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의 핫스팟] 집값은 몰라도 전현무 ‘주작’은 따진다

김현우 기자 2026. 8. 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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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급 현안에는 무관심
예능 논란에는 전투태세
누구나 참여하는 공론장
알고리즘이 키운 펜듈럼
"중간만 가자."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런 처세술을 조기 이수한 우리는 영혼 없는 끄덕임과 '모르는 척'으로 무장한 생존의 고수들이다. 퇴근길 소주 한 잔에 "오늘도 버텼다"며 스스로를 마취하고, "받은 만큼만 일한다"며 핏대 세우는 걸 훈장처럼 여긴다. 그런데 이상하다. 성공했다는 이들의 삶은 왜 우리와 이토록 딴판일까. 어쩌면 우린 그저 거대한 '펜듈럼(Pendulum)'의 진동판 위에서 시키는 대로 춤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공력을 낭비하며 '잉여 포텐셜'을 공급하는 건전지 신세로 말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덕 교과서 대신, 왜 이 지겨운 장면이 무한 반복되는지 그 메커니즘이 궁금했다. 내게 그 프리즘을 빌려준 바딤 젤란드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의 '트랜서핑' 이론을 메스 삼아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김현우의 핫스팟]을 시작한다.
전현무 /MBC '나 혼자 산다'

대한민국은 우체통 논쟁 한복판에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치솟는 집값·고갈되는 국민연금·붕괴하는 의료 등 '원자력 발전소'급 현안이 널려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방송인 전현무가 카자흐스탄 알마티행 비행기 표를 정말 공항에서 즉흥적으로 끊었는지에 사활을 건다.

*우체통 논쟁: 1913년 독일의 철학자 후설의 제자들이 "눈앞의 우체통이 실제로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를 두고 한 학기 내내 치열하게 말싸움을 벌인 일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채 지나치게 사소하고 지엽적인 문제를 두고 벌이는 쓸데없는 탁상공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당시 학자들은 우체통이라는 평범한 사물을 인식하는 인간의 감각과 의식 구조를 완벽하게 증명하려 했다. 훗날 다른 철학자들에 의해 실천적이고 본질적인 삶의 문제는 외면한 채 사소한 말장난에만 집착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이와 같은 부정적인 비유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왜 그럴까.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논란이 현대인이 가장 쉽게 입장권을 끊을 수 있는 '초저비용 공론장'이기 때문이다. 트랜서핑(Transurfing) 관점에서 보자면 대중의 에너지를 가장 빠르게 흡수하는 완벽한 '펜듈럼'이 탄생한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을 논하려면 소득대체율과 기금수익률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즉흥 여행이라더니 진짜야?"라는 질문에는 어떤 전문 지식도 필요 없다. 10~70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알마티시 관광국은 "지원했다"고 하고 문화방송(MBC)은 "협찬은 없었다"고 한다. 대사관 렌터카 규정까지 등장한다. 정보가 완전히 닫히지 않은 틈새는 누리꾼을 '셜록'으로 만든다. 사람은 결론 난 사건보다 자신이 직접 추리해 결론을 낼 수 있는 사건에 훨씬 오래 머문다.

부동산이나 노동 문제를 이야기하면 이해관계가 갈리고 정체성을 평가받는다. 하지만 예능 조작 논란은 위험 부담이 없다. 내 재산·세대·정치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도 안전하게 도덕적 우위를 점하며 화를 낼 수 있다.

수년간 매주 안방에서 밥 먹고 자는 것을 지켜본 전현무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다이렉트>에 실린 연구처럼 시청자는 반복 노출된 인물에게 강한 친밀감을 느낀다. 그래서 "네가 감히 날 속여?"라는 기만당한 감정으로 직결된다.

알고리즘이 키운 도덕적 분노의 펜듈럼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것은 플랫폼 구조다. 한국인의 뉴스 회피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숏폼 중심 소비가 폭발하고 있다. 이 생태계에서 국민연금 재정추계는 30초 안에 결론이 나지 않는다. 반면 공항 장면과 알마티시 공식 문서가 교차하는 폭로 영상은 30초면 충분하다.

부정적 단어가 클릭률을 높이고 플랫폼 추천 알고리즘이 도덕화된 분노를 담은 콘텐츠를 기형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누군가 "이거 주작 아니야?"라고 불씨를 던지면 언론이 기사를 쓰고 해명이 나온다. 다시 반박 영상이 올라온다. 펜듈럼 스스로 거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회가 파편화될수록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감정을 싣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통 화제'는 희귀해진다. 직장 동료와 커피 한잔하며 10분짜리 대화를 만들기에 예능 논란만큼 가성비 좋은 소재도 없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거대한 펜듈럼은 많은 사람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감정을 배설할 수 있는 곳에서 만들어진다는 서글픈 사실이다.

국가적 문제 앞에서는 무력감을 느끼며 피로해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작은 흠집 하나에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판사가 된다. "전쟁과 집값보다 전현무 여행에 뜨거운 대한민국". 2026년 우리 주의력이 철저하게 소비되고 조종당하는 씁쓸한 자화상이다.

☞펜듈럼=트랜서핑 이론에서 대중의 생각이나 감정이 한 방향으로 모일 때 생겨나는 독자적인 에너지를 뜻한다. 한번 형성되면 사람들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흡수하며 세력을 키우는 특징이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