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미술 교실에는 국경이 없다 [사람IN]

김영화 기자 2026. 8. 28. 06:4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학군지에서 '미대 진학 초빙교사'로 불린 한 미술 교사가 이주 배경 학생이 90%에 이르는 공립중학교로 발령받았다.

점심시간마다 자기 그림을 보러 미술실을 찾는 학생이 하나둘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말이 없던 학생들도 미술실에서는 조금씩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얼마나 말을 하고 싶겠어요. 언어를 배워야만 소통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 후 신경아 교사는 학생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미술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8월10일 경기도 안양의 한 작업실에서 미술 교사이자 <국경 없는 미술실> 저자인 신경아씨가 출간한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흥구

학군지에서 ‘미대 진학 초빙교사’로 불린 한 미술 교사가 이주 배경 학생이 90%에 이르는 공립중학교로 발령받았다. 중국어와 러시아가 주로 들리는 교실에서 한국어는 잘 통하지 않았고, 미술실은 창고처럼 쓰이고 있었다. 어느 드라마의 도입부라 해도 손색없을 일이 2021년 3월 신경아 교사(49)에게 닥쳤다. “말 그대로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가 배정된 경기도 안산의 관산중학교는 20여 개 국가에서 온 학생들이 다니고 있었다. 업무량이 많은 탓에 동료 교사들도 선호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만두더라도 1년만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등굣길에 올랐다.

편견이 깨진 건 그때부터다. 입학 첫날,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난감해하는 그를 보고 반 학생들이 나서서 동시통역을 해주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당연하다는 듯 이뤄지는 모습이 그에게는 꽤 충격적이었다. “이전 학교에서는 ‘생기부에 써주겠다’는 조건을 달아야만 학생들이 움직이는 게 일반적이었거든요.” 나중에야 그는 한국에 이주해온 아동 청소년들의 적응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신 교사는 그날이 아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입학식 같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19년 차 교사가 ‘백지에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가능한 수업을 찾아야 했다. 가장 먼저 미술실을 새롭게 단장했다. 학생들의 그림을 걸 수 있는 전시 공간을 마련했는데, 반응이 특히 좋았다. 점심시간마다 자기 그림을 보러 미술실을 찾는 학생이 하나둘 생겨났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겐 최고의 칭찬이었던 거죠. 여기서만큼은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갖기 바랐어요.” 학교에 잘 나오지 않거나 적응이 더딘 학생들의 그림일수록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두었다. 그러자 말이 없던 학생들도 미술실에서는 조금씩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학생의 그림에는 천사처럼 띠를 두른 사람과 함께 ‘네 모습 그대로 훌륭하다’는 문구가 영어로 적혀 있었다. 하늘에 있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중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은 학교의 봄 풍경을 그렸다. 그림마다 이주 배경 학생들의 삶과 기억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말을 하고 싶겠어요. 언어를 배워야만 소통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 후 신경아 교사는 학생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미술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뭘 가르치려 하기보다 학생들 삶에서 수업을 끌어냈더니 미술실 전시 공간은 이주민 1.5세대의 기록이 되어 있었다.

신경아 교사의 미술실에 걸려 있는 학생의 작품. ⓒ신경아 제공

올해 초 신경아 교사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담아 책 〈국경 없는 미술실〉을 썼다. 교원의 전보 주기(5년)가 다가오자 뭐라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가 학교를 떠나면 그가 가진 노하우도 사라진다. 공교육 내에 다문화 전문가가 양성되기 어려운 구조다.“저는 우리 학교가 누구나 겪게 될 미래라고 생각해요. 이주 배경 학생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이 책이 먼저 길을 건너간 사람이 건네는 지도가 되기를 바란다. “성공 경험은 아니고 실패를 거듭하며 간신히 찾아낸 것들이죠. 다만 분명한 건 다른 학교에서는 보기 힘든 기적 같은 순간들을 수업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누구에게나 이런 미술실이 하나쯤 있으면 바라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생각나는 사랑받았던 공간 혹은 안전기지, 누구에게나 열린 그런 교실은 가능할까. 신경아 교사는 말했다. “소수 교사들의 선의와 열정으로 간신히 다문화 교육 현장이 버텨나가는 상태예요. 이러한 노력이 운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현장을 아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해요.” 국경 없는 미술실이 계속될 수 있을지도 결국 거기에 달려 있다.

신경아 교사의 미술실에 걸려 있는 학생들 작품. ⓒ신경아 제공
신경아 교사의 미술실에 걸려 있는 학생의 작품. ⓒ신경아 제공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