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곽도영]‘양상추 기생충’과의 전쟁 중인 美… 이상기후에 커지는 식탁 위협

곽도영 뉴욕 특파원 2026. 8. 25.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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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현대미술의 상징 뉴욕현대미술관(MoMA)앞에는 뉴욕의 또 다른 명물, 원조 '할랄가이즈' 푸드트럭이 있다. 지중해와 중동 지역 음식을 뉴욕 길거리에서 파는 패스트푸드로 개발해 큰 인기를 누리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식품 기업의 상징적인 장소다.

MoMA 앞 할랄가이즈 푸드트럭에서 근무 중인 모로 마리오 씨는 "사이클로스포라 영향을 체감하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양상추를 빼고 달라는 손님들이 많다"고 답했다. 그는 또 "우리도 상황은 알고 있지만, 할랄가이즈는 우수한 품질의 양상추를 안정적으로 납품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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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명물 푸드트럭 발길 ‘뚝’
기생충 파동 원인, 멕시코산 양상추
타코벨-치폴레 등 식품업체 된서리
고물가 속 물가 지표에 악영향… 중간선거 앞둔 트럼프 행정부 고민
1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의 한 거리에 등장한 ‘할랄가이즈’ 푸드트럭. 최근 미 전역을 휩쓴 ‘양상추 기생충’ 파동으로 양상추를 사용하는 많은 식당, 푸드트럭 등이 때아닌 된서리를 맞았다. 곽도영 뉴욕 특파원 now@donga.com
곽도영 뉴욕 특파원
《‘양상추 포비아’로 이어진 美기생충 파동

뉴욕 현대미술의 상징 뉴욕현대미술관(MoMA)앞에는 뉴욕의 또 다른 명물, 원조 ‘할랄가이즈’ 푸드트럭이 있다. 지중해와 중동 지역 음식을 뉴욕 길거리에서 파는 패스트푸드로 개발해 큰 인기를 누리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식품 기업의 상징적인 장소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려는 미드타운 직장인들과 뉴욕을 찾은 관광객 등 하루 평균 2000명 이상이 찾는 이곳이 토요일이던 이달 15일(현지 시간) 오후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평일 점심시간에도 예전 같은 줄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뉴욕을 비롯해 미국 전역을 덮친, 때아닌 ‘기생충 파동’ 때문이다.》

올여름 미국은 사이클로스포라 감염증으로 비상이 걸렸다. 단세포 생물인 사이클로스포라는 장내에 서식하는 기생충이다. 설사와 구토를 유발하며 길게는 수 주까지 증상이 이어지기도 한다. 2026년에 기생충 파동이 웬 말인가 싶지만 미국 47개 주에 걸쳐 1만5000명 이상의 확진 사례가 보고됐다. 가장 피해가 심한 미시간주에선 감염자 2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미 보건 당국은 이번 사태의 유력한 요인으로 멕시코산 아이스버그 상추를 지목했다. 문제는 보건 당국이 문제로 지적한 양상추는 특정 유통업체를 통해 공급된 일부 양상추였음에도 미 전역에 ‘양상추 포비아(Phobia·공포증)’가 확산됐다는 점이다. 이에 주메뉴에 잘게 썬 양상추가 들어가는 할랄가이즈와 타코벨, 치폴레, 샐러드 전문점 등도 때아닌 된서리를 맞고 있다.

● 美 전역 기생충 파동에 ‘양상추 포비아’ 확산
1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의 한 식료품점 내 양상추 매대에 ‘지역 상품(Local)’이란 노란 딱지가 보인다. 양상추를 꺼리는 일부 소비자에게 인근에서 재배해 기생충 걱정이 덜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곽도영 뉴욕 특파원 now@donga.com

MoMA 앞 할랄가이즈 푸드트럭에서 근무 중인 모로 마리오 씨는 “사이클로스포라 영향을 체감하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양상추를 빼고 달라는 손님들이 많다”고 답했다. 그는 또 “우리도 상황은 알고 있지만, 할랄가이즈는 우수한 품질의 양상추를 안정적으로 납품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미 대형 농산물 공급업체인 테일러 팜스는 미 보건 당국의 발표 직후 오염 가능성이 제기된 아이스버그 양상추 약 23만 상자에 대해 대규모 자발적 리콜을 실시했다. 미국 최대 식품 유통업체인 시스코는 멕시코산 양상추 구매를 전량 중단했다. 타코 등 주메뉴에 이 양상추를 사용하고 있던 타코벨은 갖고 있던 물량을 전량 폐기했지만 지난달 중순 기준 방문객 수가 30% 급감했다.

이처럼 관련 업체들이 대응 조치에 나서고 전체 공급망을 공개하며 원재료 안전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포비아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달 초 방문한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타코벨 매장은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테이블과 카운터가 손님 한 명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메뉴판에는 평소 4달러가량이던 엔칠리토를 1달러에 할인 판매한다고 적혀 있었다. 엔칠리토는 양상추가 들어가지 않는 치즈 위주의 부리토 메뉴다. 카운터 안쪽에서 잡담을 하고 있던 매장 점원에게 엔칠리토를 주문하며 “점심시간인데 매장이 비었네요”라고 하자 “네, (기생충) 뉴스 때문이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특히 샐러드 전문 외식업체들의 타격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CNBC에 따르면 샐러드 전문 외식업체인 촙트크리에이티브샐러드는 지난달 매출이 6% 감소해 연간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이달 초에는 샐러드앤고가 사이클로스포라 타격으로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 마트에서도 생채소 매출 급감

양상추 포비아의 파장은 가정 내 식탁에까지 뻗쳤다. 마트에서도 양상추를 비롯한 생채소, 포장 샐러드가 소비자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특히 아이를 둔 부모와 건강에 관심이 많은 세대에서 생채소를 먹는 게 안전한지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다. 사이클로스포라 감염증은 잠복기가 긴 데다 유통망 조사에 시일이 걸리다 보니 보건 당국에서 다른 식품들도 원인에서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한 게 포비아 확산에 불을 지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에는 최근 한 달 새 “아마존에서 파는 OO브랜드를 먹고 증상이 나타났다” “파슬리, 고수 같은 허브류도 위험하다” 등 소비자들이 발병 사례를 공유하는 게시글들이 급증했다. 이용자들은 직접 채소류를 수경 재배하는 법이나 익힌 채소 위주의 요리법을 공유하기도 했다.

지역 식료품점에서도 양상추가 팔리지 않자 상품 가격을 내리거나 안전한 지역 내 생산품임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방문한 뉴욕 롱아일랜드시티의 한 식료품점 양상추 매대에는 기존 가격표 위에 ‘Local’이라는 노란 딱지가 추가로 붙어 있었다. 멕시코산이 아님을 강조한 것. 평상시엔 저녁 가까운 무렵이면 매대가 텅텅 비어 있던 포장 샐러드 팩 제품 코너도 소비자들이 찾지 않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달 발표된 7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에는 양상추 파동의 여파가 여실히 드러났다. 채소 중에서도 양상추의 가격은 지난달 대비 16.4% 급락해 사상 최대의 월간 하락 폭을 기록했다. CPI 식품 부문 전체에서도 가장 큰 폭의 가격 하락이다.

반면 지역 상인들이 소규모 유기농 방식으로 직접 재배한 채소를 직거래하는 장터들은 반사 효과를 누리고 있다. 주말마다 뉴욕 유니언스퀘어를 비롯한 맨해튼 주요 광장에서 열리는 ‘파머스마켓’ 같은 곳들이 대표적이다. 파머스마켓 연합의 프로그램 책임자인 달린 월닉은 로이터통신에 사이클로스포라 사태 이후 장터 판매자들의 매출이 15∼30% 급증했다고 전했다.

● 살모넬라균도 극성… 이상기후 여파

보건 당국은 미 전역에서 대규모 사이클로스포라가 유행하게 된 핵심 요인 중 하나로 폭염 및 기후변화를 지목하고 있다. 사이클로스포라는 고온 다습한 환경에 노출되면 포자가 활성화돼 감염력이 빠르게 높아진다. 기존에는 열대, 아열대 지역에서 주로 나타나던 기생충이지만 최근 미국 북부 및 중서부 지역까지 이상고온 현상이 이어지면서 감염 위험 지대가 북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 전역에서 이상기후로 인한 식탁 위협은 최근 심화되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사이클로스포라 파동이 잦아들기도 전에 32개 주에서는 430명 이상이 할라페뇨와 관련된 살모넬라균에 감염됐다. 살모넬라균 역시 덥고 습한 환경에서 번식 속도가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집중호우나 홍수도 살모넬라균의 원인이 되는 가축 분뇨나 오염물질을 농경지로 이전시키는 요인이 됐다.

일상생활에 밀접한 식품 안전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 당국의 고민도 확대되고 있다. 5월 초부터 환자가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CDC가 확진자 추적과 오염원 규명에 난항을 겪으면서 멕시코산 양상추 리콜까지 두 달여가 소요됐다. 상대적으로 발병 메커니즘이 규명된 살모넬라균이나 대장균 등과 달리 기생충인 사이클로스포라는 오염원 규명에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점점 심화되는 기후 변화와 질병 위협에 따라 향후 관련 예산과 감시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사이클로스포라 감염증 사태를 분석한 기사에서 보건 당국의 예산 감축 사실을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FDA와 CDC가 식품 안전 검사 및 감시 프로그램을 위해 주 정부에 제공하던 수십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취소했다가 부분적으로만 복원했다. 폴리티코는 “각 주는 식품 안전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고, 인력 운영에 대한 불확실성이 발생했다”며 “사이클로스포라 발병 초기부터 트럼프 행정부는 CDC의 대응 체계 약화로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곽도영 뉴욕 특파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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