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으신 분들만 왔다가”···대전 쪽방촌 재개발, 6년째 첫발도 떼지 못해[현장]

이종섭 기자 2026. 8. 3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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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25일 대전 동구 중동 쪽방촌 골목에서 한 주민이 그늘에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다. 이종섭 기자

대전역을 나와 오른편으로 돌면 낡은 여인숙과 낡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목길이 나온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대전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부터 형성된 쪽방촌이다.

지난 25일 대전 동구 정동 쪽방 골목 곳곳에는 유리창이 깨진 채 방치된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이곳 주민들은 올여름도 5~6㎡ 남짓한 쪽방에서 폭염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대전시, 동구는 2020년 ‘대전역 쪽방촌 도시재생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이곳 쪽방촌을 정비하는 공공주택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주변 상업지역을 활성화해 쇠퇴한 대전역 일대 원도심 변화를 이끌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그러나 현재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쪽방촌 한 주민은 “높으신 분들이 숱하게 왔다 갔을 뿐”이라며 “재개발한다고 얘기해봐야 소용없다. 이제는 믿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강모씨(78)도 “집이 다 썩어 비가 새고 곰팡이가 슬어도 갈 곳이 없어서 버티고 있다”며 “새집에 살게 해 준다고 했는데 생전에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전역 쪽방촌 도시재생 방안’을 발표한 6년 전만 해도 주민들은 기대에 부풀었다. 쪽방 밀집지역 1만5000㎡를 포함한 사업부지 2만7000㎡에 이들이 정착할 수 있는 영구임대주택과 청년들을 위한 행복주택 등 주택 14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쪽방보다 2~5배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저렴한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으며, 무료급식 및 진료 등을 제공하는 돌봄시설과 생활지원센터도 함께 설치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대전 동구 중동 쪽방촌에 공공주택사업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이종섭 기자

목표로 했던 완공 시점은 2024년이었지만, 이 사업은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보상 문제로 토지·건물 소유주들의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사업 시행을 맡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해 공사에 방해가 되는 건축물 등을 파악·평가하는 지장물 조사를 마쳤으며 지금은 보상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LH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보상에 착수해 2032년까지 사업을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지장물 조사 동의율이 52% 정도에 그쳐 소유주 반발은 여전한 상태다. 보상 협의는 물론 토지 수용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알 수 없다.

대전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쪽방촌 공공재개발 사업이 주거 난민을 위한 새로운 주거복지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첫발도 떼지 못한 상태”라며 “정부는 대부분 쪽방촌에 살지도 않는 부재지주인 토지·가옥주 반대만 핑계로 내세우지 말고 적극적인 추진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른 일반적인 재개발 사업은 토지 소유주 등이 75% 이상 동의해야 추진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전역 쪽방촌처럼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추진하는 공공주택사업에는 이런 동의율 요건이 적용되지 않는다. 의지만 있다면 사업 추진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LH 대전충남지역본부 관계자는 “그동안 보상대상자와의 접점을 확대해왔고 보상 착수를 위한 내외부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공공주택지구 사업은 국토부 지구 지정만으로도 추진이 가능하지만,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토지·건물 소유자 등 이해관계자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소통과 협의로 사업 지연 요인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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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기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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