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메이드 인 USA’ HBM 시대 연다

이예서 기자 2026. 8. 2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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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인디애나 팹 기공식 개최…2029년 차세대 HBM 양산
R&D·인재까지 현지화…퍼듀대학과 차세대 패키징 협력
곽노정 “미국 AI 미래 만드는 가장 신뢰받는 파트너 될 것”
SK하이닉스 곽노정 최고경영자(CEO)가 27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 퍼듀대학교에서 열린 AI 메모리 생산 기지 기공식에서 사업 전략과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투데이신문 이예서 기자】 "미국은 최고의 고객과 연구역량, 생태계가 함께하는 AI 혁신의 중심지입니다."

SK하이닉스가 미국을 차세대 HBM(고대역폭메모리) 사업의 핵심 거점으로 키운다. 미국에서 HBM을 직접 생산하는 것은 물론 현지에서 차세대 패키징 기술을 개발하고 고객과 공동 검증까지 진행한다. 생산부터 연구개발(R&D), 고객 협력까지 미국 현지에서 연결해 '메이드 인 USA' HBM 시대를 연다는 구상이다. 출발점은 27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서 열린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 기공식이다.

28일 SK하이닉스에 따르면 인디애나 팹 건설에 약 40억달러(약 5조5000억원)를 투자한다. 2028년 10월 클린룸을 완공하고, 2029년 하반기부터 차세대 HBM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생산능력은 연간 수십만장 규모다. 한국에서 생산한 최첨단 D램을 인디애나로 보내 어드밴스드 패키징과 테스트를 거친 뒤 HBM 완제품으로 공급한다. 미국에서 HBM을 생산하는 첫 사례로, 엔비디아를 비롯한 현지 빅테크 고객에게 'Made in USA' HBM을 공급하게 된다.

생산과 함께 차세대 기술 개발도 현지에서 진행한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 팹에 어드밴스드 패키징 R&D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고객사와 대학, 비즈니스 파트너가 차세대 패키지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시제품 제작과 성능 검증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인재 확보를 위한 협력도 시작됐다. SK하이닉스는 퍼듀대학교와 HBM을 비롯한 차세대 시스템 통합 및 어드밴스드 패키징 기술 공동 연구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향후 미 중서부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으로 협력을 확대해 현지 엔지니어와 기술자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생산과 R&D가 자리 잡으면 반도체 생태계의 성장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100여개가 넘는 소재·부품·장비 협력사들이 웨스트라피엣 진출을 논의하고 있다. 팹이 본격 가동되면 약 1000명이 근무하고, 건설과 운영을 포함해 약 7000개의 직·간접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SK하이닉스는 보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도 투자에 힘을 보탠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법에 따라 최대 4억5000만달러의 보조금과 5억달러의 대출을 지원받는다. 미국이 AI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만큼 현지 생산거점 확보를 위한 투자라 할 수 있다.
SK하이닉스 곽노정 최고경영자(CEO)가 27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 퍼듀대학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업 전략 및 투자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생산과 연구 기반을 동시에 넓히는 데는 AI 메모리 시장을 바라보는 장기적인 판단이 깔려 있다. 곽노정 최고경영자(CEO)는 현재의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 2030년 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다운턴의 뚜렷한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며 공급 부족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곽 CEO가 주목하는 것은 AI 시대에 달라지고 있는 메모리 시장의 구조다. 과거에는 범용 제품을 대량 생산해 경쟁했다면, 이제는 고객이 원하는 시스템에 맞춰 메모리와 패키징을 함께 최적화하는 방식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제품이 HBM이다. AI 가속기의 성능을 높이려면 메모리와 패키징을 함께 설계해야 하는 만큼 제품 개발 초기부터 고객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곽 CEO는 "설령 다운턴이 오더라도 급격한 하락이 아니라 완만한 감소나 보합에 가까운 형태가 될 것"이라며 "2030년 이후에는 수급이 균형을 이루고 AI 산업 전체가 함께 성장해 나갈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실제 인디애나 투자 계획을 처음 발표한 2024년과 비교해 "시장으로부터, 고객으로부터의 수요가 훨씬 더 강해졌다"고도 했다.

강해진 수요는 미국 사업 확대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곽 CEO는 미국 내 추가 투자와 관련해 특정 후보지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물과 전력, 인재, 정부 지원 등 필요한 조건이 갖춰진 곳이라면 지역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투자 기회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인디애나를 미국 첫 HBM 생산거점으로 낙점한 것도 이 같은 입지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곽 CEO는 토지와 전력, 인력은 물론 주·연방정부의 지원과 지역사회의 협력까지 살폈다며 "인디애나는 다른 유력 주들과 비교해 매우 우수한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현지 사업의 안착을 위해서는 미국의 문화와 법, 관행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다고 봤다. 곽 CEO는 미국에 먼저 진출한 기업과 SK그룹 계열사의 경험을 참고하고 있다며 퍼듀대 등 현지 교육기관과의 협력도 현지화 전략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곽 CEO는 인디애나 팹을 미국 AI 산업과 SK하이닉스가 함께 성장하는 출발점으로 봤다. 그는 "인디애나 팹은 최초로 'Made in USA' HBM을 제공하는 거점이 될 것"이라며 "미국에 대한 투자와 협력을 확대하고, 미국 AI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가장 신뢰받는 파트너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도 이번 투자가 한미 AI 협력을 반도체 공급망 차원으로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관계자는 "단순히 공장 하나를 짓는 것보다 한미 AI 협력을 구체화할 생산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미국에서 생산한 HBM을 현지 고객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된 것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인디애나 팹 기공식 행사에는 인디애나 마이크 브런(Mike Braun) 주지사, 연방 토드 영(Todd Young) 상원의원 등 미국 주요 정관계 인사를 비롯해 퍼듀대학교 미치 대니얼스(Mitch Daniels) 총장, 주한미군전우회 로버트 에이브럼스(Robert Abrams) 회장, 주미국대한민국대사관 강경화 대사가 자리를 함께했다. SK그룹에서는 유정준 미주총괄 부회장, 이형희 부회장, SK하이닉스 곽노정 CEO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