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평생 ‘점’ 찍었을까…막 내린 쿠사마 야요이의 97년 세계
늦은 재평가 뒤 세계적 스타로 우뚝
마지막까지 이어간 70년 작업

노란 호박을 뒤덮은 물방울 무늬, 거울 속에서 끝없이 증식하는 빛과 점. 세상을 점으로 뒤덮으며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된 일본 작가 쿠사마 야요이가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쿠사마 야요이 스튜디오는 27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그가 지난 1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사인은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추후 별도의 추모 행사가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환각을보던소녀, 경험을기록하다
1929년 일본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쿠사마 야요이는 어린 시절부터 주변의 사물과 공간이 반복되는 무늬로 뒤덮이는 환각을 경험했다. 유복했지만 부모님의 불화와 엄격한 환경 속에서 행복하지 않았던 유년시절의 흔적이었다.

수채와 파스텔, 유화 등으로 옮겨지던 점들은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확장됐다. 20대후반, 당시 일본 여성들에게 기대되던 현모양처의 틀을 박차고 뉴욕으로 건너간 쿠사마는 작은 붓질을 캔버스 가득 반복한 '인피니티 네트(Infinity Nets)' 연작을 선보였다. 시작도 끝도, 중심도 없는 화면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반복과 무한을 시각화한 작품이었다.

뒤늦게찾아온재평가…브랜드가된'쿠사마'
하지만 당시 쿠사마가 지금과 같은 명성을 누린 것은 아니었다. 백인 남성 중심의 뉴욕 주류 미술계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고, 결국 그는 1973년 일본으로 돌아와 작업을 이어갔다.

재평가는 곧 대중적인 인기로 이어졌다. 오랫동안 작업 속에 등장해온 이미지들은 누구나 알아보는 '쿠사마의 이미지'가 됐다. 대표적인 것이 점 찍힌 호박이다.
종묘업을 하던 집안에서 자란 쿠사마에게 호박은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대상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환각 속 사물들이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켰던 것과 달리 편안하고 안정적인 존재였다. 자서전을 통해 "어린시절 할아버지와 밭에 갔을 때 사람 머리만 한 호박이 말을 걸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미술관 밖에서도 '쿠사마 월드'는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2012년 루이비통과의 협업을 시작으로 패션계를 물방울무늬로 뒤덮었고, 2014년에는 'White No. 28'이 710만 달러에 낙찰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여성 작가'가 됐다. 같은 해 전 세계에서 그의 전시를 찾은 관람객이 200만 명을 넘기면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로 꼽히기도 했다.

세계적스타가된뒤에도매일작업실로
명성이 높아진 후에도 쿠사마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도쿄의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며 아침이면 작업실로 향해 그림을 그렸고, 저녁이면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수십 년간 이어갔다. 생전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작품을 만들고 있을 때"라고 말했듯 그에게 작업은 직업인 동시에 자신을 견디는 방식이었다.
작업량 역시 줄지 않았다.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이어진 대형 회화 연작 '마이 이터널 소울(My Eternal Soul)'은 약 900점에 이른다. 이후에도 새로운 회화 연작을 시작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쿠사마 야요이 스튜디오에 따르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것은 '물방울무늬' 자체가 아니라, 가장 두려웠던 경험을 자신만의 언어로 바꾸고 70년 넘게 확장해왔던 시간이었다. 반복되는 점 속에서 자신과 세계의 경계가 어디까지 사라질 수 있는지를 탐구했던 쿠사마 야요이의 97년은 그렇게 하나의 세계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