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평생 ‘점’ 찍었을까…막 내린 쿠사마 야요이의 97년 세계

전하영 기자 2026. 8. 2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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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 속 ‘점’에서 시작된 '쿠사마 월드'
늦은 재평가 뒤 세계적 스타로 우뚝
마지막까지 이어간 70년 작업
일본 작가 쿠사마 야요이. 공식 누리집 갈무리

노란 호박을 뒤덮은 물방울 무늬, 거울 속에서 끝없이 증식하는 빛과 점. 세상을 점으로 뒤덮으며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된 일본 작가 쿠사마 야요이가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쿠사마 야요이 스튜디오는 27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그가 지난 1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사인은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추후 별도의 추모 행사가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흔히 '물방울무늬의 여왕'으로 불리지만, 쿠사마가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은 이유는 단순히 강렬한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반복적인 환각을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바꾸고, 회화·조각·설치·퍼포먼스 등으로 확장하며 70년 가까이 '무한'과 '반복'을 탐구한 작가다. 그렇게 쌓인 '쿠사마 월드'는 독자적인 예술세계가 됐다.
뉴욕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쿠사마 야요이. 네이버 영화 갈무리

환각을보던소녀, 경험을기록하다
1929년 일본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쿠사마 야요이는 어린 시절부터 주변의 사물과 공간이 반복되는 무늬로 뒤덮이는 환각을 경험했다. 유복했지만 부모님의 불화와 엄격한 환경 속에서 행복하지 않았던 유년시절의 흔적이었다.

벽을 타고 흩어지며 세상을 뒤덮는 환각을 열 살 꼬마는 그림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점과 그물이 끝없이 반복되는 작업은 이후 평생을 관통하는 언어가 됐다. 그에게 극심한 공포를 줬던,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자신과 주변 세계의 경계가 사라지는 감각은 '자기소멸'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한 사람의 존재가 무수한 점 가운데 하나가 되고, 결국 더 큰 우주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거울을 활용해 무한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인피티니 미러 룸'. 네이버 영화 갈무리

수채와 파스텔, 유화 등으로 옮겨지던 점들은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확장됐다. 20대후반, 당시 일본 여성들에게 기대되던 현모양처의 틀을 박차고 뉴욕으로 건너간 쿠사마는 작은 붓질을 캔버스 가득 반복한 '인피니티 네트(Infinity Nets)' 연작을 선보였다. 시작도 끝도, 중심도 없는 화면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반복과 무한을 시각화한 작품이었다.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 팝아트가 교차하던 뉴욕에서 쿠사마는 회화와 조각, 설치, 퍼포먼스를 오가며 작업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 데서 생겨난 트라우마와 강박을 수많은 돌출 형태로 뒤덮인 '축적' 연작으로 풀어냈고, 거울을 사방에 설치해 한정된 공간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인피니티 미러 룸'을 통해 '자아가 무한 속에 흩어지는 감각'을 관람객이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쿠사마의 시그니처인 '호박'. 연합뉴스

뒤늦게찾아온재평가브랜드가'쿠사마'
하지만 당시 쿠사마가 지금과 같은 명성을 누린 것은 아니었다. 백인 남성 중심의 뉴욕 주류 미술계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고, 결국 그는 1973년 일본으로 돌아와 작업을 이어갔다.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1980년대 말부터다. 1989년 뉴욕 국제현대미술센터에서 열린 회고전을 계기로 초기 작품이 재조명됐고,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개인전은 쿠사마를 국제 미술계의 중심으로 불러냈다. 1960년대 뉴욕에서 일찍부터 시도했던 작업들과 일본 출신 여성 작가로서 남성 중심의 뉴욕 미술계에서 독자적인 언어를 구축했다는 점도 뒤늦게 조명됐다.
지난 2022년 76억 원에 낙찰되며 그해 국내 경매사 거래 작품 최고가를 기록한 녹색 호박. 연합뉴스

재평가는 곧 대중적인 인기로 이어졌다. 오랫동안 작업 속에 등장해온 이미지들은 누구나 알아보는 '쿠사마의 이미지'가 됐다. 대표적인 것이 점 찍힌 호박이다.

종묘업을 하던 집안에서 자란 쿠사마에게 호박은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대상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환각 속 사물들이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켰던 것과 달리 편안하고 안정적인 존재였다. 자서전을 통해 "어린시절 할아버지와 밭에 갔을 때 사람 머리만 한 호박이 말을 걸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미술관 밖에서도 '쿠사마 월드'는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2012년 루이비통과의 협업을 시작으로 패션계를 물방울무늬로 뒤덮었고, 2014년에는 'White No. 28'이 710만 달러에 낙찰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여성 작가'가 됐다. 같은 해 전 세계에서 그의 전시를 찾은 관람객이 200만 명을 넘기면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로 꼽히기도 했다.

수십 년 전부터 그려온 점과 호박, 거울방이 뒤늦게 미술사적 평가와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얻으면서 '쿠사마'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셈이다.
지난 2023년 파리 루이비통 매장을 물들인 쿠사마의 점들. 연합뉴스

세계적스타가뒤에도매일작업실로
명성이 높아진 후에도 쿠사마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도쿄의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며 아침이면 작업실로 향해 그림을 그렸고, 저녁이면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수십 년간 이어갔다. 생전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작품을 만들고 있을 때"라고 말했듯 그에게 작업은 직업인 동시에 자신을 견디는 방식이었다.

작업량 역시 줄지 않았다.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이어진 대형 회화 연작 '마이 이터널 소울(My Eternal Soul)'은 약 900점에 이른다. 이후에도 새로운 회화 연작을 시작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쿠사마 야요이 스튜디오에 따르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것은 '물방울무늬' 자체가 아니라, 가장 두려웠던 경험을 자신만의 언어로 바꾸고 70년 넘게 확장해왔던 시간이었다. 반복되는 점 속에서 자신과 세계의 경계가 어디까지 사라질 수 있는지를 탐구했던 쿠사마 야요이의 97년은 그렇게 하나의 세계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