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인 줄 알았는데 빙하 붕괴”···2016 티베트부터 2025 블라텐까지, 지구가 보낸 경고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네팔에서 지난 26일 갑작스러운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해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현지 당국이 집계한 사망자는 157명까지 늘었고, 실종자는 400명을 넘어섰다. 관광객과 현지 주민뿐 아니라 한국인 9명도 연락이 끊긴 상태다. 한국인 실종자들은 한국남동발전과 두산에너빌리티 소속으로 현지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 파견된 직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럽게 밀려든 물과 진흙, 바위는 마을과 도로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무엇보다 이번 재난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충분히 대비할 틈도 없이 닥쳤다는 점이다. 그런데 사고 직후 지진으로 여겨졌던 진동의 정체를 추적하던 전문가들은 뜻밖의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산 위의 빙하와 암석이 한꺼번에 무너졌을 가능성이다.
로이터통신은 위성사진과 지질 자료를 분석한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번 홍수가 빙하 붕괴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해발 5000m가 넘는 곳에서 무너진 얼음과 암석이 계곡으로 쏟아져 내려오면서 거대한 토석류를 만들었고, 이것이 하류의 강을 순식간에 불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아직 이번 재난의 정확한 원인이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다. 지진이 빙하 붕괴를 촉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이번 네팔의 참사가 단순한 ‘홍수’나 ‘산사태’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얼음과 암석 그리고 물이 연쇄적으로 움직인 복합 재난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재난이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히말라야와 알프스에서는 빙하가 무너지거나 빙하호가 터지면서 대규모 홍수와 토석류가 발생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때로는 산을 뒤흔든 거대한 붕괴 자체가 지진처럼 관측되기도 했다.
얼음이 녹으면 바닷물이 높아진다. 우리가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 흔히 떠올리는 장면이다. 하지만 산악지역에서 얼음이 사라지는 과정은 훨씬 복잡하다. 빙하가 후퇴하고 영구동토가 녹으면 산사면의 안정성이 달라지고, 녹은 물은 새로운 빙하호를 만들거나 기존 호수의 규모를 키울 수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얼음이나 암석이 무너지면, 그것이 거대한 물과 토사의 움직임을 촉발할 수 있다.
2016년 중국 티베트 -- 9명을 숨지게 한 ‘빙하 붕괴’

2016년 7월 17일 중국 티베트 서부 아루코 호수 인근에서 거대한 빙하가 갑자기 무너졌다. 약 6500만㎥에 이르는 얼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가면서 거대한 얼음 눈사태가 발생했고, 목동 9명과 가축 수백 마리가 희생됐다. 당시 연구진은 이렇게 평평해 보이는 빙하가 갑자기 기반과의 접촉을 잃고 붕괴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봤다. 그런데 두 달 뒤인 9월 21일 인근의 또 다른 빙하까지 붕괴했다.
두 차례에 걸쳐 무너진 빙하의 양도 상상을 뛰어넘는다. 첫 번째 붕괴량은 약 6800만㎥, 두 번째는 약 8300만㎥로 추정됐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권장하는 축구장 크기인 105×68m를 기준으로 하면, 이 얼음을 축구장 하나에 쌓았을 경우 각각 약 9.5㎞, 11.6㎞ 높이에 해당한다. 에베레스트 정상(약 8.85㎞)보다도 높은 규모다.
스위스 연방 산림·눈·경관연구소(WSL)와 취리히연방공대(ETH Zurich) 등이 위성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구진은 첫 번째 빙하가 붕괴하기 전 빙하가 급격하게 이동하는 현상을 보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평소에는 매우 느리게 움직이던 빙하가 갑자기 속도를 높여 아래쪽으로 빠르게 밀려나면서 불안정해졌다는 것이다. 빙하가 10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200m 이상 빠르게 전진한 흔적도 확인됐다. 이후 연구에서는 표면 융해와 강수 등이 빙하 바닥의 수압을 높여 불안정성을 키웠을 가능성도 제시됐다. 당시만 해도 이런 대규모 빙하 붕괴는 극히 드문 현상으로 여겨졌다.
2017년 스위스 본도 -- 빙하가 아닌, ‘산’이 무너졌다

2017년 8월 23일에는 스위스 알프스의 본도에서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했다. 피초 첸갈로에서 약 310만㎥의 암석이 계곡으로 무너져 내렸고, 이어 발생한 토석류가 본도 마을 쪽으로 밀려들었다. 산에서 떨어진 암석과 토사가 저류지를 가득 채우고 건물과 도로 등 기반시설을 파괴했다. 당시 산을 오르던 등산객 8명이 숨졌고, 주거지역에서는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빙하가 직접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알프스의 고산지대에서는 영구동토가 암석 틈을 얼려 붙잡아주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 기온이 오르면서 이 얼음이 녹으면 암벽이 불안정해질 수 있고, 그 결과 산비탈의 거대한 암석 덩어리가 한꺼번에 떨어져 내리는 ‘암석사태(rock avalanche)’가 발생할 위험도 커진다. 본도의 경우 약 310만㎥의 암석이 피초 첸갈로에서 계곡으로 무너졌고, 이후 암석과 토사가 물과 뒤섞여 대규모 토석류로 변하면서 마을을 덮쳤다. 스위스 연방 산림·눈·경관연구소(WSL)는 본도 사건을 포함해 최근 산악지역에서 암석사태와 토석류 위험을 지속적으로 관측하고 있다.
2021년 인도 차몰리 -- 얼음과 바위가 강을 덮쳤다

2021년 2월 7일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주 차몰리에서는 거대한 암석·빙하 얼음 사태가 발생했다. 론티산 북쪽 급경사면에서 약 2700만㎥의 암석과 빙하 얼음이 한꺼번에 붕괴했고, 계곡 아래로 빠르게 쏟아지면서 엄청난 양의 토석류로 변했다. 이 물질은 지름 20m가 넘는 바위까지 운반할 정도로 위력이 컸고, 리시강가와 다울리가강가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서 두 곳의 수력발전 시설을 크게 파괴했다.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쳐 200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 취리히대, 스위스 연방 산림·눈·경관연구소(WSL) 등 국제 연구진은 위성영상과 지진 관측자료, 현장 영상, 수치모델 등을 종합해 사고 과정을 재구성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산비탈에서 거대한 암석과 얼음 덩어리가 한꺼번에 떨어져 내렸고, 이 과정에서 계곡에 쌓인 암석과 얼음이 물과 뒤섞이면서 빠르게 흘러내리는 토석류로 변했다. 이 토석류가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서 리시강가강과 다울리가강가강의 수력발전 시설을 덮쳤고, 대규모 인명 피해와 시설 파괴로 이어진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2021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거대한 암석·빙하 얼음 사태가 인도 히말라야 차몰리에서 발생한 2021년 재난을 일으켰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연구진은 차몰리 참사가 고산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암석과 얼음의 대규모 붕괴가 계곡의 물과 결합하면서 재난의 규모를 순식간에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라고 분석했다. 특히 산악지역의 기온 상승으로 빙하와 영구동토가 변화하고, 동시에 수력발전소와 도로 등 개발이 확대되면서 이런 자연적 위험에 노출되는 인구와 시설이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2023년 인도 시킴 -- 커지던 빙하호가 한꺼번에 터졌다

2023년 10월 4일 인도 북동부 시킴주에서는 사우스 론악 호수가 무너지면서 대규모 빙하호 범람이 발생했다. 이 호수는 빙하가 후퇴하면서 커진 빙하호로, 인도우주연구기구(ISRO)의 위성자료를 보면 2023년 9월 말과 10월 초 사이 호수 면적이 급격하게 줄면서 약 105㏊의 물이 빠져나간 흔적이 확인됐다. 쏟아진 물은 테이스타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서 교량과 도로를 휩쓸고, 1200㎿ 규모의 테이스타 3 수력발전댐도 파괴했다.
처음에는 폭우와 구름폭발이 원인으로 거론됐지만, 이후 위성자료와 연구를 통해 빙하호 붕괴가 핵심적인 촉발 요인으로 확인됐다. 최근 연구에서는 호수 주변의 불안정한 측면 빙퇴석이 붕괴하면서 거대한 파도가 발생했고, 이 파도가 호수의 자연 제방을 무너뜨리는 연쇄 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국제통합산악발전센터(ICIMOD)는 2025년 연구를 통해 붕괴 지역에 영구동토가 존재했고, 영구동토 해빙이 지반 불안정성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2024년 네팔 타메 -- 빙하호 두 개가 연쇄적으로 터졌다
2024년 8월 16일 네팔 에베레스트 지역의 타메 마을에서는 빙하호 범람으로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다. 국제통합산악발전센터(ICIMOD)는 당시 사고가 티안보 빙하호 붕괴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이후 조사 결과는 훨씬 복잡한 과정을 보여줬다. 해발 약 4900m에서 발생한 대규모 암석사태가 빙하호를 덮치면서 물을 밀어냈고, 첫 번째 호수에서 약 15만6000㎥의 물이 빠져나왔다. 이 물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두 번째 빙하호의 제방까지 무너뜨렸고, 추가로 약 30만3000㎥의 물이 쏟아졌다. 두 물줄기가 합쳐지면서 거대한 진흙·암석 흐름이 만들어져 타메 마을과 주변 시설을 휩쓸었다.
이 과정에서 주택과 학교, 보건소, 교량, 수력발전 시설 등이 파괴됐고 135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다행히 사고가 낮 시간대에 단계적으로 진행되면서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ICIMOD는 2025년 후속 연구에서 이 사건을 단순한 빙하호 범람이 아니라 암석사태→호수의 파동→첫 번째 호수 붕괴→두 번째 호수 붕괴→토석류로 이어진 ‘복합 연쇄재난’으로 규정했다.
2025년 스위스 블라텐 -- 빙하가 무너지자 ‘지진’처럼 흔들렸다

2025년 5월 28일 스위스 알프스의 블라텐에서는 산 전체가 무너진 듯한 거대한 붕괴가 발생했다. 며칠 전부터 클라이네스 네스트호른 일대에서 암석이 계속 떨어졌고, 이 암석들이 아래에 있던 비르치 빙하를 짓누르면서 빙하가 기반에서 떨어져 나갔다. 결국 약 900만㎥ 규모의 암석과 얼음이 한꺼번에 계곡으로 쏟아져 내려 마을 대부분을 매몰시켰다. 주민 300여 명은 사전에 대피했지만, 대피구역 밖에 있던 1명이 숨졌다.
대규모 암석과 얼음이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발생한 지진파가 규모 3.1 정도의 지진에 해당하는 신호로 기록됐다. 즉 지진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산과 빙하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지진계가 감지할 만큼 강한 진동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전문가들은 빙하를 받치고 있던 지반의 변화와 알프스의 영구동토 해빙 등 기후변화와 관련된 요인이 산악사면의 안정성을 약화시켰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다만 이 사례를 기후변화로 인한 빙하 붕괴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스위스 빙하관측망 책임자인 마티아스 후스는 “비르치 빙하의 경우 빙하 위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양의 암석이 쌓여 있었고, 이처럼 특정한 지형적 조건이 붕괴의 규모를 키웠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다른 산악지역에서도 기온 상승만으로 똑같은 규모의 빙하 붕괴가 일어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산의 경사와 암반 구조, 빙하의 형태와 두께, 주변에 쌓인 암석의 양 등 지역마다 조건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빙하가 녹는다는 데 있지 않다. 기온이 오르면서 얼음과 영구동토가 약해지고, 산을 붙잡고 있던 지반이 불안정해지면서 빙하 붕괴가 암석사태와 토석류, 갑작스러운 홍수로 이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연쇄 재난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통합산악발전센터(ICIMOD)는 최근 힌두쿠시·히말라야 지역의 변화를 두고 “홍수와 산사태, 눈사태, 가뭄이 더욱 잦고 강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기후변화로 빙하와 눈이 빠르게 변하면서 빙하호 붕괴홍수와 산사태, 토석류 등이 서로 연결되는 ‘연쇄적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ICIMOD의 재난위험경감 전문위원인 사스와타 산얄은 로이터통신에 “힌두쿠시 지역에서 이 같은 재난이 전례 없는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며 “연쇄적인 영향을 일으키는 원인을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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