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트럼프 정부, 또 반도체 관세 카드 만지작... “단기적 자승자박, 장기적 위협”

미 트럼프 정부가 한국 반도체를 겨냥한 관세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27일(현지 시각)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칩뿐만 아니라 노트북·게임 콘솔·데이터센터 서버 등 반도체가 들어간 완제품까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별 관세율과 쿼터 설정, 주요 반도체 제조사별 국가 지침 적용 여부도 함께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행정부는 일정 기간을 두고 신규 관세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도 고심하고 있다. 특히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기업별로 미국 내 생산을 약속한 반도체 물량에 연동해 무관세 수입 쿼터 상한을 정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보도했다. 일정 물량의 반도체를 무관세로 수입 허용하고, 허용량을 해당 기업의 미국 내 생산 규모와 연동하는 구조다. 다만 이 계획은 아직 세부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고 상당 부분 수정될 수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다시 나온 반도체 관세 카드
트럼프 행정부는 작년 하반기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설을 압박하며 다양한 관세 부과 계획을 밝혔다. 작년 8월 트럼프 미 대통령은 “반도체에 100% 관세를 매기겠다. 다만 미국에서 (생산 시설을) 짓고 있다면 아직 생산 전이라도 부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미국 내 생산을 약속한 반도체 물량과 연동한 관세율 조정 방안도 꺼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 1월엔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 ‘H200’같이 미국으로 수입됐다가 다른 나라로 재수출되는 반도체에 국한해 25%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하며 반도체 압박을 강화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미 연방대법원이 미국의 상호관세를 위법·무효로 판결하면서 미 관세 정책이 정비에 들어갔고 반도체 품목 관세 압박도 주춤했다. 최근에서야 다시 압박이 강해지는 상황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 텍사스 테일러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며,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에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생산하는 첨단 패키징 시설 착공에 들어갔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 메모리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지으라고 지속 압박 중이다.
트럼프 정부가 검토하는 미국 내 투자 연계 관세는 올 1월 미국과 대만 사이 합의에서 처음 등장한 방식이다. 당시 대만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대만 TSMC 같은 기업은 미국에 공장을 짓고 현지 생산 능력의 2.5배, 완공 후에는 신규 생산 능력의 1.5배까지 반도체 품목 관세를 면제받기로 했다. 한국은 작년 11월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대우하겠다는 최혜국 대우 약속을 받았지만 서면 합의로 명문화되지는 않았다.

◇단기적 미 자승자박, 장기적 위협
일단 트럼프 정부의 반도체 관세 압박은 국내 반도체 산업에 단기적으로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현재 D램과 낸드플래시, HBM 등 메모리 반도체 공급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전 세계 메모리 업체들은 최근 적극적으로 생산 시설 확충에 나섰지만 본격 증산 물량이 나오려면 2028년은 돼야 한다. 반도체 분석 업체 세미애널리시스에 따르면, 대형 AI 서버 구축사인 하이퍼스케일러의 자본 지출 중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3~2024년 8%에서 올해 약 30%로 상승하고, 내년에는 더 높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메모리 가격이 계속 치솟는 상황에서 관세까지 부과되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해 메모리가 필요한 미국 빅테크들의 부담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
미국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도 현재 주력 생산지가 일본과 대만이라 단기간 미국 내 생산 D램 물량을 크게 늘릴 수 없다. 마이크론이 자사 D램의 40%를 미국에서 만들겠다고 밝힌 시점은 2035년이다. 반도체 관계자는 “반도체 관세로 압박해도 현재 상황에서는 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2~3년간은 미국이 미국 기업에 관세 부담을 지우는 자승자박 꼴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 가전 업체에는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반도체 가격 인상에 따라 물가가 상승하는 ‘칩플레이션’으로 판매량이 급감하는 스마트폰, PC, 서버 등에 반도체 관세까지 붙으면 미국 내 한국 삼성전자와 LG전자 판매량이 더 줄어들 수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미국의 반도체 관세 압박이 장기적으로 지속될지에 주목한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서남권에 800조원을 투자해 메모리 팹 4기를 짓기로 하는 등 대규모 증설 필요성과 자금력이 충분하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미국이 지속적으로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 내 생산 능력=무관세 쿼터’라는 공식이 생기면 한국 반도체 업체들도 장기적으로는 추가 투자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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