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 다음은 탈모약… 월가가 찍은 ‘새 금광’

비만 치료제 열풍으로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 주가가 치솟은 데 이어 월가의 시선이 이번에는 ‘탈모 치료제’로 향하고 있다. 수천만 명이 치료 대상이지만 수십 년간 이렇다 할 신약이 나오지 않았던 탈모 시장에서 새로운 치료제가 잇따라 등장하면서다. 일부 탈모 치료제 개발사의 주가는 올해 들어 수백%씩 급등했다.
미 경제 전문지 포천과 블룸버그는 29일 “GLP-1(위고비와 마운자로 등에 쓰이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주식은 잊어라. 탈모 치료제가 월가의 다음 금광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유전성 탈모를 겪는 사람은 남성 약 5000만명, 여성 약 3000만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미국에서 새로운 탈모 치료제가 승인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 마지막이다.
신약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관련주도 뛰고 있다. 미국 탈모 치료제 개발사 베라더믹스는 지난 2월 기업공개(IPO) 이후 주가가 약 500% 상승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신약을 개발하는 앱사이(Absci)도 올해 들어 주가가 두 배 이상 올랐다. 스위스 증시에 상장된 이탈리아 제약사 코스모 역시 남성형 탈모 치료제 임상시험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내놓았다.
월가가 탈모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기존 치료제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현재 탈모 환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약은 바르는 미녹시딜과 먹는 프로페시아(피나스테리드)다. 하지만 미녹시딜은 심계항진, 피나스테리드는 성욕 저하 등의 부작용 우려가 있다. 모발 이식은 가격이 비싸고 수술 부담도 크다.
길 블룸 니덤 애널리스트는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이식하기 위해 튀르키예까지 비행기를 타고 간다”며 “모발 이식을 하지 않고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월가는 부작용이 적고 사용하기 편한 탈모 치료제가 나온다면 소비자들이 보험 적용 없이도 자기 돈을 내고 살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비만 치료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과정과 닮았다는 분석이다.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의 성공으로 일라이 릴리의 시가총액은 1조달러를 넘어섰고, 노보 노디스크는 한때 유럽 시가총액 1위 기업에 올랐다. 제약사와 투자자들은 이 같은 ‘대박’이 탈모 치료제 시장에서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기존 치료제보다 나은 선택지를 얻기 위해 소비자들이 기꺼이 자기 돈을 지불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탈모 치료제 시장을 아직 개발되지 않은 거대한 ‘금광’으로 평가한다.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한 GLP-1 비만 치료제 시장의 성공이 탈모 치료제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용화에 가장 가까운 후보 중 하나는 코스모의 바르는 탈모 치료제 ‘클라스코테론’이다. 남성형 탈모를 일으키는 호르몬의 작용을 모낭에서 직접 차단하는 방식이다. 클라스코테론 5% 외용액은 코스모가 여드름 치료제로 판매하고 있는 윈레비와 동일한 유효 성분을 이용한다. 코스모는 이 치료제를 자사 제품 가운데 “단일 품목으로 가장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2027년 1분기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코스모의 남성 탈모 치료제 매출이 향후 전 세계에서 3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애널리스트들은 향후 12개월 동안 코스모 주가가 현재의 거의 두 배까지 오를 여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베라더믹스는 지난 4월 먹는 미녹시딜 제제의 남성형 탈모 임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내놨고, 7월에는 여성 탈모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도 가능성을 확인했다. FDA 허가를 받을 경우 여성형 탈모 치료제로 승인된 첫 먹는 약이 될 수 있다. 앱사이는 AI가 설계한 주사형 탈모 치료제 ‘ABS-201’을 개발하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 중간 임상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탈모 시장은 한 회사가 독식하기보다는 여러 치료제가 공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로저 송 제프리스 애널리스트는 “탈모 환자들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면 처방약과 일반의약품을 여러 개 함께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 시장은 여러 치료제를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제2의 GLP-1’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신약 개발은 임상 실패 가능성이 높고, 비만과 달리 탈모는 질병 치료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보험 적용을 받기 쉽지 않다. 소비자가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포천은 “과거에도 수많은 비만 치료제가 등장했지만 상당수가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성장하지 못했고 일부 회사는 파산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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