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베 흠집냈다고 택배기사에 “2100만원 물어내라”…아파트 ‘갑질’ 여부 따져보니

방영덕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byd@mk.co.kr) 2026. 8. 3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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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가 택배기사에게 엘리베이터 손상 시 '범칙금 2100만원'을 부과하겠다고 공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택배기사와 아파트 입대의 간 갈등은 과거 '택배대란'이나 승강기 이용료 부과 등의 문제로 끊이질 않고 있다.

반면 택배기사에게 엘리베이터 손상시 '범칙금 2100만원'을 부과하겠다고 한 이번 논란의 핵심인 '범칙금'이나 '벌금'은 성격이 다르다.

입대의와 택배기사 사이의 갈등을 단순히 어느 한쪽의 '갑질'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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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차량 진입 등 제한
위법으로 보기 어려워
지난 2021년 4월 14일 오후 서울 강동구 A아파트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관계자, 롯데택배·우체국택배 택배기사들이 택배 물품을 단지 앞에 내려놓고 있는 모습. [매일경제DB]
최근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가 택배기사에게 엘리베이터 손상 시 ‘범칙금 2100만원’을 부과하겠다고 공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택배기사와 아파트 입대의 간 갈등은 과거 ‘택배대란’이나 승강기 이용료 부과 등의 문제로 끊이질 않고 있다.

도대체 입대의가 아파트 관리를 명목으로 택배기사와 같은 외부인들에게 요구하는 권한은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30일 관련 업계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입대의는 입주자를 대표해 공동주택 관리에 관한 주요 사항을 결정하는 자치의결기구다. 공동주택관리법 등에 따라 부대시설과 복리시설, 공용시설 등의 이용 방법과 관리에 관한 사항 등을 의결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와 주차장 등 공용부지를 어떻게 이용할지 정하는 것도 입대의의 권한에 포함된다.

이에 따라 입대의가 외부 차량의 단지 내 진입을 제한하거나 주차장과 같은 공용시설의 이용 방법을 정하는 것 자체가 곧바로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택배기사에게 엘리베이터 손상시 범칙금 부과를 고지한 아파트 공고문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택배기사와 아파트 입대의 간 갈등이 반복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에서 발생한 ‘택배대란’이다. 당시 한 아파트 단지 입대의가 택배차량의 지상도로 진입을 막고 지하주차장으로 출입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택배차량의 높이가 2.5m 이상인 데 비해 해당 아파트 지하주차장 진입로의 높이가 이에 미치지 못해 차량이 지하로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택배기사들이 문 앞 배송을 중단하고 단지 지상도로에 택배를 쌓아두면서 이른바 ‘택배대란’으로 이어졌다. 이후 인천 송도국제도시와 서울 강동구, 경기 성남 등에서 유사한 갈등이 반복됐다.

2024년에는 충북 한 아파트에서 택배 기사들에게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사용하려면 매년 돈을 내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 단지가 택배기사들에게 공동 현관과 승강기 이용요금을 받으려다 논란이 일자 철회했다.

이와 관련 전국택배노조 관계자는 “현관·승강기·주차장 이용 요금을 요구하는 등 아파트에서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제보가 종종 들어온다”며 “아파트 주민들에게 택배 기사들은 ‘을’이라 혼자서는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택배 차량의 아파트 출입 금지와 문앞 배송 중단으로 논란이 된 서울 강동구 고덕 A아파트 앞 모습. [매일경제 DB]
이 때 입대의의 관리 권한이 인정된다고 해서 모든 요구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을 보면 공용시설물 이용료 부과 기준 등을 입대의에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정한 조건에서 외부인의 공용시설 이용에 비용을 부과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러나 같은 시행령은 입대의가 의결할 때 입주자 등이 아닌 사람으로서 해당 공동주택 관리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토부 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는 공동주택 주차장을 불특정 다수에게 계속적·반복적으로 개방하고 공영주차장 수준의 요금을 받는 것은 주차장을 영리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어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안내했다.

단지 내 도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내 도로 역시 공동주택의 부대시설에 해당하기 때문에 단순히 통행한다는 이유만으로 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은 허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국토부의 해석이다.

택배기사에게 승강기 이용료를 받는 문제는 별도의 논란거리다. 경기도는 2018년 생업을 위해 배달하는 사람에게 승강기 이용료를 부과하는 것이 과도하다며 관련 규정을 개정해달라고 국토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시행령에 택배·배달기사의 승강기 이용료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별도 규정은 마련되지 않았다.

반면 택배기사에게 엘리베이터 손상시 ‘범칙금 2100만원’을 부과하겠다고 한 이번 논란의 핵심인 ‘범칙금’이나 ‘벌금’은 성격이 다르다.

범칙금은 법률에 근거해 행정기관이 부과하는 금전적 제재이고, 벌금은 법원이 형사재판을 통해 선고하는 형벌이다. 따라서 사적 자치기구인 입대의가 자체 공고만으로 택배기사에게 법률상 범칙금이나 형벌인 벌금을 부과할 순 없다.

엘리베이터에 실제로 손상이 발생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입대의가 손해를 입증하고 해당 택배기사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 역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유재산을 침범했다고 사적 주체 간에 범칙금 등의 이름으로 상대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용인이 어려울 것”이라며 “실제 손해가 발생했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 등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밟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입대의와 택배기사 사이의 갈등을 단순히 어느 한쪽의 ‘갑질’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파트 입주민 입장에선 수백 가구가 이용하는 승강기와 주차장 등 공용시설의 안전과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수많은 물량을 배송해야 하는 만큼 효율적인 동선 확보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양측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선 단지별 여건에 맞는 배송 공간과 차량 동선을 마련하는 한편, 입주민과 택배기사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용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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