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과 ‘덕후’ 사이의 마케터, 류정혜 공동의장 [플랫][여자, 언니, 선배들]

소녀는 언니를 보고 자랍니다. 여기 선배가 된 언니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정표이자 버팀목이 되는 [여자, 언니, 선배들]의 일·커리어 이야기를 플랫이 전달합니다.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해봐도 된다’의 모델이면 좋겠습니다. 두려움 없이 새로운 곳에 도전해도 괜찮아, 나이 마흔에 스타트업 가도 괜찮아, 이런 느낌으로요.”
류정혜 AI 미래포럼 공동의장(50)의 커리어는 넘실거리는 ‘모험의 파도’를 헤쳐온 여정이다. 그는 서울대 인류학과 졸업 후 포털사이트 프리챌에 입사한 것을 시작으로 네이버(옛 NHN), 토스랩, 카카오페이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을 거쳤다. 아이디어를 주도적으로 실현시키고자 하는 성향이 류 의장을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큰 도약을 준비하는 초기 기업으로 움직이게 했다.
직장을 바꾸며 커리어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직급도 팀장, 마케팅총괄,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부사장으로 한 계단씩 높아졌다. 지금은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과실연)의 AI 미래포럼 공동의장과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민간위원, 우리금융지주 독립이사(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류 의장은 “AI 시대에도 가장 중요한 건 사람에 대한 이해”라고 말한다. 마케터라면 흥행하는 콘텐츠 안에 숨겨진 ‘동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읽어내야 한다. 류정혜 의장 자신부터가 아르바이트 첫 월급으로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 전집을 샀을 정도로 콘텐츠에 ‘진심’이다. 이 진심은 더 넓은 대중에게 콘텐츠를 알려야 하는 순간에 톡톡히 발휘됐다. ‘이태원 클라쓰’, ‘김비서가 왜 이럴까’, ‘나 혼자만 레벨업’ 등 굵직한 웹소설·웹툰이 그의 손을 거쳐 대중과 만났다.
이제 류 의장은 더 큰 아이디어를 품고 있다. 한국이 AI의 고비를 넘도록 돕고, ‘K-컬쳐’를 하나의 페스티벌과 같은 IP(지식재산권)로 기획·마케팅하는 것이다. 그의 도전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에서 류정혜 의장을 만나 ‘내가 만드는 커리어’의 즐거움에 관해 들었다.
뛰어들다: 프리챌 유저, 프리챌에서 테크 경력 첫걸음

- 인류학을 전공하고 인터넷 기업으로 간 배경은 무엇인가요?
“대학을 다닐 때가 인터넷 초창기였어요. 인터넷 문화나 서비스를 소개하는 인터넷 매거진에서 인턴기자 일을 했습니다. 당시 프리챌에 뭔가를 쓰고 있었는데 공채 1기를 모집한다고 뜨더라고요. 평소에 많이 봤던 곳이니까 지원을 했죠. 그렇게 작은 고리를 통해 테크 기업 커리어를 시작했고 쭉 테크 기업에서만 일하게 됐습니다. 돌아보면, 테크 기업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회사 생활을 오래 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 처음부터 마케터로 커리어를 시작했나요?
“처음에는 기획팀으로 들어가 서비스 기획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영업을 포함해 여러 일을 다 했죠. 큰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여러 일을 해야 했어요. 지금도 스타트업에서는 각자가 여러 직군의 일을 맡아야 하듯이요. 그때는 테크라는 산업 영역도 따로 없었기 때문에 업계에 조언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요. 그래서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좋았습니다. 또 닥치는 대로 일하다 보면 생기는 근성이 있습니다. 지금도 ‘한번 해보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곤 하거든요. 지나고 보니 그때 굳은살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그만큼 초기 스타트업에서 쌓은 경험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 테크 기업에서 인문사회계 전공자라는 것이 강점이 될 수 있나요?
“문과 전공자가 점점 힘든 세상이긴 합니다. 그런데 결국 제일 중요한 건 인간을 이해하는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비스나 제품을 선택하는 건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이고,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니까요. 소비자, 사용자와 맞닿는 지점에서는 사람을 이해하는 힘이 중요하고 이건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니 이왕 문과에 발을 들이셨으면 그 지점에서 강점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코딩을 배운 적 없더라도 사람의 언어(자연어)로 컴퓨터를 부리는 시대가 왔으니 거기에 인간을 이해하는 힘, 기획하는 힘이 더해진다면 더 능력 있는 인재가 되는 것이죠. 최근 앤트로픽(‘클로드’ 개발사)이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를 약 50만달러에 채용해 화제가 됐듯이요.”
전환하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돌아보니 ‘전환점’

- 대기업(네이버)에서 스타트업(토스랩)으로 옮긴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그 당시에는 어떤 부분에서 갈증이 생기는지 정확히 정의를 못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일에 주도성을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좋은 회사였음에도 큰 회사에서는 아무래도 조직의 한 부품처럼 일하게 되니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꽤 방황했습니다. 10년 가까이 지낸 생태계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두려웠어요. 그때 먼저 나간 선배 중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안정적인 좋은 직장 박차고 나오는 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나가보니까 낭떠러지가 아니고 그냥 계단 몇 개 내려오면 된다’고요. 조직 내에서 각자 힘든 시기가 있잖아요.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 커리어상 좋은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돌아봤을 때 커리어의 승부수는 언제였나요?
“안정적인 직장을 나와 스타트업에 있었던 그 1년이었어요. 기존에 가졌던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고 저 자신이 새롭게 조직된 시간이었습니다. 재탄생한 것이죠. 2015년 한국엔 스타트업 씬(scene)을 만들겠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아이디어가 없냐’면서 경계를 타는 아이디어에 과감히 승부를 걸었습니다.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자유로움이죠. 거침없이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일이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스타트업끼리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고 배우고 가르치는 ‘열린 생태계’의 힘도 많이 느꼈습니다. 보고서 쓰는 일에서 다시 액셔널 마케팅(실행 중심 마케팅)의 현업으로 돌아온 거죠.”
- 이직 고민과 결심 같은 큰 스트레스에는 어떻게 대처했나요?
“새로운 걸 모색하기 위해서 많이 찾아다녔습니다. 주말에 재능기부, 소모임 등에 가서 관심 분야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만나봤고요. 이야기도 듣고, 실제로 어떤 일인지 많이 배웠습니다. 또 저 스스로에게 물어봤습니다. ‘초기 스타트업은 3년 생존율이 지극히 낮은데, 이런 상황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나?’, ‘1년 동안 월급은 나오겠지’….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인생에 어두운 구간을 통과할 때는 시야에 어둠밖에 없는 것 같지만 그 구간은 터널이고 끝에는 반드시 빛이 나옵니다. 그 시간은 그냥 통과해야 하는 시간이거든요. 제게도 그때가 커리어의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파고들다: 웹소설·웹툰계 ‘노란 집’에서 마케터가 한 일

- 카카오페이지로는 어떻게 가게 됐나요?
“저를 영입한 대표님이 첫 직장(프리챌) 직속 상사였던 분입니다. 2013년은 회사 이름을 아직 카카오페이지로 바꾸기 전이었습니다. 카카오페이지가 스타트업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을 탈출한 직후로, 서비스가 시장에 맞을 때까지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PMF)을 한창 조정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시장에서 ‘쓸만하네’가 되면 그다음부터 성장(Scale-up), 본격적으로 ‘J-커브(곡선)’가 시작되는 시점인데, 그때 카카오페이지가 딱 그랬어요. 죽음의 계곡을 거치고 성장을 위한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게 저였습니다.”
- 성장을 위해 어떤 프로젝트를 했나요?
“카카오페이지 마케팅으로 기억하시는 거의 모든 걸 제가 했을 거예요. 배우 박보검씨가 나왔던 CF가 첫 매스 캠페인(대규모 홍보)였습니다. 좋은 서비스만으로는 정체인 시점에서 신규 유입자를 넣어줘야 했거든요. 그때 신규 유입자가 2000만명 정도 늘었을 거예요. 그 이후 마블 ‘어벤져스’·정재승 교수·이국종 교수 콜라보, ‘이태원 클라쓰’·‘사내맞선’·‘김비서가 왜 이럴까’ 캠페인, ‘나 혼자만 레벨업’ 영상 홍보 등을 저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만들어 냈습니다. 크고 작은 캠페인을 하면서 계속해서 화제성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했지요. 그때는 ‘카카오페이지라는 게 있다’를 대중의 머리에 넣는 것이 브랜딩의 목표였거든요. 반년 만에 내부 브랜드 인지도 평가 수치가 크게 뛰었습니다.”

- 의사결정을 할 때 숫자로 확인되는 이용자 반응과 마케터의 감각 중 어디에 비중을 뒀나요?
“마케터는 일반인과 ‘덕후’의 경계선에 있는 사람이란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 업계에서 마케팅의 역할은 덕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 세계에 있지 않은 일반인에게 어필해 그들을 데려오는 것이거든요. 숫자와 감각의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났던 건, IP 마케팅을 위해 작품을 선정해야 할 때였습니다. 억 단위 투자를 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에 데이터를 뽑아 보거든요. 그러면 이미 카카오페이지에 들어와서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데이터가 나오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엔 일반인을 끌어들일 수 없는 작품도 존재해요. 덕후 세계에선 난리가 나고 매출도 좋은데 그 세계가 너무 ‘깊은’ 경우에는 일반인에게 영업이 안 됩니다. 대중에 알려졌을 때 파급력을 가질 작품이 무엇인지, 마니아 반응이 좋던 작품이 일반인에게도 반응이 있을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그건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데이터가 아니라 감을 믿고 가야 하죠. 그래서 데이터와 감을 항상 섞었습니다. (연령·성별 등) 누구를 타깃으로 하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지고요.”
- 그때 업계에서 직접 본 ‘로맨스판타지’ 장르는 어땠나요?
“동시대 여성과 남성의 ‘날것의 욕망’이 가장 잘 반영된 콘텐츠가 웹소설이예요. 2016년 로맨스판타지가 싹트는 걸 보면서 정말 신기했던 건, 독자가 더는 ‘백마 탄 왕자’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하는 주체성 있는 여자 주인공이 많이 나타났어요. 남자 주인공에 대한 니즈도 다채롭게 나오기 시작했고요. 요즘은 권력도 싫고 돈을 많이 벌어서 자유롭게 내 뜻을 펼치겠다는 여자 주인공 스토리가 많아요. 실제 베스트셀러도 투자 서적이잖아요. 이런 걸 보면 웹소설은 이 시대가 원하는 날것이 무엇인지 읽기에 제일 좋은 텍스트입니다.”
마주치다: AI 시대와 콘텐츠…‘감도’를 높여라

- AI 시대 콘텐츠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글을 쓸 수 있다’와 ‘히트작을 쓴다’는 다릅니다. AI가 글은 쓰겠지만 히트작을 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의도를 가지고 AI를 활용해서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잖아요. AI라는 파괴적인 도구를 어떻게 쓸지는 여전히 인간에게 상당 부분 달렸습니다. 다만 콘텐츠의 수는 압도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이미 10년 전에도 콘텐츠는 더 이상 희귀하지 않았습니다. 희귀한 건 사람의 시간이죠. 콘텐츠 비즈니스는 사람의 ‘남는 시간’을 두고 경쟁합니다. 이제는 인류가 만든 모든 예능, 모든 지식, 심지어 쇼핑과도 경쟁해야 합니다.”
- 청년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첫 번째는 ‘지금까지 없던 걸 상상할 힘이 나에게 있나?’이고, 두 번째는 ‘그것을 구체적인 아웃풋 형태로 기획할 수 있나?’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결과에 대한 감도’입니다. 어떤 글과 영상, 콘텐츠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갑’인 시대입니다. 어떻게 그 감도를 가질 수 있느냐 하면, 수없는 콘텐츠를 경험해야 해요. 특히 좋은 걸 많이 봐야 합니다. 안 좋은 것 100개, 1000개를 봐도 감도는 생기지 않습니다. 양서를, 양질의 영상을 봐서 결과에 대한 감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1점짜리 아웃풋이 나왔는데 그걸 보고 괜찮다고 생각해버리면 안 되니까요. 눈높이를 상위 10% 콘텐츠에 맞추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야 해요.”
빛나다: 리더십의 무게, 의논하고 솔직해져라

- 자기 일을 잘하는 것과 조직을 이끄는 것은 어떻게 달랐나요?
“처음에는 그 둘이 다르다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개인으로만 뛰어난 사람을 팀장직에 두는 것도 조직이 많이 빠지는 함정이거든요. 임원 단계에서는 이 조직에선 무엇을 중요하게 보고 어떤 것을 높이 평가하는지 기강과 문화를 만들어줘야 했습니다. 조직원이 느낄 수 있게끔 칭찬과 평가를 명확히 표현해 줄 필요가 있었어요. 또 조직원의 원동력과 동기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을 시켜보면 이 사람이 뭘 잘하고 뭐에 약한지는 금방 알 수 있는데, 진짜 그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더라고요.”
- ‘언제나 여자 선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고 언급하신 적이 있어요.
“처음 팀장이 됐을 때인데요. 술이 약하고 담배도 피우지 않다 보니 술자리나 흡연실 같은 비공식적 자리에서 논의되는 정보에 소외되는 때가 많았습니다. ‘나도 술 마시고 담배 피워야 하나’ 고민하면서 이 자리를 지나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차차 리더 그룹에 속하게 되면서 성과 자체보다는 조직 내 역학이나 관계를 만드는 부분이 어렵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여자 선배들은 오히려 남자보다 술도 잘 마시고 와일드한 스타일이 많았는데 그건 제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더라고요. 다른 길을 가야 하는데 그건 뭘까, 어떻게 보면 여성으로서나 자기 스스로나 고유의 인간성을 가지면서도 리더로 올라가는 다양한 사례를 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조직 내에 멘토를 두고 자주 의논하라는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 여성들은 ‘성장할 수 있는 고강도 직장’과 ‘가정과 양립할 수 있는 직장’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기 스스로한테 솔직해야 합니다. 스스로 성장지향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면 안정지향일 수도 있어요. 그 반대일 수도 있죠. 같은 사람이어도 20대와 30대의 생각이 다르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는 게 영원하다고 보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꿈꾸다: ‘그냥 해 봐도 된다’

- 앞으로 무엇에 도전하고 싶나요?
“첫 번째로는 한국이 AI의 큰 고비를 넘어가는 데에 어떤 방면으로든 기여하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사람을 통해 AI를 이해하도록 돕고자 합니다. 흔히 AI라고 하면 마치 거대한 어떤 존재가 움직이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AI 모델은 전부 사람이 만들어내고 있어요. AI 시대를 만드는 숨겨진 사람을 끄집어내면서 AI 시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는 ‘잘츠부르크 뮤직 페스티벌’의 K-컬쳐 버전을 만들고 싶어요. 모짜르트가 태어난 작은 도시 잘츠부르크가 전세계 클래식 애호가라면 꼭 가봐야 하는 유산을 가진 도시가 됐듯이, K-컬쳐를 사랑하는 기운을 그러한 형태로 바꿔내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K-컬쳐가 집대성되고 사람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평생 이 페스티벌은 꼭 한번쯤 가봐야 한다’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IP를 만들고 싶습니다.”
- 어떤 선배로 남고 싶나요?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해봐도 된다’의 모델이면 좋겠습니다. 두려움 없이 새로운 곳에 도전해도 괜찮아, 나이 마흔에 스타트업 가도 괜찮아, 이런 느낌으로요. 새로운 것 해도 죽지 않더라고요. 망해도 괜찮아요, 다른 것 하면 되니까. 그런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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