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세상이 알아주기까지 30년… 정일영 인하대 교수 “너무 멀리 보고 살지 말라”

김희연 2026. 8. 2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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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도 중요하지만 인성 알려주고 싶어
제자들 사회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 목표
“멀리 보지 말고 비교하지 마라”

최근 30년 시간강사 생활을 끝낸 정일영 인하대 영미유럽문융합학부 초빙교수는 “우리 아이들을 좋은 곳에 취업 시키는 것이 지금 나의 유일한 희망이자 목표”라고 했다. 2026.8.25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정일영(65) 인하대 영미유럽인문융합학부 초빙교수는 최근 방송과 유튜브 콘텐츠를 넘나들며 인기를 끌고 있는 인물 중 하나다. 스스로를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며 다양한 에피소드를 풀어 놓는데,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그의 화법에 당황하는 진행자들의 모습이 퍽 신선한 재미를 준다. 직접 만난 정 교수는 예상보다 더 거침없으면서도 솔직했다. 30년을 시간강사로 지내며 느낀 불안과 좌절, 그리고 제자들에 대해 얘기할 때 특히 그랬다. 자신이 수없이 실패하며 깨우친 교훈을 제자들이 느끼고, 제자들은 그 좌절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투명하게 보였다.

■ 인생에 반전이 오기까지 버틴 힘은 ‘글’

정일영 교수가 출강을 시작한 건 1996년이다. 프랑스 파리 제8대학교 대학원에서 언어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했지만, 교수로 임용되지 못해 시간강사부터 시작했다. 한번 시기를 놓치니 교수 임용은 더욱 어려웠고, 인하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 시간강사와 EBS 프랑스어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정년을 한 달여 앞둔 올해, 그는 마침내 인하대 초빙교수로서 정식으로 교수 타이틀을 달았다. 강사로 버틴 지 30년 만의 일이다.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듯 힘들었던 시기를 그가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글’이다. 정 교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집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최근 발간된 책 ‘결국 어떻게든 되더라고요’를 비롯해 프랑스어 교재까지 지금까지 수십 권의 책을 펴냈다. 그의 책을 읽는 독자들은 ‘포기하지 않을 힘’을 얻는다고들 한다. 그런데 쉬지 않고 글을 쓴 이유를 물으니 돌아온 답변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는 말이었다.

정 교수는 “뭔가 인문학적 소양을 후배들이 쌓아가길 바란다거나, 학문을 발전시키는 등의 철학적인 개념으로 책을 쓴 게 아니다”고 했다. 그는 “책 한 권당 나오는 인세, 그게 내 생활비였으니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당시 가진 거라곤 20만원 주고 산 중고 PC와 나의 머리뿐이었고, 이걸로 모든 걸 뽑아냈어야 했다”며 “하루 14시간 정도를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다 어느 순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어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심하게 왔다. 그래도 이 상황을 다시 덮고 나아가려니 또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정성을 다해 열심히 책을 쓰지만, 자신이 쓴 책을 다시 읽어보지는 않는다. 책을 읽으면 당시 그 글을 쓸 때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과 상황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책을 쓰는 일은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지금도 정식으로 출판되지 않은 원고가 40권은 넘는다. 글로라도 머릿속 생각을 털어내고, 다시 내일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가 강단에 서는 이유

정일영 인하대 교수. 2026.8.25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그는 인하대 문과대학 1회 졸업생(80학번)이다. 모교임에도 자신이 30년간 시간강사로밖에 몸담을 수 없었던 인하대에 서운함이 클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인하대 학생들에게만큼은 애정이 남다르다. 학생들에게 학문적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인성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모교 초빙교수가 된 감회가 남달랐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 교수는 의외로 무덤덤했다. 생각해보면 30년을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니, 이미 그는 학생들에게 교수나 다름없었을 거였다. 그럼에도 그가 교수 타이틀을 달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제자’였다. 제자들의 취업 등 사회로 나오는 길을 열어주려면 ‘시간강사’보다는 ‘교수’라는 직위가 소위 말해 더 ‘먹힌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미 그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제자들의 취업을 돕다가 시간강사라는 직위 때문에 무력감을 느꼈던 경험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가 한 기업 관계자에게 제자들을 추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그래서 그 학교에서 직위가 뭐냐”는 질문에 시간강사라고 답했을 때 해당 관계자가 보인 반응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무려 30년을 기다려 얻은 교수 타이틀을 제자들을 위해 쓸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을 하는 그를 보며, ‘진정한 교수’라는 느낌을 받았다.

정 교수는 “최근 기업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자주 나가는데, 쉬는 시간에 관계자들과 명함을 주고받는 등 인사할 기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우리 애들 인성 하나는 제대로 가르칠 테니 꼭 우리 애들 써달라’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우리 학생이 내 소개로 일하게 되기도 했다”며 “강연에 온 다른 기업 관계자 등으로부터 받은 명함을 통해 또 다른 강연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방송보다 강연을 더 많이 하려는 이유는 제자들을 소개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내가 제자들을 도울 수 있는 건 학교 안에서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을 좋은 곳에 취업시키는 것, 사회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지금 나의 유일한 희망이자 목표”라며 “기업체에 나를 소개할 때 어디 강사라고 하는 것과 인하대 초빙교수라고 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그래서 ‘교수’라는 직책을 붙잡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 좌절하는 청년들에게 하는 이야기

정일영 인하대 교수. 2026.8.25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세상이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그리고 힘든 일들이 계속 생길 때가 있다. 특히 삶의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젊은 친구들일수록 좌절하기 쉽다. 그럴수록 정 교수는 ‘멀리 보지 마라’ ‘비교하지 마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특히 가장 해주고 싶은 조언은 ‘가까이 보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계획할 때 1년 이상 뒤를 보고 준비할 때가 많지만, 정작 1년 뒤의 세상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정 교수의 생각이다.

정 교수는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항상 한 달 단위, 방학에는 두 달 단위로 끊어서 미래를 준비하라고 말한다. 당장 한 달 뒤를 목표로 자격증 공부를 하든 무언가를 배우면, 자격증을 땄다거나 하는 결과를 낼 때마다 스스로도 자존감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1년 사이에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멀리만 보며 세상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샌가 지칠 수 있다. 학생들에게 뭐든 가까이 보면서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말 역시 학생들을 위한 조언이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더 그렇다.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한 기억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하지, 슬프거나 힘든 일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생각이다. 그러니 SNS에서 보이는 남의 행복과 자신의 상황을 굳이 비교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시간강사 시절 자신과 달리 교수가 된 이들을 바라보고, 마침내 초빙교수가 되기까지 좌절감을 극복한 그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조언인 듯했다.

정 교수는 “예전에 인터넷이 없었을 때는 내 주변 사람하고만 비교하면 됐는데, 이제는 오만가지 일상을 다 비교하기가 쉽다. 하지만 누구나 대부분 불행한 일은 인터넷에 공유하지 않으니, 굳이 행복한 순간의 주변 사람과 나를 비교할 필요 없다”며 “학생들이 주변과 비교해 ‘내가 더 노력해서 지금 상황을 극복해야지’ 하기가 쉬운 사회적 시스템이 아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가까이 보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주변을 가장 소중히 하며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 정일영 교수는?
▲ 1961년 서울 출생
▲ 인하대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 학사
▲ 파리제8대학교 대학원 언어학 석·박사
▲ 前 EBSi 프랑스어 강사
▲ 現 시원스쿨 프랑스어 대표 강사
▲ 現 인하대 영미유럽인문융합학부 초빙교수


/김희연 기자 kh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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