 쾌락, 그리고 자제력.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10년 동안의 전쟁, 그리고 10년간의 귀향길. 참으로 긴 퇴근길이다. 31년차 크라잉넛은 어느 바다를 항해하고 있을까? 아니면 어떤 섬에서 괴물의 눈을 찌를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일까? 망각의 열매 로터스를 먹고 현실을 도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님프 칼립소의 유혹에 빠져 모험을 멈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 자체가 모험이고 서사인 것처럼, 지금 우리의 삶도 먼 훗날 돌이켜 보면 의미 있는 나날일 것이다. 지금 방황하고 있다면 기억하자. 오디세우스도 집에 가는 데 10년은 헤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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