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지붕, 누가 무너뜨리나[점선면]

유경선 기자 2026. 8. 2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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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빙하, 땅 흔들고 대홍수 냈다
배출하는 나라 따로, 피해보는 나라 따로
네팔 누와코트에서 26일 대형 홍수가 발생해 주택이 물에 잠겨 있다. AFP연합뉴스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습니다. 26일 오전(현지시간) 네팔 중북부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발생한 대홍수가 눈 깜짝할 새 온 마을을 쓸어버렸습니다. 27일 기준(한국시간) 사망자는 최소 362명, 실종자는 1300명이 넘습니다.

마을 전체가 진흙탕에 파묻혀 사라졌습니다. 건물, 다리, 주차장… 모두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인명피해도 막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인 실종자는 9명으로, 현지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 있던 한국남동발전과 두산에너지빌리티 직원입니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산줄기에서 빙하가 떨어져 내리며 발생한 사태입니다. 빙하는 왜 무너졌을까요? 정확한 원인 조사와 발표까지는 시일이 걸리겠지만 분명한 건 이번 사태가 기후변화의 연장선에 있으며, 온난화를 빼놓고 말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네팔에서 벌어진 일을 정리해 봅니다.

무너진 빙하, 땅 흔들고 대홍수 냈다

당초 대홍수 원인이 지진이라는 발표가 있었는데,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분석한 결과 지진은 빙하가 무너지며 생긴 진동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땅이 흔들린 정도는 규모 5.2의 지진 수준이었어요. 그 후 3분 뒤 대홍수가 덮쳤고요.

빙하가 떨어진다고 해서 강물의 양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은 아닐 테지요. 대홍수 발생 전 이 지역 강우량은 거의 없었다고 하고요. 빙하호가 지목됩니다. 빙하호는 빙하 녹은 물이 고여 만들어진 호수예요. 1990년대 들어 그 수와 규모가 급증했다고 합니다. 호수 물을 가뒀던 암석과 퇴적물이, 상류에서 빙하가 붕괴하며 내려오는 충격을 만나 무너지면 엄청난 양의 물이 한꺼번에 하류로 쏟아지게 됩니다. 마치 댐이 무너지는 것과 같아요.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습니다. 지난해 7월에도 이번 대홍수 발생지와 맞닿은 티베트 르카쩌시 지룽현 지룽커우안 일대에서 대규모 산사태와 홍수가 일어났어요. 이 지역 상류에 빙하호 55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히말라야의 빙하는 이미 상당 부분 녹았고, 사라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히말라야 곳곳에 빙하호가 다수 분포하는 것이죠. 이 물이 언제 또 넘쳐 흐를지 알 수 없습니다. 당장 이번 대홍수가 난 지역에서도 추가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현지 당국이 경고합니다.

네팔의 히말라야 산맥에 형성된 한 빙하호. 빙하가 녹은 물이 골짜기로 흘러들어 형성됐다. 위키피디아 제공
배출하는 나라 따로, 피해보는 나라 따로

2009년, 마다브 쿠마르 네팔 전 네팔 총리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게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가져온 돌 조각을 선물합니다. 이 돌은 에베레스트가 겪는 기후변화를 상징하는 것이었어요. 20만명이 넘는 네팔 청년이 서명한 ‘기후 불평등 청원’도 국제사회에 전달됐습니다.

네팔 총리는 왜 전 세계에 기후변화를 호소했을까요? 경제 선진국이 배출한 탄소로 개발도상국이 피해를 본다는 문제의식을 제시한 겁니다.

네팔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량에 비하면 극히 미미합니다. 2024년 기준 네팔의 화석연료·산업 부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의 0.05% 수준이에요. 반면 온난화 피해는 가장 호되게 겪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네팔 정부는 산사태, 가뭄, 홍수, 폭염, 빙하 감소, 빙하호 붕괴 홍수 등 재난이 잦아졌다고 국제사회에 알렸습니다.

케이팝 팬과 청년들이 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둔치주차장에서 탄소중립기본법에 ‘조기감축’ 원칙을 반영할 것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2026.8.3. 강윤중 선임기자

네팔에서 대홍수가 발생한 날, 세계 10위권 온실가스 배출국인 한국에서는 탄소중립기본법(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미래 세대에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해서 개정한 법입니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습니다. 매년 일정한 양을 줄일 것인지(선형 감축), 초반에 확 감축할 것인지(오목형 감축)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들은 후자를 택했어요. 그러나 국회는 선형 감축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 대계를 이렇게 세워서는 안 된다는 시민사회 비판이 이어졌지만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고요.

“앞에 많이 줄이는 게 미래 세대를 위하는 것처럼 얘기하시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발언이라고 생각을 하고, 저는 기업이 없어져 가지고 미래 세대 일자리가 없어지는 게 더 부담이라고 생각합니다.”
“(온실가스 감축) 후발국으로서 지나치게 이렇게 앞서가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냐 하는 생각하고…”

국회의원들의 현실 인식을 보여주는 어록입니다. 네팔 대홍수의 처참한 광경을 보고도 이 말을 그대로 하겠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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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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