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첨단도시의 가장 낮은 노동… 엄마는 매일 16시간 바닥을 닦았다[북리뷰]

신재우 기자 2026. 8. 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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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실리콘밸리에 필적하는 중국의 첨단도시 선전(深圳). 이곳의 도로에는 자율주행차가 달리고, 고층 빌딩 사이로 드론이 배달을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변기를 닦는 청소 노동자들이야말로 도시가 원활하게 굴러가게 만드는 기반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그럼에도 고향에서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도시로 떠밀려온 50∼60대 이주노동자에게 선전은 정직하게 몸을 움직여 돈을 쥘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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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장샤오만 지음 | 허유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선전의 쾌적한 회사 다니는 딸
10년 만에 미화원 엄마와 동거
생계형 노동 900일 쫓으며 기록
필수 노동력이지만 헐값에 일해
평생 집 못 사는 현실 韓과 닮아
르포르타주 넘어선 모녀 회복기
저널리스트 장샤오만과 어머니 춘샹의 모습. 책은 청소 노동자인 춘샹과 사무직 노동자인 장샤오만을 대비해 보여주며 노동의 속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饼干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필적하는 중국의 첨단도시 선전(深圳). 이곳의 도로에는 자율주행차가 달리고, 고층 빌딩 사이로 드론이 배달을 한다. 억대 연봉의 정보기술(IT) 엘리트들이 모여드는 이 눈부신 마천루의 숲 아래, 하루 16시간씩 허리를 굽혀 바닥의 얼룩을 닦는 나이 든 청소 노동자들이 있다. 저자의 어머니 춘샹도 그들 중 하나. 선전의 IT 대기업에 다니는 저자가 최고급 쇼핑몰의 미화원으로 일하는 어머니의 일터를 900일간 쫓으며 기록한 이 책은 그 ‘아래쪽 노동’의 궤적을 따라간다.

10년 만에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모녀의 삶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딸이 쾌적한 오피스에서 성과를 고민할 때, 쉰두 살의 춘샹은 무릎 활막염을 앓으면서도 하루 3만 보를 걷는다. 휴식시간이 아니면 CCTV 감시 탓에 쉴 수 없고, 비싼 집세를 아끼려 남자화장실에서 남몰래 선잠을 자는 동료도 있다. 화려한 쇼핑몰에 생상스의 ‘백조’가 흐르고 사람들이 도시의 명물인 ‘코코넛 치킨’을 즐기는 동안,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는 헐값에 매겨진 노동이 대도시의 쾌적함을 간신히 떠받치고 있다.

저자가 선전에 처음 이주해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공원 공중화장실이 늘 세련되게 꾸며져 있고, 단 한 번도 휴지가 떨어진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박물관과 도서관은 언제나 번쩍번쩍 광이 났고, 오피스 빌딩에는 먼지 한 톨 없었다. 어머니가 미화원으로 일하기 전까지, 딸은 이 청결함과 편리함이 당연한 호사인 줄 알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변기를 닦는 청소 노동자들이야말로 도시가 원활하게 굴러가게 만드는 기반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이처럼 춘샹을 비롯한 미화원들은 이 도시의 투명인간이자 변두리 사람이다. 도시 주민들의 눈을 피해 일하고 촘촘한 복지시스템의 보호를 받지도 못하며, 언제 해고 통보를 받을지 몰라 불안에 떨면서도 하루하루 몸을 갈아 넣는다. 그럼에도 고향에서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도시로 떠밀려온 50∼60대 이주노동자에게 선전은 정직하게 몸을 움직여 돈을 쥘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춘샹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책에는 선전의 여러 청소 노동자의 각기 다른 사연이 소개된다. 선전의 오피스 빌딩에서 10년 동안 일해온 예순여덟의 창푸 아저씨는 젊은 시절 늠름한 군인이었다. 선전에서 번듯한 집을 사는 게 목표였다는 그는, 지금 모은 돈으로 얼마나 큰 집을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씁쓸하게 웃는다. “이 돈이면 화장실 한 칸도 못 사지….”

처음 모녀의 동거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자식을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어머니의 모습은 억척스럽기만 하고 늙은 자신이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은 딸에게 숨 막히는 부담이 된다. 하지만 어머니의 노동을 곁에서 취재하며 딸은 마침내 깨닫는다. 자신이 도달한 이 안락한 세계가 사실은 부모가 몸이 부서져라 밀어 올린 사다리 덕분이었음을. 오피스 빌딩에서 성과에 쫓기는 자신과 쇼핑몰 바닥을 닦는 어머니가 실은 같은 출발선에 있다는 불안감은, 늙은 부모의 처절한 생계형 노동과 겹쳐진다. “가까스로 닿았다고 여겨온 세계가 너무나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딸의 고백은, 산업화 세대의 희생을 딛고 성장했으나 여전히 얇은 연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의 풍경과도 맞닿아 있다.

책은 단순한 노동 르포르타주를 넘어선다. 자신을 희생해 가족을 건사해온 한 여성의 숭고한 생애사이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세계로 들어가 자신의 기원을 마주하는 딸의 참회록 혹은 모녀의 회복기로도 읽힌다. 거의 문맹이었던 어머니는 딸이 쓴 원고를 읽기 위해 뒤늦게 글자를 배웠다. 책의 말미, 부록처럼 덧붙여져 있는 춘샹이 쓴 ‘엄마의 말’ 챕터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돈은 차가워도, 자식이 있어 마음은 따뜻했다.” 자본과 효율이 지배하는 차가운 대도시, 속도와 효율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모녀의 이야기만큼은 따뜻하다. 424쪽, 1만9500원.

신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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