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용산만 보이나”…8·13 공급 대책에 커지는 ‘소외의 분노’

오유진 기자 2026. 8. 2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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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6일 오전 찾은 서울 강서구 염창동 길훈아파트 인근.

정부의 8·13 공급 대책 발표 이후 모든 여론은 용산공원 부지를 둘러싼 서울시와 국토교통부의 대립에 쏠렸다.

태릉과 과천 주민들은 8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연합 집회를 시작으로 정부에 지속적으로 공급 대책 철회를 요구할 계획이다. 염창우성아파트에 거주하는 직장인 신아무개씨는 "구청 측은 조만간 주민 설명회를 열겠다고 하지만, 인근 주민 대다수는 공급 대책이 발표된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안내문을 돌리고 있다"며 "단순히 임대주택이 들어선다고 반대하는 게 아니다. 우리도 용산만큼이나 녹지 보호가 필요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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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창 1000·과천 9800·태릉 6800가구 추진…“주민 협의 없이 숫자 채우기”
용산은 재협의, 다른 지역은 일정대로…박탈감 확산에 연대 반발 움직임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염창공원 부지 인근 아파트 우편함에 주민들이 배포한 공공주택 공급 반대 전단지가 꽂혀 있다. ⓒ시사저널 오유진

8월26일 오전 찾은 서울 강서구 염창동 길훈아파트 인근. 등교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아파트 단지 사이로 속속 걸어 나왔다. 왕복 2차로 도로 곳곳은 인도조차 끊겨 있어 차도 일부를 막아 만든 좁은 보행로로 학생과 주민들이 오갔다. 인근 호텔을 오가는 관광버스가 좁은 도로를 돌며 보행 공간을 침범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처럼 교통 여건이 빠듯한 염창동 일대는 최근 정부의 8·13 주택 공급 대책 발표 이후 더 크게 술렁이고 있다. 정부가 인근 염창근린공원 부지를 신규 공공주택지구에 포함해 청년 등 무주택 서민을 위한 주택 1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히면서다. 20여 년간 민간 개발사업 취소로 방치됐던 부지를 활용해 2029년 착공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주민들은 "교통 대책도 없이 밀어붙인다"며 반발하고 있다.

단지 상가 H부동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염창동은 1000세대 아파트 자체가 없는 지역인데, 갑자기 이곳에 1000세대가 입주한다고 하니 주민들이 일찌감치 보행로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며 "교통을 개선하려면 염창산을 밀어버리거나 인근 아파트 재건축 때 도로 계획을 다시 짜야 할 텐데, 어떻게 2029년 착공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교통만 문제가 아니다. 주민들은 염창근린공원이 동네의 몇 안 되는 녹지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은 평일 오전이었지만 주민 10여 명이 공원 산책로를 오가는 등 공원을 이용하는 이용객이 적지 않았다. 하산하던 60대 부부는 "골프장 폐업 후 일부 부지가 방치돼 있던 것은 맞지만, 염창산 산책길은 염창동 주민들에게 유일한 녹지 쉼터"라며 "아파트 재건축은 주민 동의를 70% 이상 받아야만 추진할 수 있는데, 정부의 공급 대책은 주민 동의율이 0%여도 막무가내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이냐"고 말했다.

1·29 공급 대책에서 주요 공급 부지로 발표된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부지 모습 ⓒ연합뉴스

대상지 주민 "빈 땅은 모조리 아파트냐" 분노

정부의 8·13 공급 대책 발표 이후 모든 여론은 용산공원 부지를 둘러싼 서울시와 국토교통부의 대립에 쏠렸다. 그러나 공급 택지의 분노는 용산 밖에서 더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다. 강서구, 과천시, 서울 노원구 등 신규·기존 공급 예정지 주민들은 정부가 주택 숫자 채우기와 용산 주도권 싸움에만 매몰돼 공급 부지 인근 주민의 목소리는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며 반발하는 모양새다.

이들이 가장 크게 문제 삼는 것은 주민과의 사전 협의 없는 공급 방식이다. 염창공원 부지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강서구가 서울시와 협의 없이 정부에 부지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고, 노원구 태릉CC와 과천 렛츠런파크(경마장), 국군방첩사령부 부지는 지자체 소유가 아닌 공공기관·군 소유지라는 이유로 별도 협의 없이 정부 계획에 포함됐다. 정부는 공급 대책의 실효성을 위해 택지 조사와 발표를 비밀리에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바꾸는 결정에 정작 당사자가 빠졌다며 분노한다.

특히 과천과 태릉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 공급 택지로 이름이 오르내리며 상당한 반발이 누적된 상태다. 정부는 올해 1월 과천 부지에 총 9800가구, 태릉CC 부지에 68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고, 이어 8·13 대책에서는 이들 부지를 2030년까지 조기 착공하겠다고 못 박았다. 주민들은 연초부터 반대 시위를 이어가고 있지만, 최근 국무회의에서는 주민 의견과 별개로 이들 부지가 개발제한구역 해제 총량 규제 예외 대상으로 인정됐다. 주민 및 유관기관과의 협의가 끝나기도 전에 정부가 사업 시간표부터 앞세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과천·태릉도 공급 대책에 연대 반발 움직임

과천역 인근에서 만난 박철환씨(50대)는 "한때 정부청사와 시청 일대에 현수막과 근조화환까지 내걸었지만, 지금까지 주민 협의로 공급 내용이 바뀐 건 하나도 없다"며 "과천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 매번 공급 부지를 제공하고, 대체 부지까지 찾는 등 이용만 당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날 찾은 경기 과천시 렛츠런파크 일대에는 올해 1월부터 경마장 이전 반대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경마일이 아닌 이날 렛츠런파크에는 경마장 대신 직거래 장터를 찾은 인근 주민들이 오갔다. 장터에서 농산물을 팔던 한 판매자는 경마장 이전 계획에 대해 묻자 "여기는 수도권에서도 가장 큰 직거래 장터인데, 경마장이 이전하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살 집도 중요하지만 모든 땅에 아파트만 짓겠다는 정책은 집이 없는 사람들도 선뜻 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9800가구 공급이 예정된 과천시 렛츠런파크에 경마장 이전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시사저널 오유진

개발 예정지 주변에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안내문을 배포하고 현수막 설치를 추진하는 모임도 꾸려지고 있다. 태릉과 과천 주민들은 8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연합 집회를 시작으로 정부에 지속적으로 공급 대책 철회를 요구할 계획이다. 염창우성아파트에 거주하는 직장인 신아무개씨는 "구청 측은 조만간 주민 설명회를 열겠다고 하지만, 인근 주민 대다수는 공급 대책이 발표된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안내문을 돌리고 있다"며 "단순히 임대주택이 들어선다고 반대하는 게 아니다. 우리도 용산만큼이나 녹지 보호가 필요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8·13 공급 대책 발표 이후 '뜨거운 감자'가 된 용산공원 개발에서는 한발 물러섰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8월26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만나 9월 발표할 추가 공급 택지에서 용산공원 포함 여부를 재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용산이 다시 협의 테이블에 오를수록 다른 공급 예정지 주민들의 박탈감은 커지고 있다. 용산공원 논란에는 답을 내놓으면서도, 염창·과천·태릉 주민들의 우려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 공급 일정만 앞세운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천에 거주하는 김아무개씨는 "반기를 들고 일어나면 슬그머니 이름을 빼주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끝까지 강행하는 식이면 결국 '우리 동네만 아니면 된다'는 지역 갈등만 커질 것"이라며 "'닥치고 공급'이 '주민은 입 닥치고, 정부 마음대로 공급'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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