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하면서 꾸밈없는 맛
[정동현의 pick] 파스타
이탈리아 피렌체의 뒷골목 식당들은 가게 문을 활짝 열고 거리의 좁은 틈까지 테이블을 펼쳐 놓았다. 식당 몇 군데를 서성거리다가 동전을 던지는 기분으로 한곳에 자리를 잡았다. 옆에는 머리가 길고 늘씬한 여자와 곱슬머리에 마른 남자가 작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 둘은 곧 이탈리아 생햄이 넓게 깔린 큰 접시 하나를 먼저 받았다.
햄 두어 점을 집어먹을 시간이 지나자 곧 비슷한 크기의 접시 두 개가 또 나왔다. 한국으로 치면 바지락 칼국수 대접만 한 접시 위에 굵은 면발의 파스타가 한가득 있었다. 국물 하나 없이 뻑뻑한 소스를 비벼 낸 파스타는 보기만 해도 목이 메는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포크에 면을 감아올렸고, 생햄은 그대로 테이블 한가운데 남아 있었다.

프랑스에서 음식을 시킬 땐 레고 블록을 쌓듯이 앞뒤의 순서와 맥락을 찾아야 했다. 이탈리아 음식은 제각각 모두 주인공이었다. 하긴 절대 군주가 집권하던 프랑스와 로마 시대 이후 소국들로 나뉘어 있던 이탈리아의 음식이 같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무대에 오르듯 화려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개성이 있되 연인의 편안한 데이트처럼 소박해야 한다는 그 모순의 틈바구니에 이탈리아 음식이 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이탈리아 음식이 있지만 그 감각의 뿌리를 뒤쫓다 보면 결국 이탈리아 요리사를 찾게 된다. ‘파브리키친’을 찾아 도산공원 근처 건물 2층으로 올라간 것도 그 이유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가벼운 리듬의 노래가 먼저 귀에 들어왔다. 영어가 아니라 이탈리아 노래였다. 주방장이 직접 선곡한 노래라고 직원이 설명했다. 벽에 걸린 액자와 장식, 이탈리아 국기의 색을 본떠 초록과 빨강으로 띠를 두른 주방 벽의 타일이 보였다. 숨길 수 없고 숨기려 하지 않는 이탈리아의 색이 모든 곳에 뿌려져 있었다. 키가 큰 주방장은 주방과 홀을 부지런히 오갔다. 메뉴판을 보니 이 집은 이탈리아 전역의 음식을 모두 다루고 있었다.
처음 나온 ‘프리셀라’는 풀리아(Puglia) 지방의 전통 음식이었다. 풀리아는 이탈리아 모양을 장화로 치자면 뒷굽 정도에 있는 지방이다. 베이글처럼 가운데가 뚫린 빵을 말린 뒤 화이트 식초에 적셔 되살렸다. 그 위에 해산물을 얹고 레몬으로 맛을 낸 소스를 빵 가운데 담듯 부었다. 빵을 크게 잘라 입에 넣자 빵에 스며든 레몬 소스의 시원한 산미가 파도처럼 입 안을 뒤덮었다. 말끔하게 손질한 새우와 홍합 같은 해산물, 절인 양파, 올리브는 그 파도에 휩쓸려 몸 안으로 들어왔다. 작게 뜯어 먹는 음식이 아니라 입을 크게 벌려 하나로 느껴야 하는 맛이었다. 작은 럭비공처럼 생긴 ‘수플리’는 토마토소스 리조토를 뭉쳐 튀겼다. 바삭한 겉을 이로 깨부수자 부드럽고 뜨거운 리조토가 흘러나왔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 리조토와 파스타가 연이어 나왔다. ‘리조토 콘 뽈뻬떼’는 이탈리아식 미트볼을 리조토 위에 올려 냈다. 숟가락으로 건드리자 미트볼이 부드럽게 갈라져 크림과 치즈를 넣은 리조토에 섞였다. 안초비, 올리브, 토마토, 케이퍼를 대구살과 함께 익힌 ‘푸타네스카’는 본래 야식으로 대충 손에 잡히는 재료로 만든 파스타다. 그만큼 맛이 경쾌하고 꾸밈이 없었다.
주방장이 발레를 하듯 우아하게 몸을 기울여 테이블을 비집고 또 다른 그릇을 놓고 갔다. ‘부로 에 아츄게’라는 파스타였다. 버터와 이탈리아식 멸치젓인 안초비를 이용해 만들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어울릴까? 잠깐의 의심은 쉽게 사라졌다. 햇빛을 녹이고 졸인 듯한 버터와 작은 멸치 안에 깃든 짙은 밀도의 소금기가 만나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는 듯했다. 다른 종류의 감칠맛과 기름이 어우러져 맛이 몇 배로 증폭됐다. 넓은 면은 강한 맛을 넉넉히 받아주는 넓은 캔버스가 됐고 그 위에 구운 빵가루를 뿌려 식감에도 변주를 줬다.
저온으로 익힌 오리 가슴살은 당근 퓨레가 곁들여 나왔다. 촉촉한 오리 지방이 입술에 묻어났고 도톰한 껍질은 이로 부숴가며 먹었다. 코코아 가루를 뿌린 티라미수는 달걀노른자를 섞어 만들었는지 크림의 결이 무겁고 맛이 혀에 오래 남았다.
주방장은 홀을 돌며 그리 어렵지 않은 한국어로 자주 맛을 물었다. 잠시 뒤에는 주방에 서서 허리를 반쯤 접은 채 작은 스푼을 들고 음식 맛을 봤다. 그를 따르는 어린 요리사들은 그를 따라 웃으며 작은 허브를 다듬고 하얀 접시의 테두리를 닦았다. 우리는 그들의 수고를 덜고자 그릇의 바닥을 핥듯이 비웠다.
#파브리키친: 프리셀라 1만9000원, 수플리 1만5000원, 부로 에 아츄게 2만2000원, 푸타네스카 2만5000원, 070-4165-8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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