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드라마》, 멜로의 탈을 쓴 인간 심리 보고서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2026. 8. 3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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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이에 비밀은 관계를 가로막는 장벽일까? 설마. 사소한 비밀까지 공유하는 게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어떤 진실'은 때로 나보다 상대를 위해 묻어두는 게 이로울 수 있다.

"사랑하면 할수록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사랑의 행위를 통해 내가 체득하는 지혜는, 그 사람은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미지의 누군가를, 그리고 영원히 그렇게 남아있을 누군가를 열광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나는 알 수 없는 것의 앎에 도달한다."

더는 상대를 사랑할 수 없겠다는 마음과,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는 마음 사이에서 겪는 딜레마를 촘촘하게 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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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로맨스에 뿌려진 독약…인간 민낯 들추는 드라마
젠데이아의 충격적 과거 고백…파국 향하는 ‘진실게임’

(시사저널=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사랑하는 사이에 비밀은 관계를 가로막는 장벽일까? 설마. 사소한 비밀까지 공유하는 게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어떤 진실'은 때로 나보다 상대를 위해 묻어두는 게 이로울 수 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 게 아니라면 말이다. 게다가 상대에 대한 환상으로 시간을 건너기도 하는 게, 사랑이다. 그런 환상이 무너진다면? 상대의 모든 비밀을 알고도 이전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여기 한 쌍의 커플이 있다. 엠마(젠데이아)와 찰리(로버트 패틴슨). 결혼을 앞둔 이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환상의 짝꿍이다. 서로에게 푹 빠져 있는 두 사람은 상대가 자기 운명의 짝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순간, 균열은 의외의 곳에서 온다. 그놈의 '진실게임'이 화근이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들러리를 맡은 친구 부부와 가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살면서 저지른 가장 최악의 일'에 관한 대화가 오간다. 농담으로 시작한 대화는 예상치 못한 엠마의 고백으로 얼어붙는다.

영화 《더 드라마》 포스터 ⓒTEO, sunlovetour, 워터홀컴퍼니㈜

로맨스 외피를 입은 심리극

엠마가 저지른 과거가 무엇이기에 그럴까. 도둑질? 외도? 그 과거는 충격적이게도 총격 테러 계획이다. 학교 총기 테러를 계획했던 과거가 엠마에게 있었던 것. 범죄 실행 전에 단념했다고는 하지만, 예비 신부가 던진 폭탄 발언에 찰리와 친구 부부는 아연실색한다. 엠마의 한쪽 귀가 안 들리는 이유도 어린 시절 아버지 소총으로 사격 연습을 하다가 고막이 손상돼 생긴 일이었음이 밝혀지면서 찰리는 더욱 충격을 받는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더 드라마》는 로맨스에서 심리극으로 방향을 튼다. 카메라가 가장 비중 있게 다루는 건 찰리의 심리다. 다른 과거도 아니고, 총기 테러를 계획했던 과거가 있는 사람이 곧 결혼할 피앙세라니. 어떤 면에선 잠재적 범죄자 아닌가. 찰리의 머리는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일어나지 않았던 과거가 상상을 키우며 미래를 흔든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데, 엠마를 향한 찰리의 믿음은 흔들린다.

엠마는 엠마대로 일어나지 않은 과거에 집착하는 찰리가 서운하다. 자신을 향한 찰리의 신뢰가 붕괴되는 걸 지켜보는 마음이 불편하다. 뒤늦게, 최악의 과거를 입 밖으로 꺼낸 자신의 '자살골'을 후회하지만 주워 담기엔 늦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하게 된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음을 알게 된 사람, 둘 모두 괴롭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되는 질문. 사랑하는 사이에 비밀은 관계를 가로막는 장벽일까? 설마. 롤랑 바르트는 《사랑과 단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면 할수록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사랑의 행위를 통해 내가 체득하는 지혜는, 그 사람은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미지의 누군가를, 그리고 영원히 그렇게 남아있을 누군가를 열광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나는 알 수 없는 것의 앎에 도달한다." 

《더 드라마》는 독특한 드라마다. 로맨스라는 외피에 사회적 주제를 숨겨 영화 속 인물들은 물론 관객도 놀라게 한다. 감독의 과거를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순한 맛 로맨스가 아니리라 예상했을 수 있다. 연출을 맡은 크리스토퍼 보글리는 《해시태그 시그네》 《드림 시나리오》에서 자기모순에 빠지는 인물들을 집요하게 파헤쳐온 인물이다. 숨기고 싶은 인간의 민낯을 포착하기에 그의 영화는 관객에게 표정 관리를 요구하기도 한다. 《더 드라마》도 그 연장선에 있다. 결혼을 앞둔 커플이라는 익숙한 설정을 통해 관계가 흔들리는 순간 드러나는 인간의 취약함을 날카롭고 밀도 있게 파고든다.

보글리는 이번 작품에서 도덕적으로 복잡한 인간의 본성과 선입견을 들추기도 한다. 엠마는 결혼식에서 음악을 맡을 디제이(DJ)가 거리에서 무언가를 흡입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헤로인이라고 단정 짓는다. 도덕적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결혼식 DJ를 맡겨도 될까? 결혼식을 앞두고 커플과 마주한 디제이는 길거리에서 한 것이 헤로인이 아니었다고 항변하지만, 엠마는 상대의 말을 믿지 않고 그를 해고한다. 정작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억울함을 호소하던 엠마가 타인의 과거 앞에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모습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이중성과 선입견을 보여준다.

의미심장하게도 이 드라마는 이중적이란 이유로 미국 개봉 당시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다. 영화의 핵심 소재를 감추고 밝고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홍보했다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인데, 미국 사회에서 중차대한 문제로 다뤄지는 민감한 소재를 상업영화가 건드리는 걸 두고 호불호가 갈렸다.

여러 호불호 속에서도 이견이 갈리지 않는 게 있다면 젠데이아와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다. 낭만적 사랑에 심취한 다정한 연인의 모습부터, 돌발 변수 앞에서 휘청이는 연인의 모습까지 간극이 큰 인물들의 감정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더는 상대를 사랑할 수 없겠다는 마음과,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는 마음 사이에서 겪는 딜레마를 촘촘하게 살려낸다.

영화 《더 드라마》 스틸컷 ⓒTEO, sunlovetour, 워터홀컴퍼니㈜

할리우드 산업의 정점에 서있는 두 배우

영화는 할리우드 산업의 정점에 서있는 두 배우의 현재를 가늠하게 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놓치면 서운한 작품임은 분명하다. 엠마를 연기한 젠데이아는 현시점,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파급력을 지닌 배우다. 올 한 해 공개되는 작품만 4편. 출연작 면면을 살펴보면 더욱 놀라운데, 크리스토퍼 놀란(《오디세이》)과 드니 빌뇌브 영화(《듄》), 마블 스튜디오의 인기작(《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과 작가주의 성향이 강한 《더 드라마》까지 장르와 작품 크기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하는 중이다.

로버트 패틴슨 역시 할리우드에서 1인 이상의 몫을 해내는 배우다. 《더 드라마》뿐 아니라 《오디세이》 《듄》에 출연하며 젠데이아 못지않은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오디세이》에서 안티노우스 역을 맡아 지질한 연기의 끝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는데, 지질함에 있어서는 《더 드라마》에서 연기한 찰리가 한 수 위다. 흔들리는 믿음 앞에서 자멸하는 찰리의 모습을 보다 보면 정녕, 이 배우가 《트와일라잇》 때 '발 연기' 소리를 듣던 그 뱀파이어였나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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