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조정래의 글감옥 만기 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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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잠에 든 밤중, 동화작가 정채봉(1946~2001)의 집에 전화벨이 울렸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후반부 집필에 한창이던 조정래였다.
1970년 스물일곱에 소설가로 등단해 중단편 위주로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던 조정래는 1983년 9월 '태백산맥' 연재를 시작하며 20년간 이어질 대하장편 집필기에 들어섰다. 한국일보에 연재한 '아리랑'을 1995년에, '한강'을 2002년에 각각 완간하면서 이룩한 대하소설 3부작의 금자탑은 작가 자신에겐 '글감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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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염결함으로 한국문학 지평 열어
장편 집필 종료 선언, 아쉬움 속 갈채를

꽃잠에 든 밤중, 동화작가 정채봉(1946~2001)의 집에 전화벨이 울렸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후반부 집필에 한창이던 조정래였다. "난디 돌쩌귀풀꽃이 구시월에 피지잉?"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돌쩌귀풀꽃인지 문고리풀꽃인지 구시월에 핀다 하문 어떻고 동짓달에 핀다 하문 어떻습니까" 대꾸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조금 있다가 조정래가 소주병을 들고 들이닥쳤다. "이렇게 편하구서도 글이 살아남아주길 바라느냐" "태백산맥 그 넓은 천지에 나는 것이면 검불 하나도 내게는 소중하다"…. 닦달을 당하며 정채봉은 생각했다. '아, 미치는 것과 정상이라는 것은 실금 하나의 이편 저편이구나.'(이하 인용은 '길: 조정래 사진여행'에서)
1970년 스물일곱에 소설가로 등단해 중단편 위주로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던 조정래는 1983년 9월 '태백산맥' 연재를 시작하며 20년간 이어질 대하장편 집필기에 들어섰다. 한국일보에 연재한 '아리랑'을 1995년에, '한강'을 2002년에 각각 완간하면서 이룩한 대하소설 3부작의 금자탑은 작가 자신에겐 '글감옥'이었다. 원고지와 펜만 놓인 자기 유폐의 세계.
'태백산맥'에 갇힌 7년의 막바지, 변비·현기증과 함께 다리 부종과 빈혈이 오는 듯한 환상통을 앓는 몸을 뉘었을 때의 회고는 이렇다. "온몸이 녹아 흘러 땅속으로 잠기는 듯한 느낌 속에서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나고 말지' 하는 생각으로 정신을 잃듯 잠이 든다. 그 죽음과 소생의 되풀이 속에서 원고지는 쌓여갔다." '아리랑'을 탈고했을 때 '글감옥에서의 가출옥'이란 표현으로 심경을 밝혔던 그는 이윽고 감옥으로 되돌아가 '한강'을 써내려갔다. 환갑 이후에도 3년에 한 편씩, 그것도 두세 권짜리 두툼한 장편소설을 완성하고 잠시 세상에 나서는 삶을 반복해왔다. 올해가 마침 그해라, 24일 기자간담회장에 나온 여든셋 작가의 손에는 두 권짜리 '서리꽃'(해냄 발행)이 들려 있었다.
이쯤 되면 조정래가 딛고 선 실금, 후배 정채봉이 미치기도 하고 정상이기도 한 채로 서 있는 자리라고 봤던 그곳을 '순정'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번 신작 말머리에 붙인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글을 쓰다가 책상에 엎드려 죽고 싶다", 그러니까 문학을 위해 순교하겠다는 마음. 이런 염결은 문학청년 시절 들끓던 마음에 이미 자리 잡았던 모양이다. "나는 문학을 시작하기 이전에 벌써 문인이나 예술가들이면 으레 저지르는 여러 가지 이상한 짓들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문학은 형식적인 몸짓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충실한 내용으로 해야 한다고 나 스스로에게 경고했던 것이다."
'태백산맥'을 썼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고, 그러면서도 정치사회적 현안에 발언할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5·16쿠데타 일원이었던 박태준(1927~2011)을 사심 없는 산업화 기수로 상찬하는 위인전을 써서 입길에 오르는 와중에도 조정래가 문학적 생명력을 잃지 않은 것은 세상 또한 그가 결국은 문학에 순정한 사람이라 여겼기 때문 아닐까.
작가는 그제 간담회에서 "장편소설은 아마도 이게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부연하길 "스스로 소설 앞에서 자유로워지고 싶고 몸에 대한 자유를 조금은 허락하고 싶다"고 했다. 아쉬움이 크다 해도 어찌 말릴 수 있겠나. 그가 스스로를 글감옥에 가뒀기에 한국 문학에 이토록 웅장한 산줄기가 솟았음을 감사할 따름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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