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이라는 ‘이상한 나라’, 상품으로 소모되는 연습생의 삶 [플랫][읽는시간]

K팝은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 뒤는 어떨까요? 아이돌과 아이돌이 되지 못한 연습생들이 처한 현실이 혹독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런 서사는 보통 ‘성공한 사람’들의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 정도로만 소모되죠.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해온 기자이자 K팝 산업 종사자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하는 책 <케이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을 쓴 전다현 작가는 “직장인으로서 일하는 것도 힘든데 저렇게 일을 하면 사람의 몸이 멀쩡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이 주제에 대해 취재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전 작가는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과 출판사 김영사가 26일 연 북토크 ‘읽는시간’에서 K팝 산업의 그늘, 소모되는 연습생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무더운 날씨, 피곤한 저녁시간이었지만 책에 관심이 있고 K팝 산업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싶어하는 입주자님들이 많이 참석해주셔서 어느 때보다도 열띤 자리가 이어졌어요.
전 작가는 이 취재를 위해 K팝 산업 전·현직 관계자 40여 명을 만났습니다. 취재는 쉽지 않았는데, 특히 만나주려는 사람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해요. 현직 아이돌을 섭외하는 것은 당연히 여의치 않았고, 전직 아이돌도 생각처럼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이쪽 산업이 정말 폐쇄적이더라고요. K팝 업계에 더 이상 발을 담그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말을 해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트라우마를 갖고 있고, 내가 아이돌을 지금은 하고 있지 않아도 옛날 계약서를 빌미로 다시 (예전 소속사가) 소송을 걸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전 작가는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었고, 지인의 지인의 지인에 연락을 한다든가 답이 없는 e메일을 돌리면서 취재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취재를 통해 구체적으로 재구성된 연습생들의 실태는 충격적입니다. 오전 3시에 잠들어 5시에 일어나는 하루 일과표, 하루 8시간씩 운동을 하고 열흘간 물조차 마시지 못하며 목만 간신히 축인 적도 있다는 전직 아이돌의 인터뷰, 여자 아이돌 10명 중 8명은 월경을 안 한다는 관계자의 증언 등을 수집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반론합니다. “운동선수도, 심지어 평범한 학생들도 미래를 위해 잠을 줄여가며 치열하게 노력한다. 왜 아이돌만 문제야?” 이런 반론은 전 작가가 실제로 처음 취재를 시작할 때 많이 들었던 말이라고 해요.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착취당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어린 아이돌 연습생이 처한 현실이 다른 것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한계도, 한계를 그어줄 교육자도 없다는 점이라고 전 작가는 지적합니다.
“사람 자체가 상품이 되는 영역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육이 존재하지 않고, 이들을 트레이닝시키는 사람도 교육자가 아니죠. 8살, 9살짜리들이 ‘상품’이 되는 훈련을 한다는 것은 일반적 아동 인권 침해와 노동권 침해와 완전히 결이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성 연습생과 아이돌은 외모와 나이에 대한 더 큰 압박에 시달리고 때로는 성적 착취까지 이어지는 더 큰 취약성 위에 놓여 있기도 하다고 전 작가는 지적했습니다.
심지어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이 몇 명이나 되는지, 그중에 미성년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그 실태조차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전 작가는 “최소한 미성년자 연습생이 몇 명이나 되는지 통계는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연예기획사가 미성년자와 계약을 맺었다면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등록하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습니다. 미성년자와 계약할 경우 별도의 자격을 취득해야 하며 계약 사실을 등록해야 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례도 소개했지요.
결국 한국 사회의 문제를 비틀고 확대한 것이 K팝 산업의 문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전 작가는 K팝 아이돌을 지망했던 한 미국인 청소년과 인터뷰한 뒤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다’고 했는데요, 이 청소년은 본인이 바꿀 수 없는 외모와 나이에 대한 압박을 받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외모나 나이에 대한 압박은 엔터테인먼트 업계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만연하잖아요. 아이돌의 사생활은 통제 대상이라는 생각도 흔하고요. 때로는 외모나 사생활을 압박하는 주체가 아이돌을 사랑하는 팬일 때도 있습니다.
이날 참석해주신 입주자님들도 여기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나눠주셨어요. 한 입주자님은 “어린 친구들이 돈을 무지막지하게 쓰거나 시간과 마음을 많이 쓰는 경우를 보는데 사실 그런 게 있어야 굴러가는 산업”이라며 “팬이 (아이돌과) 거리를 갖는 게 가장 중요한데 이 산업의 근본적 구조가 달라지지 않으면 팬의 자세도 달라지기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씀하셨어요.
K팝 팬은 K팝 산업의 그늘을 바꿔나갈 수도 있을까요? 전 작가는 K팝 팬덤이 산업의 한 축인 만큼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역할이 많다고 말합니다. 연예기획사나 아이돌을 모델로 둔 패션회사 등을 상대로 기후 의제를 제기하는 K팝 팬들의 단체 ‘케이팝포플래닛’의 활동을 그 예로 들었지요. 기후 운동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행동할 수 있는 부분은 의외로 많습니다.
“생각보다 기획사들은 팬의 반응을 많이 살펴봅니다. 일반 대중보다 주 소비자인 팬의 반응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팬들이 입을 모아서 이야기하면, 최소한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좋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는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전 작가의 말에 한 입주자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정책이 생기려면 자료가 생겨야 하고, 팬들 하나하나의 목소리도 그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소셜미디어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오늘 북토크를 통해 하게 됐습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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