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쿠팡 청문회’ 본 美 의회 보좌진들... “여기 중국이냐” 물었다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2026. 8. 26.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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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작년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연석 청문회'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마치고 돌아서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쿠팡 청문회. 김범석 쿠팡 의장 대신 출석한 해럴드 로저스 쿠팡 대표를 향해 의원들의 고성이 쏟아졌다. “바지사장이냐” “허수아비 같다” “짧게 답하라”는 질책이 이어졌고, 민주당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답변이 길어질 때마다 “그만하라”며 말을 끊었다. 순차 통역에도 의원들은 “시간만 잡아먹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한국에서는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책임 있는 쿠팡 경영진을 국회가 강하게 추궁한 장면으로 소비됐지만, 워싱턴에서는 이 영상이 전혀 다른 의미로 퍼졌다고 한다.

지난 3월까지 현대자동차그룹 워싱턴사무소에서 미국 정부 관계와 정책 전략을 총괄했던 외교부 외교전략기획관 출신 우정엽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26일 본지 통화에서 “당시 청문회 영상이 미국 의회 보좌진들 사이에서 상당히 많이 돌았다고 들었다”며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미 의회 보좌진들은 처음에 영상만 본 뒤 ‘여기가 중국이냐’고 물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고 했다.

우 위원은 바로 이 장면이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쿠팡의 막강한 대미 로비 신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그는 최근 펴낸 신간 ‘액세스: 워싱턴은 로비로 움직인다(수연사)’에서 “쿠팡의 실제 영향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 의회에는 한국 정부와 국회가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는 인식이 이미 존재했고, 한국 의원들이 미국인 쿠팡 CEO를 강하게 추궁하는 장면이 그 인식을 강화했다”고 주장했다.

우 위원은 통화에서 “쿠팡이 로비를 잘한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쿠팡의 로비만으로 미국 정부와 의회의 반응을 설명하려고 하면 잘못”이라고 했다. 쿠팡이 워싱턴에 없던 인식을 새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 이미 미국 정치권에 깔려 있던 ‘한국이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는 불만을 자기 문제와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는 “(쿠팡 문제를 앞장서 제기하는) 공화당 소속 미 하원의 짐 조던 법사위원장 같은 경우에도 예전부터 한국과의 무역 관계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해 왔던 사람”이라며 “한국에 대해 너무 좋은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이 쿠팡 때문에 갑자기 ‘한국이 왜 이러냐’고 된 게 아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에 쿠팡이 자기 문제를 잘 얹은 것”이라고 했다. 우 위원은 “이 사례는 국제 로비의 성패가 로비스트의 역량만이 아니라 국가 간 관계와 상대국에 대한 기존 프레임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했다.

우정엽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위원. /허드슨연구소

쿠팡이 잘한 것은 ‘프레임’을 바꾼 것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와 규제 문제를 ‘한국에서 한 기업이 법을 어겼느냐’는 문제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차별하느냐’는 문제로 돌려세웠다. 우 위원은 책에서 “바뀐 것은 문제의 실체가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언어와 프레임이었다”고 했다.

다만 그 프레임이 먹힌 데에는 쿠팡 이전부터 쌓여 있던 배경이 있었다고 했다. 우 위원은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 같은 미국 기업들은 이미 한국에서의 비즈니스 환경에 대해 불만을 이전부터 계속 제기해 왔다”며 “온라인 플랫폼 문제도 바이든 행정부, 윤석열 정부 때부터 미국 측이 엄청나게 문제 제기를 했다. 당시에는 동맹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관리하려 했고 지금 쿠팡처럼 언론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 들어 이런 갈등 요소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게 우 위원의 설명이다. 그는 “트럼프 정부에서는 한미 간 여러 요인을 갈등 요소로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며 “쿠팡이 그런 정치적 상황을 아주 잘 이용한 것”이라고 했다.

우 위원은 기업 로비의 성패를 보려면 결국 국가 간 관계를 먼저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중 관계가 틀어지기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하기 전에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대미 로비도 꽤 잘 먹혔다”며 “하지만 국가 대 국가 관계가 틀어진 뒤에는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어떤 로비스트를 써도 이제 아예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라는 요인이 개입하면 로비의 성패는 기본적으로 국가 관계에 기인하게 된다”며 “쿠팡 역시 이런 국가 간 관계의 약한 부분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책에서 “쿠팡의 로비가 궁극적으로 회사의 이익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정책 변경의 주체가 한국 정부이기 때문”이라며 “다만 쿠팡 경영진이 로비스트에게 맡긴 임무가 단기적으로 쿠팡 이슈가 미국 정부 내에서 요란하게 거론되도록 하는 것이었다면, 그래서 한국 정부에 정치적 부담을 주는 것이었다면, 그들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우 위원은 한국 정부의 대응도 쿠팡 개별 사안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쿠팡 사안만 떼어놓고 ‘이건 쿠팡의 어떤 위반 사항에 대한 국내 법적인 절차’라고만 설명해서는 미국 국회의원들이나 강경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 기업 차별이 전혀 없는데 쿠팡이 얘기해서 이렇게 된 것처럼만 생각하지만, 워싱턴에서 관찰한 바로는 그게 아니다”라며 “이 사람들은 결국 쿠팡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는 문제로 보고 있다”고 했다.

결국 쿠팡의 로비에 맞서려면 쿠팡 주장만 반박할 게 아니라, 그 주장이 먹히는 배경부터 건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 위원은 “기본적으로 이 문제는 계속 존재해 왔던 문제”라며 “쿠팡이라는 요인이 분명히 작용한 것은 맞지만, 그 기저에는 기존 미국 빅테크들이 한국에서의 비즈니스 환경에 대해 제기해 온 불만이 깔려 있다”고 했다. 쿠팡의 로비를 약화시키는 길도 결국 워싱턴에 누적된 ‘한국의 미국 기업 차별’ 인식 자체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서부터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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