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일본 사회에 폭탄을 던지고 싶었다”···‘핑크 영화’ 찍던 여성 감독, 가네코 후미코를 그리다

전지현 기자 2026. 8.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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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세대 여성 감독 하마노 사치
영화 ‘가네코 후미코’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찾아
조선 아나키스트 아내가 아닌 사회운동가로서 모습
옥중 자서전 읽고 영화화 욕심
이준익 감독 ‘박열’ 보고 본격 제작
‘핑크 영화’로 여성 감독 길 개척
사회적 시선 뛰어넘는 여성 그려
“자기 삶 관철해 온 인물 담고 싶다”
하마노 사치 감독.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영화 <가네코 후미코>의 가네코 후미코가 감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영화는 역사에서 잊힌 인물을 길어 올리기도 한다. 이준익 감독의 <박열>(2017)로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1902~1974)과 그의 배우자이자 동지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1903~1926)는 더 많은 이에게 기억될 수 있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의 혼란에서 일본 황태자를 폭살하려 한 ‘대역 사건’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은 두 사람은 법정에서 당당히 일본과 제국주의를 규탄하는 사상 투쟁을 벌였다.

26일 폐막한 제2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가네코를 조명한 하마노 사치 감독(78)의 영화 <가네코 후미코>(2025)가 소개됐다. 영화는 사형 선고를 받은 가네코가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121일을 그린다. 박열의 아내가 아닌, 인간의 평등을 믿으며 “기존의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자”하는 혁명적 사상가로서, 독방에서도 기록을 멈추지 않는 여성으로서의 가네코를 그린다. 사상 전향 압박에 굴복하지 않은 그의 마지막을 가네코가 남긴 단가(短歌)를 바탕으로 상상해 재구성했다.

영화 <가네코 후미코>의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하마노 감독은 가네코가 옥중에서 쓴 자서전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를 읽고 “일본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차별에 맞서 싸운 그의 영혼이 내 안에서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영화화하고 싶었지만, 예산이 많이 드는 시대극에 당장 도전하기란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그러다가 2019년 이 감독의 <박열>을 봤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한창이던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메가박스 신촌에서 관객을 만난 하마노 감독은 “누군가 등을 밀어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의 가네코’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를 마친 하마노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제2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나흘째인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메가박스 신촌에서 <가네코 후미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GV)가 열리고 있다. 전지현 기자
하마노 사치 감독이 23일 서울 마포구 한 공간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하마노 감독은 공고한 체제에 균열을 내고자 하는 삶을 살았다는 데서 가네코와 닮았다. 학창 시절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다. “영화 속 여성들의 모습이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딸로만 정형화되어 있다는 데서 불쾌감과 위화감을 느꼈던” 그는 감독이 되어 “현실의 여자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1960년대 일본 영화계는 대학 졸업한 남성만이 감독이 될 수 있는 곳이었다.

“민주국가인 일본에서 여자가 할 수 없는 직업이 있을 수 있냐는 것이 저의 첫 번째 분노였습니다.” 하마노 감독은 영화계의 변두리인 ‘핑크 영화’에서 길을 찾았다. 성(性)을 주된 소재로 다루는 극장용 35㎜ 성인 영화로 정사 장면의 횟수, 여배우의 노출 횟수만 지키면 감독이 원하는 내용을 연출할 수 있는 제작 여건 덕에 젊은 감독들의 등용문이 되기도 했던 장르다.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성폭력이라는 말도 없던 때 심한 일을 수차례 겪기도 했습니다. 숙박하며 촬영할 때는 식칼을 가슴에 품고 잔 적도 있어요.” 여성 감독으로 서고 싶었지만, 제작자들은 “여자가 만든 핑크 영화를 남자가 좋아하겠냐”며 본명인 ‘사치코’에서 여성적인 어미인 ‘코’를 멋대로 빼버리기도 했다.

“여기서밖에 감독을 할 수 없다면 여성인 내가 내 손으로 여성의 성을 되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1985년 제작사 탄탄사를 세웠다. 여성을 남성의 시선에 비친 객체가 아닌 주체적인 사람으로 그린 그의 영화들은 큰 성공을 거뒀다. 하마노 감독은 “여배우들과 자매처럼 연대의식을 갖게 된 덕”이라며 “제가 하는 연출이면 믿고 맡길 수 있다며 여배우들이 오히려 노출에 과감했다. 핑크 영화 감독으로 엄청 잘나가게 됐다”고 했다. 그가 감독·제작한 영화만 300여 편에 달한다.

두 번째 분노는 1990년대 후반 도쿄국제여성영화제가 “일본 여성 감독 중 장편 극 영화를 가장 많이 연출한 감독은 6편을 만든 다나카 키누요(田中絹代)”라고 발표했을 때 찾아왔다. 이미 영화를 300편 가까이 찍었던 하마노 감독은 “그 발표에 의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무국적자로 태어난 가네코와 처음으로 연결됐다고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마노 감독은 “일반 영화를 만들어 스스로 목소리를 높여야겠다”고 느꼈다. <제7관계 방황>을 쓴 여성 작가 오사키 미도리의 작품 세계를 살피는 영화 <미도리>(1998)를 만든 이유다. 1896년생인 미도리는 30대 중반 두통약 부작용으로 정신착란에 빠진 후 아무런 집필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영화를 만들 때 “제작비가 많이 부족했는데, 전국에서 후원이 들어왔다. 첫 작품할 때부터 시스터후드(여성 연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 <가네코 후미코>의 한 장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가네코 후미코>는 그의 여섯 번째 장편 ‘일반 영화’다. 고령 여성의 성과 사랑을 담은 <릴리 페스티벌>(2001), 러시아 문학과 희곡의 뛰어난 번역가였던 유아사 요시코와 페미니스트 소설가 미야모토 유리코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요시코와 유리코>(2011) 등 그의 시선은 늘 사회적 시선을 뛰어넘는 여성을 향한다. 하마노 감독은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신을 오늘까지 이끌었다고 했다.

‘가네코와 동시대인이었다면, 그의 친구 혹은 동지가 되었을 거라 생각하냐’고 묻자 하마노 감독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네코 후미코 본인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가네코는 일본이라는 국가에 싸움을 건 오직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저도 ‘영화를 통해 일본 사회에 폭탄을 던지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왔으니,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가네코가 되지 않았겠냐”고 했다.

하마노 감독은 “지금처럼 지치지 않고 자기 삶의 방식을 관철해 온, 역사적으로 묻혀버린 실존 인물을 되살리고 싶다”고 했다. 또 하나의 꿈이 있다면, 쇠락하고 있는 일본 핑크 영화계가 그렇게 끝나버린다면 “마지막 핑크 영화를 찍는 것”이다. “100살 된 할머니가 여성의 성을 에로틱하게 다루는 작품을 만든다면 얼마나 대단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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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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