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도 매력적인 읽기 대상 돼야…‘주례사비평’ 더 심해져”

강성만 기자 2026. 8. 2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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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이 그 자체로 고유한 개성을 통해 매력적인 읽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일본인과 재일한인 문인·학자 여럿이 화산도를 두고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작품이라고 평했어요. 저 역시 동시대 최고의 한민족 문학 작품이라고 봅니다. 역사의 진보 쪽에 문학성이 잘 결합한 작품이라, 다른 문예지는 몰라도 창작과비평이라면 칭찬이든 비판이든 제대로 다루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이유가 궁금해요."

인터뷰 끝에 그는 자신이 문학비평가의 삶을 사는 데 큰 영향을 미친 두 선배 평론가 이야기를 했다.

"학부 1학년 2학기 때 만난 김윤식 교수의 강의가 너무 열정적이고 매력적이었어요. 그 수업을 들으며 이게 바로 대학 강의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그 수업에 빠져 그해 10월에 김 교수 책 '문학과 미술 사이'와 이어 '김현 예술기행'을 구해 읽었는데요. 너무 매력적이더군요. 시나 소설이 아닌데 지성과 감성이 결합한 매력이랄까요. 어린 마음에 나도 문학평론가가 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만 19살이 되기 전에 제 인생이 너무 일찍 결정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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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10년 만에 비평집 낸 권성우 문학평론가

권성우 교수가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연구실에서 최근 펴낸 비평집 ‘망명과 지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비평이 그 자체로 고유한 개성을 통해 매력적인 읽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문학평론가 권성우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가 평문을 쓰며 늘 새기는 숙제다. 최근 10년 만의 비평집 ‘망명과 지성’(소명출판)을 내면서도 그랬다.

1987년 평단 데뷔 이후 7번째 비평집인 이번 책이 주요하게 다룬 ‘광장’의 작가 최인훈, 장편 ‘화산도’를 쓴 김석범, 재일한인 디아스포라 작가 서경식, 문학비평가 김윤식 등은 모두 그가 강하게 끌린 문사들이다.

1982년 서울대 인문대에 들어간 뒤 수업이 재미가 없어 방황하던 그를 문학의 세계로 이끈 게 그해 2학기 김윤식 교수의 한국 근대문학 수업이었다. 일본어로 쓰인 화산도 한국어 완역본(전 12권)이 2015년에 나오고 주요 문예지의 외면을 받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이 작품을 조명한 비평가가 그였다. 화산도 한 작품을 집중해 다루는 단행본도 이르면 내년쯤 출간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2024년부터 서경식 작가와 그의 두 형인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서승·서준식 삼형제의 저항과 지성, 글쓰기를 살피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의 비평은 대체로 문예지 청탁 시스템에서 한발 빗겨나 자신만의 취향과 깊은 탐구를 토대로 쓰여진다. 그의 책이 그 자체로 고유의 개성을 갖는 매력적인 독서물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면 아마도 이런 점의 영향이 클 듯하다.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대 연구실에서 권 교수를 만났다.

‘망명과 지성’.

책 제목이 말하듯 그가 매혹당한 작가들 상당수는 문학적 ‘지성’의 경지가 우뚝한 이들이다. 그는 책에 실린 글 ‘더 아름다운 삶을 향한 희망-반지성주의 시대의 문학과 현실을 응시하며’에서 “억압적인 정치적 현실과 획일적인 문화를 문학적 지성을 통해 폭파했던 문학의 역할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요구”되지만 이런 책무를 감당하는 작품을 갈수록 찾기 힘들다고 썼다.

왜 그렇게 보냐고 하자 그는 “요즘 독서문화나 문단을 보면 예외가 물론 있지만 대체로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고 민감한 화제에 기댄 작품들 쪽으로 달려가는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새로운 감성을 담은 작품이 많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작품은 이전보다 줄고 있어요. 지성의 퇴화 현상이죠. 문학적 다양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자기만의 어떤 지성적인 세계를 갖고 끝까지 밀고 가는 작가도 필요하다고 봐요. 사실 제가 좋아한 작가들은 세계와 역사, 문화를 온몸으로 껴안으면서도 지성의 매력을 보여준 작가들이죠. 화산도를 읽으면서도 좋은 의미의 지적인 쾌락을 느꼈습니다.”

그가 지성을 말하는 더 직접적인 이유는 근래 트럼프로 대표되는 반지성주의 흐름과 연결된다. “한국도 반지성주의가 정치나 문화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팽배해진 것 같습니다. 여기에 문학이 다른 생각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저항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번 책에는 김석범·서경식 외에 시인 김시종과 소설가 김학영 등 다른 재일한인 작가들에 대한 글도 있다. 무엇이 그를 디아스포라 작가에게 끌리게 했을까?

“15년 전부터 재일한인 문학에 대해 지속해서 논문을 쓰고 있어요. 디아스포라 문인 작품에는 뭔가 고통과 슬픔을 정면으로 통과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치열함이랄까 깊이나 상처랄까 그런 게 곡진하게 있어요. 그런 슬픔과 차별, 고난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좀 더 넓게 보이기도 하고, 단일한 국적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많이 볼 수 있는 그런 시선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서경식 선생님도 한국 사회에 통렬한 질문을 던졌잖아요.”

여기엔 자신의 기질 영향도 있단다. “저는 살면서 늘 중앙보다 변두리가 편했어요. 학창 시절에도 항상 뒤쪽 구석진 자리에 앉곤 했어요. 이런 저의 심리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데도 작용했겠지요.”

20여년 전부터 그에게는 여느 비평가들과 달리 ‘독립적인’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문학과 사회’ ‘문학동네’ ‘창작과비평’ 등 주요 문예지에 실리는 자사 출판물에 대한 칭찬 일색의 ‘주례사 비평’을 비판해왔고 2001년 무렵엔 문학동네 한 편집진과 격렬한 ‘문학권력’ 논쟁을 펼쳤다. 그 전까지 신진 평론가 대표주자로 뽑혔던 그는 이런 과정을 거쳐 주요 문예지 청탁 시스템에서 나와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

“창작과비평은 그 뒤로 청탁을 받기도 했지만 문학동네와 문학과 사회는 지난 30년 동안 청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권성우 교수. 김혜윤 기자

그는 문학권력 논쟁으로 상처도 받았지만 얻은 것도 있다고 했다. “주요 문학 출판사의 편집 공동체와 거리를 두면서 집단의 지평에서 잘 안 보이는 모순이랄까 행동양식 혹은 문단의 어떤 풍경이 보이더군요. 집단에 속하지 않은 개인만이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었고요.”

그는 이번 책에서 완역 11년이 흐른 지금까지 주요 문예지에서 화산도를 제대로 조명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가 보기에 화산도는 “제주 4·3을 어떤 작품보다 총체적이면서 밀도 있게 다뤘고 인물 형상화도 탁월하고 사유의 깊이도 있다.”

“일본인과 재일한인 문인·학자 여럿이 화산도를 두고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작품이라고 평했어요. 저 역시 동시대 최고의 한민족 문학 작품이라고 봅니다. 역사의 진보 쪽에 문학성이 잘 결합한 작품이라, 다른 문예지는 몰라도 창작과비평이라면 칭찬이든 비판이든 제대로 다루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이유가 궁금해요.”

7번째 평론집 ‘망명과 지성’ 펴내 최인훈 김석범 김윤식 조세희 등
애정하는 문사들 작품세계 조명
박희병 학술서와 이문영 기사도
“노벨문학상감 거론되는 ‘화산도’
주요문예지 무관심한 이유 궁금”

20여년 전 문학권력 논쟁 참여 뒤
‘청탁시스템’ 빗겨나 ‘독립비평’ 길

그는 올 상반기에 화산도에 나타난 러시아 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영향을 다룬 논문 두편을 쓰면서 김석범의 작품 세계를 도스토옙스키의 창조적 변주라고 규정했다.

“김석범 작품을 이해하려면 도스토옙스키의 세계를 좀 통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도스토옙스키 장편 ‘죄와 벌’이나 ‘악령’ 등에 나오는 심리 묘사나 허무주의, 사람에 대한 혐오가 김석범 작품에도 보입니다. 김석범은 그 영향을 받으면서도 문학적 역량을 통해 변주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열어젖힙니다.”

그가 비평한 작품에는 박희병 서울대 국문학과 명예교수의 학술 저술과 빈곤 문제를 파고드는 한겨레 사회부 이문영 기자의 기사도 있다.

학술서와 기사도 문학일까? “문학의 전통적 주요 장르인 시와 소설도 사실 인위적인 구분입니다. 에세이나 기행문, 일기, 자서전이 시나 소설보다 삶의 무늬나 결을 섬세하고 때론 치열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요. 서경식 에세이가 대표적이죠. 그런 의미에서 박희병과 이문영의 글 역시 문학적 글쓰기입니다. 서준식 옥중서한도 대단히 감동적으로 읽었는데요. 일종의 기록 문학이죠.”

화제를 돌려 그가 신진 평론가 때 문제 삼았던 한국 주요 문예지의 ‘주례사 비평’의 현재에 대해 물었다. 그는 “더 안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주요 문예지에 자사 출판물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 글이 조금이라도 있었는데 아이엠에프를 통과하면서 출판도 자본의 논리라고 할까 그런 영향을 받게 되면서 점차 사라졌어요. 지금은 (비판적인 비평문을) 아예 볼 수가 없어요.”

그는 “10여년 전만 해도 문학지 간 논쟁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아예 피한다”고도 했다. “(문학지들이) 논쟁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갑니다. 문학지 간 차이가 약화한 것도 있지요. 저는 문학지가 각자 입장에 따라 차이를 드러내고 상호 비판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예컨대 어떤 문학지가 권성우가 화산도를 높이 평가하는 데 우린 생각이 다르다고 비판하면 제가 재반론할 수 있잖아요. 이런 논쟁이 사라지니 재미가 없어요.”

“근본적인 후회는 아니지만 제가 좀 순진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때는 내가 옳으면 어쨌거나 옳은 방식대로 결론이 날 거라고 착각한 거죠.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은데요.” 권 교수가 20여년 전 문학권력 논쟁을 회고하며 한 말이다. 문학평론가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그가 애정을 가지고 비평을 한 작가가 자신의 글을 아끼고 좋아했을 때라고 했다. 김혜윤 기자

인터뷰 끝에 그는 자신이 문학비평가의 삶을 사는 데 큰 영향을 미친 두 선배 평론가 이야기를 했다. 그의 지도교수인 김윤식 교수와 문학평론가 김현이다.

“학부 1학년 2학기 때 만난 김윤식 교수의 강의가 너무 열정적이고 매력적이었어요. 그 수업을 들으며 이게 바로 대학 강의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그 수업에 빠져 그해 10월에 김 교수 책 ‘문학과 미술 사이’와 이어 ‘김현 예술기행’을 구해 읽었는데요. 너무 매력적이더군요. 시나 소설이 아닌데 지성과 감성이 결합한 매력이랄까요. 어린 마음에 나도 문학평론가가 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만 19살이 되기 전에 제 인생이 너무 일찍 결정되었어요.”

그가 1985년 서울대 대학문학상 평론 부문에 이문열론으로 당선되었을 때 심사위원이 김현 평론가였다. “그때 김 선생님이 저를 연구실에 불러 ‘앞으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 힘든 일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계속 쓰기 바란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저는 지금껏 늘 이 말을 기억하려고 했어요. 때론 치열한 논쟁을 거치며 정말 힘든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든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김 선생님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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