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이어 뜨고 있는 식이섬유
[정재훈의 먹다가 궁금할 때] (12)

한동안 단백질이 대세였다. 단백질 음료에서 시작해 단백질바·과자·빵까지 나왔다. 우유와 요거트에도 단백질 함량을 크게 써 붙였다. 그렇다면 다음 트렌드는? 식이섬유다.
CJ프레시웨이는 올해 고식이섬유 급식 메뉴를 선보였다. 한 끼만으로 하루 식이섬유 권장량(25g)의 60%인 15g을 섭취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우엉·연근·양배추·버섯·브로콜리처럼 식이섬유가 많은 식재료를 활용한 메뉴다. 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 같은 식이섬유를 추가·보강한 음료·간편식 제품도 늘었다. 하루 식이섬유 섭취량을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뜻의 ‘파이버맥싱(fibermaxxing)’이 소셜미디어(SNS)에서 인기다.
파이버맥싱이 먼저 유행한 미국에서는 한발 더 나갔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치아시드를 요거트에 넣거나, 역시 식이섬유가 많은 귀리와 콩을 먹으면서 하루 식이섬유를 몇 g 먹었는지 계산한다. 식품업계도 가세했다. 펩시는 식이섬유 3g을 넣은 ‘프리바이오틱 콜라’를 내놓았고, 코카콜라도 프리바이오틱 식이섬유, 비타민 C, 아연 등을 함유한 ‘심플리 팝(Simply Pop)’을 출시하며 프리바이오틱 소다 시장에 뛰어들었다. 탄산음료를 마시면서 장 건강까지 챙긴다는 발상이다. 올해부터 국내에도 프리바이오틱 소다가 여럿 출시됐다.
단백질 다음에 왜 식이섬유일까.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 생태계)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장에 사는 미생물에 무엇을 먹일지도 관심사가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식이섬유가 혈당과 포만감, 체중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까지 따라붙었다. 그런데 쉽게 생각하면 최근의 고단백 식단 열풍과도 맞닿아 있다. 단백질 섭취를 늘리고 곡물과 과일을 줄이다 보면 식이섬유 섭취가 부족해지기 쉽다. 그러다 화장실에서 문제가 생기면 식이섬유를 찾기 마련이다.
◇찌꺼기에서 건강식품으로
반세기 전만 해도 시선이 달랐다. 1970년대 독일 유학을 다녀온 약대 교수님은 “독일 사람처럼 먹으니 일주일에 한 번만 화장실에 가도 되더라”며 자랑했다. 음식의 소화효율이 좋아 몸 밖으로 버릴 게 별로 없다는 설명이었다. 지금이라면 변비부터 걱정할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발전된 서구 식생활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영어로 식이섬유는 오랫동안 ‘러피지(roughage·거친 것)’라고 불렸다. 밀을 제분할 때 나오는 밀기울은 흔히 질 낮은 부분으로 취급돼 가축 사료로 쓰였다.
이 시선을 뒤집은 사람이 영국 외과 의사 데니스 버킷이다. 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일한 버킷은 현지인에게 대장암 같은 질병이 서구인보다 드물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들은 정제하지 않은 곡물과 식물성 식품을 많이 먹었고, 이로 인해 대변이 양이 많았으며 장을 통과하는 시간은 짧았다. 서구인이 음식에서 열심히 제거해온 그 찌꺼기가 오히려 건강을 지켜주는 것은 아닐까. 버킷은 1971년 식이섬유 부족과 대장암을 연결하는 가설을 발표했다. 이후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비만·당뇨병·심혈관질환까지 여러 서구형 질병을 식이섬유가 부족한 식생활과 연관지었다. 그가 1979년 펴낸 식이섬유에 대한 대중서 ‘Don’t Forget Fibre in Your Diet(당신의 식단에서 식이섬유를 빠트리지 말라)’가 베스트셀러가 됐고, 쓸모없는 찌꺼기 취급을 받던 섬유질이 챙겨 먹어야 할 성분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식이섬유라고 다 같지 않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버킷의 가설은 어떻게 됐을까. 식이섬유와 통곡물을 많이 먹는 사람에게서 심혈관질환과 제2형 당뇨병, 대장암 위험이 낮다는 연구는 많이 쌓였다. 그러나 식이섬유만 따로 떼어 먹었을 때는 결과가 달랐다. 대장암이 좋은 예다. 식이섬유를 많이 먹는 사람에게서 대장암 위험이 낮은 경향은 반복해서 관찰된다. 반면 밀기울이나 차전자피 같은 섬유질을 따로 먹인 임상시험에서는 대장선종을 확실하게 줄이지 못했다.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먹는 것과 그 음식에서 식이섬유만 떼어 먹는 것은 같은 게 아니란 뜻이다.
게다가 식이섬유는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여러 종류다. 흔히 물에 녹는 수용성과 녹지 않는 불용성으로 나누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물을 얼마나 머금는지, 끈끈한 겔을 만드는지, 장내 미생물이 얼마나 잘 발효시키는지가 저마다 다르다. 이눌린이나 프락토올리고당은 장내 미생물이 잘 이용하는 프리바이오틱스이지만 변의 부피를 늘리는 데는 큰 도움이 안 된다. 차전자피는 수용성 식이섬유이면서도 물을 많이 머금어 변을 부드럽게 하고 부피를 늘린다. 밀기울 같은 불용성 식이섬유는 미생물도 거의 먹을 수 없지만 변의 부피를 늘리는 데는 도움이 된다. 포장지에는 모두 ‘식이섬유 5g’이라고 적을 수 있지만 장에 들어가서 하는 일은 서로 다르다.
◇식이섬유 풍부한 음식 먹는 게 나아
식이섬유를 흰 쌀밥에 넣는다고 보리밥에 채소 반찬을 곁들인 한 끼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통곡물과 콩·채소에는 식이섬유만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영양소가 ‘푸드 매트릭스(food matrix)’라고 부르는 식품 고유의 구조 안에 함께 들어 있다. 음료처럼 물에 녹아 있는 게 아니라 물리적 구조 안에 들어 있어서 일부는 소장에서 다 소화되지 않고 대장까지 내려간다. 장내 미생물은 이런 식품 입자에 붙어 성분을 분해하며, 이를 다른 미생물이 이용하기도 한다. 식이섬유만 따로 뽑아 음료에 넣었을 때와 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른 이유다.
식이섬유 섭취를 늘리는 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설탕이 많이 든 탄산음료 대신 당을 줄이고 식이섬유를 넣은 음료를 고른다면 나은 선택일 수 있다. 평소 부족한 식이섬유를 보태는 방법도 된다. 하지만 흰쌀이나 흰빵에 식이섬유를 추가하기보다는 잡곡과 통곡물을 먹고 콩, 채소와 과일, 견과류와 씨앗류를 먹는 게 더 나은 방식이다. 단, 평소 식이섬유 섭취가 적었다면 한꺼번에 늘리지 않는 게 좋다. 갑자기 많은 양을 먹으면 가스가 차거나 배가 불편할 수 있다.
한때는 음식에서 거친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 발전이었다. 이제는 그 부분을 따로 뽑아 다시 음료와 가공식품에 집어넣고 식이섬유가 얼마나 들었는지를 자랑한다. 음식을 영양 성분의 합으로 보면 이런 일이 반복된다. 지방을 빼고 단백질을 더하고 식이섬유를 더하는 식으로 재조립하여 가공식품을 내놓는다. 그러면 더 건강한 음식이 만들어질 것 같지만 식사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듯 영양 성분을 채우는 일이 아니다. 식이섬유 몇 g을 채우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보다 원래부터 식이섬유가 들어 있는 음식을 먹는 편이 낫다. 건강에도 그렇고 대개는 맛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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