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고령 군주' 노르웨이 국왕 별세…호콘 왕세자 왕위 계승(종합)

현윤경 2026. 8. 2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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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고령 군주인 노르웨이 국왕 하랄 5세가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부왕인 올라브 5세 국왕은 평민 여성과의 혼인이 노르웨이 왕실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을 우려했지만, 노르웨이 국민들은 정작 1968년 8월 거행된 당시 하랄 왕세자의 결혼식을 열렬히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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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재위 기간 통합적 행보로 인기 누려…평민과 결혼 파격도
유년 시절 나치 독일 점령 피해 미국서 생활…요트로 올림픽 출전 이력
28일 하랄 5세 국왕의 사망 소식에 오슬로 왕궁 앞에 수북이 쌓인 꽃과 노르웨이 국기 [AFP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브뤼셀=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유럽 최고령 군주인 노르웨이 국왕 하랄 5세가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노르웨이 왕실은 28일(현지시간) 이날 성명을 내고 하랄 5세의 서거를 발표했다. 왕실은 "하랄 5세 국왕이 오늘 서거했음을 알리게 돼 매우 슬프다"며 "국왕은 오늘 오전 6시35분, 오슬로 대학병원에서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밝혔다.

하랄 5세가 별세함에 따라 하랄 5세와 소냐 왕비(88)의 아들인 호콘 왕세자가 자동으로 노르웨이 왕위를 이어받는다. 호콘 왕세자의 공식 칭호는 호콘 8세이다.

용혈성 빈혈 치료 중 부작용으로 지난 17일부터 입원 치료를 받아온 하랄 5세는 혈액 내 세균 감염으로 지난 주말을 기해 병세가 급격히 악화했고, 노르웨이 왕실은 별세 하루 전인 27일 하랄 5세의 상태가 극도로 위중하다고 설명해 서거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28일 별세한 노르웨이 하랄 5세 국왕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국왕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노르웨이 시민 수백 명은 전날 오후부터 오슬로 왕궁 앞에 꽃을 놓으며 국왕의 회복을 응원했다. 서거 발표가 나오자 수북이 쌓인 꽃 틈으로 노르웨이 국기로 채워진 왕궁 앞 광장에 모인 군중은 장탄식을 내뱉으며 하랄 5세의 영면을 기원했다.

1991년 부친인 올라브 5세 서거 후 왕위에 올라 35년간 재위한 하랄 5세는 최근 크고 작은 건강 문제에 시달리면서 공식 활동을 줄이긴 했으나, 의회에서 '평생 서약'을 했다며 호콘 왕세자(53)에게 양위하지 않은 채 왕위를 지켜왔다.

유럽 다른 왕실과 마찬가지로 국왕으로서의 정치적인 권한은 없지만, 왕실 현대화 노력과 소탈한 면모, 통합적인 행보로 국가의 구심적 역할을 하며 높은 국민적 인기를 누려 왔다.

하랄 5세는 2차대전 시절 나치의 노르웨이 점령기에 어머니, 두 누나와 미국에서 수년간 망명 생활을 하다 종전 후 귀국해 다른 왕실 구성원과 재회한 뒤 노르웨이 육군사관학교, 영국 옥스퍼드대에 진학했다. 그의 조부 호콘 7세는 나치 점령기에 독일의 요구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노르웨이 정부와 함께 영국으로의 망명을 선택해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1928년 올림픽 요트 금메달리스트인 선왕 올라브 5세처럼 요트 선수로도 활약한 하랄 5세는 여러 차례 노르웨이 국기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에 출전했고, 1987년 요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이색 경력도 갖고 있다.

노르웨이 하랄 5세(왼쪽)와 소냐 왕비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결혼에 있어서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유럽 귀족 가문 여성들 중에 신붓감을 고르라는 왕실의 압박과 다수의 귀족 가문 여성들의 구혼을 9년 동안 거부한 채 버틴 끝에 고교 시절 여자친구였던 사업가의 딸 소냐 하랄센과의 결혼 승낙을 끝내 받아냈다.

부왕인 올라브 5세 국왕은 평민 여성과의 혼인이 노르웨이 왕실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을 우려했지만, 노르웨이 국민들은 정작 1968년 8월 거행된 당시 하랄 왕세자의 결혼식을 열렬히 반겼다. 소냐 왕비는 60년 가까이 하랄 5세와 해로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의 곁을 지켰다.

하랄 5세는 2011년 극우 청년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폭탄·총기를 동원해 77명을 살해하는 최악의 참사가 벌어지자 "노르웨이의 민주주의와 사회에 대한 믿음을 갖고 두려움을 이겨내자"는 취지의 연설로 충격에 빠진 국민들을 다독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6년에는 성소수자와의 평등과 난민 포용, 종교적 관용을 지지하는 열정적인 연설을 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호콘 왕세자 부부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다만, 올해 들어서는 왕실 구성원의 잇단 스캔들 연루로 편치 않은 시기를 보내야 했다.

노르웨이 왕실은 며느리이자 호콘 왕세자의 아내인 메테마리트 왕세자빈이 2019년 옥중 사망한 미국인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틴과 과거 친밀하게 교류한 정황이 올 초 드러나며 곤욕을 치렀다.

메테마리트 왕세자빈이 결혼 전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마리우스 보르그 회이뷔가 성폭행 등 30여 건의 범죄 혐의로 기소돼 지난 6월 징역 4년을 선고받은 것도 왕실의 이미지 추락으로 이어졌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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