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 울리는 R&B 그루브… 애틋한 母女의 사랑, 흑인 음악에 실려 춤추네

이태훈 기자 2026. 8. 3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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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가득 R&B 음악과 스트리트댄스·미술의 조화
아련한 90년대 뉴욕 맨해튼… 뮤지컬 ‘헬스키친’
뮤지컬 '헬스키친' 공연 사진. /에스앤코

‘R&B(리듬 앤 블루스)의 여왕’ 얼리샤 키스(Alicia Keys), 음표가 눈앞에서 춤추는 듯한 재즈 피아노, 1990년대 뉴욕 맨해튼의 흑인 거주 지역, 손에 잡는 건 뭐든 북처럼 두드리며 춤추는 젊은이들…. 이런 말들에서 어떤 음악과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그 모습 그대로가 이 뮤지컬 ‘헬스키친(Hell’s Kitchen)’이다. 첫 곡이 시작되고 흑인 음악 특유의 합창 코러스와 드럼 비트가 공연장 객석 의자를 타고 올라오면, 처음 만나는 놀라운 그루브의 예감이 온몸을 진동시킨다.

뮤지컬 '헬스키친' 공연 사진. /에스앤코

서울 역삼 GS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헬스키친’은 미국 브로드웨이 개막 이후 약 2년 만에 선보이는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이자 한국 초연. 얼리샤 키스가 제작자로 나서 자신의 히트곡들을 모아 완성한 자전적 뮤지컬이다. 이 뮤지컬은 2024년 토니상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여우 주·조연상을 받았다. 비평에 신랄하기로 유명한 가디언이 별 5개 만점을 줬다.

1990년대 맨해튼 예술가 동네 헬스키친에 사는 18살 소녀 ‘앨리’는 위험한 뉴욕 거리에서 안전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엄마에게 반항하며 갈등한다. 피아노 연주자를 선생님으로 만나 음악을 꿈꾸기 시작하고, 풋풋한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성장해 간다.

이 뮤지컬의 매력은 무엇보다 흑인 음악 그 자체. 플라스틱 페인트 통을 엎어 놓고 드럼스틱으로 두드리기만 해도 어깨가 들썩이는 걸 참을 수 없다. 넘치는 R&B 소울에 힙합 그루브, 심장을 울리는 드럼 비트, 댄서들의 힘찬 군무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등장인물이 하나 혹은 둘인 장면에서도 댄서와 코러스 배우가 계속 등장해 노래하고 춤 춘다.

뮤지컬 '헬스키친' 공연 사진. /에스앤코

익숙한 명곡의 멜로디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강점인 동시에 약점. ‘헬스키친’은 브로드웨이 공연부터 얼리샤 키스의 히트곡에 새로운 서사적 의미를 더하는 데 성공했다는 호의적 평가를 받았다. ‘폴링(Fallin’)’ ‘노 원(No One)’ 같은 히트곡의 쓰임도 대단하지만, 사랑에 빠진 앨리의 감정이 가장 고조될 때 폭발하는 ‘걸 온 파이어’의 후렴구, 이 모든 이야기들의 마지막에 “꿈이 만들어지는 콘크리트 정글”이라며 뉴욕을 호명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의 후렴구에선 음악과 이야기가 정교하게 맞아떨어지는 쾌감에 소름이 돋는다.

때론 잡아먹을 듯 소리치며 싸우다가도 끝내 함께 부둥켜안고 울고 마는 엄마와 딸의 사랑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포인트. 주인공 ‘앨리’ 역엔 폭발적 가창력으로 첫 손에 꼽히는 배우 손승연과 김수하가 무대에 오르고, 뮤지컬 데뷔인 걸그룹 프로미스나인의 보컬 박지원까지 트리플 캐스팅을 완성했다. 방랑벽이 있는 재즈 피아노 뮤지션인 앨리 아빠 ‘데이비스’ 역은 달콤하고 묵직한 미성의 R&B 가수 테이와 K윌. 노래할 때 마다 관객의 고막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듯 하다. 박해나 등 앨리 엄마 역 배우들의 노래, 앨리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라이자 선생님 역 배우들의 저음 보컬도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뮤지컬 '헬스키친' 공연 사진. /에스앤코

무대는 몬드리안이 네온사인과 철골로 그린 그림 같다. 도회적인 녹색과 회색조의 색채를 기조로, 영상과 조명을 영리하게 사용해 맨해튼의 빌딩 숲과 앨리가 사는 고층 건물을 표현할 때 무대 전체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음악과 춤, 미술이 하나가 돼 극중 ‘앨리’가 혹은 알리샤 키스가 사랑했던 1990년대 맨해튼 풍경 자체를 빚어내는 듯하다. 그 자체로 무척 조화로워 흠결이 눈에 띄지 않는다.

얼리샤 키스는 “전혀 다른 언어로도 내 노래 속 의미가 완벽하게 통한다고 느꼈다. 이 공연이 여러분을 꿈꾸게 하고,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어서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다는 걸 일깨우는 영감을 드릴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공연은 11월 8일까지 8만~17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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