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만에 원전 19기만큼 늘었다…27GW는 어떻게 계산됐나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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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경기 파주의 LG유플러스 AI 데이터센터 공사 현장.
수도권에서 이만한 전력을 확보한 데이터센터는 여기가 유일하다.
반면 데이터센터는 기업 투자계획 20.8기가와트 가운데 구체화된 1단계 10.8기가와트만 반영됐다.
"데이터센터는 100만큼의 전기를 쓰겠다고 신청하고, 실제로는 30이나 50만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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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경기 파주의 LG유플러스 AI 데이터센터 공사 현장. 부슬비가 내렸지만 크레인은 멈추지 않았다. 전산동 4개와 사무동 1개, 연면적이 축구장 21배에 이르는 규모다. 1동은 건물 뼈대가 올라 데이터센터의 형체를 갖췄고, 그 옆 2동 자리는 터파기가 끝난 상태였다. 길 하나 건너에는 변전소가 서 있다.
1동은 내년 6월 준공 예정인데, 판매가 이미 끝났다. 2028년까지 2동과 3동을 추가로 짓는다. LG유플러스의 설명이다.

수요가 흔들리면 다 흔들린다
전기본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2년마다 세우는 15년 단위 법정 계획이다. 정부가 위촉한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총괄위원회가 실무안을 만들고, 확정은 정부가 한다. 전기가 얼마나 필요할지 먼저 전망하고, 그에 맞춰 원전·석탄·LNG·재생에너지의 비중과 송전망 규모를 정한다. 출발점인 수요 전망이 흔들리면 뒤의 계산이 다 흔들린다.
■ 전기본, 정권마다 갈렸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02년 1차부터 2년 주기로 수립돼 왔다. 15년 뒤를 내다보는 계획인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자리가 뒤바뀌었다.
8차(2017년) :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반영됐다. 계획돼 있던 신규 원전 6기가 백지화되고, 노후 원전 10기의 수명 연장이 중단됐다. 월성 1호기도 공급 대상에서 빠졌다.
9차(2020년) : 2034년까지 가동연한 30년에 도달하는 석탄발전 30기를 폐지하고, 이 가운데 24기는 LNG로 전환하기로 했다.
10차(2023년) : 윤석열 정부에서 방향이 다시 바뀌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가 계획에 반영됐고, 2030년 원전 발전 비중은 32.4%로 높아졌다.
11차(2025년 2월) : 신규 대형 원전 2기와 SMR 1기가 담겼다. 실무안에서는 대형 원전 3기까지 제시됐지만, 국회 보고 과정에서 야당 반발이 이어지자 정부는 원전 1기를 줄이고 태양광 2.4기가와트를 늘리는 수정안으로 조정했다. 대형 원전 2기의 부지는 올해 6월 경북 영덕, SMR 1기의 부지는 부산 기장으로 선정됐다.
12차(진행 중) : 정권 교체 후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주관하는 첫 전기본이다. 잠정안 단계부터 대국민 토론회를 거듭 여는 '개방형' 방식을 내세웠다. 11차 계획에 반영된 원전 외에 신규 원전을 더 지을지는 이번 계획에서 결정된다.
4개월, 원전 26기
지난 4월 3차 토론회에서 12차 전기본 총괄위원회는 2040년 최대 전력을 131.8~138.2기가와트로 전망했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의 추가수요는 각각 4기가와트 안팎으로 잡았다.
두 달 뒤 판이 뒤집혔다. 6월 29일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토론회에서 수요가 늘어난 배경을 이렇게 요약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준공 시기가 앞당겨지고, 호남권에 반도체 공장 4개를 짓는 계획이 새로 생겼으며, 당시엔 예측하지 못했던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더해졌다는 것이다.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는 이후 7월 광주 군공항으로 정해졌다.
그렇게 다시 계산한 결과가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5차 토론회에서 나왔다.

2040년 최대 전력 수요는 158.4~165.0기가와트. 넉 달 전보다 27기가와트 가까이 늘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이렇게 비교했다. "4월에 발표한 값에 비해 4개월 만에 26.6기가와트가 늘었다. 우리나라 전체에 있는 원전만큼을 새로 지어야 하는 양이다." 국내 운영 원전은 26기, 총 설비용량은 약 26기가와트다. 최신 대형 원전(1.4기가와트급)으로 환산하면 19기 분량이다.
재전망을 발표한 최용옥 중앙대 교수(12차 전기본 수요계획위원)의 설명은 이렇다.
반도체 92%, 데이터센터 52%
"발표된 모든 투자 계획을 그대로 수요에 반영한 것은 아니다. 사업 주체와 투자 계획의 구체성, 사업 진행 정도와 시장 불확실성을 검토했고,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는 서로 다른 수준의 불확실성을 가진 것으로 판단해 반영 방식을 달리 적용했다."
반도체 기업들은 용인 클러스터 조기 준공, 호남권 신규 조성, 평택·청주 팹 증설을 근거로 계약전력 기준 약 40기가와트의 수요 잠재량을 제시했다. 이 중 36.8기가와트가 반영됐다. 반면 데이터센터는 기업 투자계획 20.8기가와트 가운데 구체화된 1단계 10.8기가와트만 반영됐다. 최 교수는 발제에서 "2단계 10기가와트는 이번 전망에서 반영하지 않았다"라며 시장 상황과 실제 사업 진행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36.8기가와트와 10.8기가와트는 기업 투자계획 가운데 이번 전망에 우선 반영하기로 한 물량이다. 이를 기존 성장 추세와 겹치지 않도록 조정하고 실제 최대전력이 발생하는 시간대의 부하 특성을 반영하자, 2040년 추가수요는 반도체 24.3~24.6기가와트, 데이터센터 11.9기가와트로 계산됐다.
4월 전망과 비교하면 반도체가 20.6기가와트, 데이터센터가 7.9기가와트 늘었다. 둘을 합치면 28.5기가와트다. 여기에 모형수요와 전기화 수요의 변화, 강화된 수요관리와 부하이전 효과까지 모두 합친 결과 최종 최대전력 전망의 증가폭이 26.6~26.8기가와트가 됐다.
왜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를 갈랐을까?
9차 전기본 총괄분과 위원장을 지낸 유 교수는 이 판단을 합리적이라고 봤다.
"데이터센터는 100만큼의 전기를 쓰겠다고 신청하고, 실제로는 30이나 50만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험담도 보탰다. "9차, 10차 계획 때도 다 반영해야 하느냐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때도 반 정도만 반영했는데, 그게 맞았다."
그가 든 근거는 현재 수요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1기가와트밖에 안 된다. 정말 그것의 15배로 늘어날 것이냐는 신중하게 봐야 한다."
산식은 보이는데, 잣대는 안 보인다
같은 총괄위가 26일 공개한 재생에너지 전망은 달랐다. 해상풍력 45기가와트는 현재 0.4에 기존 허가물량 24.6, 신규 계획입지 20을 더한 값이라고 산식까지 붙였다. 공급 쪽은 덧셈을 보여줬는데, 수요 쪽은 아직이다.
환경단체들은 성명을 내고 무엇이 확정 수요이고 무엇이 잠재 수요인지부터 검증하라고 요구했다. 1단계 데이터센터가 계획대로 전면 가동될지조차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수요를 키워 원전 추가의 명분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깔려 있다.
절전과 효율화로 줄이겠다는 수요관리 목표도 기준 시나리오에서 4월 16.8기가와트에서 이번에 19.4기가와트로 늘었다. 대형 원전 2기가량을 더 아끼겠다는 것인데, 발표자 스스로 "상당히 도전적인 목표"라고 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그만큼의 전기가 다시 모자라게 된다.
수요를 부풀리면 쓰지 않을 발전소를 짓게 되고, 그 비용은 전기요금으로 돌아온다. 반대로 낮춰 잡으면 공장이 전기를 못 받는다. 김 장관도 토론회에서 이 딜레마를 인정했다.
"2040년까지의 전기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유 교수의 답은 단계적 대응이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면, 그때 발전소를 더 짓는 형태로 대응해도 늦지 않다."
남은 계산서
공급 쪽 첫 답은 26일 나왔다. 총괄위원회는 6차 토론회에서 사업용 재생에너지 설비를 2030년 100기가와트, 2040년 220기가와트까지 늘리는 보급 전망 잠정안을 공개했다. 현재 37기가와트의 6배다. 태양광이 155기가와트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현재 0.4기가와트뿐인 해상풍력을 45기가와트까지 키운다는 계획이다.

다만 설비와 발전량은 다르다. 20일 오전 토론회에서는 재생에너지 100기가와트의 연간 발전량이 메가프로젝트의 연간 전력 소비량의 58%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산업계도 마찬가지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6월 국민보고회에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원전 확대와 LNG 열병합발전을 정부에 건의했다. 전기를 가장 많이 쓰게 될 쪽의 요구다.
원전 쪽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기후부는 최근 국회 서면답변에서 신규 원전 건설 반영 여부를 검토하고, 원전 계속운전 허용기간을 10년에서 20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시간이 맞느냐는 물음에 유 교수는 근거로 부지를 들었다. "공론화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재 확보된 부지를 활용하면 적기에 원전을 지어 전기를 공급하는 데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고리와 영덕, 한빛에 여유 부지가 있어 부지 지정에 드는 3~4년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용 문제도 남아 있다. 유 교수는 송전망 재원 구조를 짚었다. "송전망은 100% 한전이 비용을 부담하게 돼 있어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된다. 철도망이나 고속도로망은 국비가 30~50% 투입되고 있다." 송전망도 그런 구조로 바꾸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20일 토론회의 좌장은 발제 직후 이렇게 정리했다. "확정된 수치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공개하고 검증받는 자리다." 넉 달 만에 원전 19기만큼 커진 이 숫자는 10월 정부안을 거쳐 연내 확정된다.
장선이 기자 su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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