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의 핫스팟] “코인 살수록 美국채가 팔린다”···트럼프가 짠 4조달러 판

김현우 기자 2026. 8. 2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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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연동 코인에 국채 담보 의무화
장기채 갚으려 단기채 수요 창출
글로벌 디지털 달러망으로 패권 강화
단기 차환 리스크와 자금 이동 과제
"중간만 가자."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런 처세술을 조기 이수한 우리는 영혼 없는 끄덕임과 '모르는 척'으로 무장한 생존의 고수들이다. 퇴근길 소주 한 잔에 "오늘도 버텼다"며 스스로를 마취하고, "받은 만큼만 일한다"며 핏대 세우는 걸 훈장처럼 여긴다. 그런데 이상하다. 성공했다는 이들의 삶은 왜 우리와 이토록 딴판일까. 어쩌면 우린 그저 거대한 '펜듈럼(Pendulum)'의 진동판 위에서 시키는 대로 춤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공력을 낭비하며 '잉여 포텐셜'을 공급하는 건전지 신세로 말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덕 교과서 대신, 왜 이 지겨운 장면이 무한 반복되는지 그 메커니즘이 궁금했다. 내게 그 프리즘을 빌려준 바딤 젤란드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의 '트랜서핑' 이론을 메스 삼아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김현우의 핫스팟]을 시작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니어스 법안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준비금으로 만기 93일 이하 미 단기국채 매입을 유도했다. 재무부는 이를 장기채 바이백 재원으로 활용하며 달러 패권 확장과 국채 소화라는 이중 효과를 노린다. /챗GPT

동네에 시끄러운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폭주족 청년이 하나 있다. 그의 이름은 '암호화폐'. "기존 금융 시스템(은행)은 썩었다, 탈중앙화가 미래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매연을 뿜어댄다.

동네 유지들(미국 연방준비제도·증권거래위원회(SEC) 등)은 눈살을 찌푸렸다. 골목마다 방지턱을 높여 쫓아낼 궁리만 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동네 청년회장(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은 접근법이 완전히 달랐다. 청년회장은 오토바이를 뺏는 대신 조용히 그를 불렀다. 등을 토닥이며 새 가죽 점퍼를 입혀주더니 오토바이 뒷자리에 큼지막한 '철가방(배달통)'을 하나 매달아 주었다.

"오토바이 타는 거 폼 나더라. 맘껏 달려라. 대신 달릴 때 이 배달통 좀 싣고 다녀라. 배달료는 쳐줄게."

폭주족은 "드디어 내 자유를 인정받았다"며 더 신나게 온 동네를 누빈다. 철가방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미국 달러'와 '미국 단기국채'였다.

미국이 암호화폐라는 에너지를 억누르는 대신, 자신들의 달러 패권과 국가 부채를 떠받치는 거대한 '배달망'으로 흡수하고 있다.

러시아의 양자물리학자 바딤 젤란드가 창시한 현실 창조 철학 '트랜서핑(Transurfing)'에서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거대해지는 사상이나 시스템을 '펜듈럼(Pendulum·진자)'이라고 부른다. 펜듈럼은 누군가 자신과 싸워줄 때 발생하는 저항 에너지를 먹고 더욱 거대해진다.

과거의 미국은 달러 펜듈럼을 지키기 위해 암호화폐 펜듈럼과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때릴수록 코인 시장의 맷집과 반발력은 커졌다. 한데 지금 미국이 짜고 있는 판은 정반대다. 상대 펜듈럼을 부수는 대신 그 위에 슬쩍 올라타 자신의 목적지로 가는 동력으로 써먹는 '갈아타기'를 보여주고 있다.

철가방 속에 담긴 미국 단기국채

2025년 7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은 이 배달망 구축의 뼈대다. 코인 시장에서 달러처럼 쓰이는 '지급형 스테이블코인(USDT·USDC 등)'을 발행하려면 1달러짜리 코인을 찍어낼 때마다 진짜 1달러어치의 안전자산을 금고에 쌓아두라는 것이다.

안전자산 목록이 핵심이다. 현금도 되지만 만기가 93일 이하인 '초단기 미국 국채(T-bill)'가 핵심으로 들어간다.

법안 어디에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무조건 미국 국채를 사라"고 강제하는 조항은 없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 덩치가 커질수록 이윤을 남겨야 하는 발행사 입장에서는 이자를 주지 않는 현금보다는 안전하게 이자를 주는 초단기 국채를 사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현재 이 법은 통화감독청(OCC)·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에서 세부 시행규칙을 다듬고 있다. 본격적인 전면 시행은 2027년 초가 될 예정이다.)

여기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의 수가 등장한다. 베센트 장관은 10~30년짜리 장기 국채를 정부가 다시 사들이는 '바이백(Buy-back)' 규모를 회당 4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늘렸다. 장기채 금리가 5%를 넘나들며 모기지와 기업 대출 금리를 끌어올리자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해 장기 금리를 억누르려는 조치다.

문제는 정부가 장기채를 사주려면 재원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이다. 재무부 일반계정(TGA)을 쓸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단기국채(T-bill)를 찍어내 그 돈으로 장기채를 갚는 '트레저리 트위스트(Treasury Twist)'를 구사해야 한다. 즉 누군가는 미국 정부가 쏟아내는 단기국채를 대규모로 사줘야 한다.

그 매수 주체가 오토바이에 철가방을 매단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다.

탈달러 도구에서 달러 수출기로 전환

이 지점에서 역설이 발생한다. 비트코인은 원래 중앙은행과 달러 패권을 무너뜨리겠다며 탄생했다. 그런데 정작 코인 시장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는 달러 가치를 추종하는 스테이블코인이다. 현재 3008억 달러 규모의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테더(USDT)와 USDC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미국은 사람들에게 "달러를 믿어라, 미국 국채를 사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다. 환경만 조성하면 시장은 스스로 움직인다.

살인적인 물가 상승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 시민은 자국 페소화를 버리고 USDT를 산다. 튀르키예 무역상은 환전 수수료를 아끼려 국제 결제에 USDC를 쓴다. 아프리카 청년은 은행 계좌 대신 스마트폰 지갑에 디지털 달러를 보관한다.

이들 중 누구도 미국 재정적자를 돕겠다는 생각으로 코인을 사지 않는다. 내 재산을 지키고 송금을 싸게 하려는 목적이다. 그런데 이 수억명의 수요가 모여 스테이블코인 규모를 키우고 발행사는 그 돈으로 미국 단기국채를 사들인다.

탈달러를 꿈꾸며 올라탄 블록체인 생태계가 전 세계 구석구석으로 미국 달러와 국채를 배달하는 가상 파이프라인이 된 셈이다.

은행 예금과 스테이블코인의 영토 싸움

이 판이 짜이자 전통 은행들에서 반발이 나온다. 소비자가 은행에 1만 달러를 예금하면 은행은 대출 영업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그 돈을 빼서 1만 달러짜리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하면 은행 수익 기반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과거의 싸움이 '은행 대 암호화폐'였다면 지금의 싸움은 '은행 예금 대 스테이블코인', 즉 '누가 달러를 보관할 것인가'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예금으로 달러를 쥐고 있든 코인으로 쥐고 있든 결국 달러 시스템 내부의 경쟁이다. 블록체인이라는 새 배전망에 달러를 얹을 수 있다면 결제망을 미국 은행이 독점할 필요가 없다는 셈법이다.

단기 차환 부담과 해외 수요 창출 과제

하지만 이 설계에도 위험 요소가 있다. 차환 주기가 짧아진다. 30년 만기 국채는 한 번 발행하면 30년간 원금 상환 부담이 없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이 매입하는 3개월 만기 단기국채는 3개월마다 계속 빚을 새로 내서 갚아야 한다. 만약 단기 금리가 급등하면 미국 정부가 물어야 할 이자 비용이 급증해 재정을 압박하게 된다. 장기금리 부담을 단기 차환 위험으로 옮겨놓은 구조가 될 수 있다.

자금 대체 효과에 따른 한계도 있다. 미국 거주자가 MMF(머니마켓펀드)에 있던 1만 달러를 빼서 코인을 산다면 MMF가 국채를 팔고 코인 발행사가 국채를 사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 전체 국채 수요는 늘지 않는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분석대로 이 시스템이 효과를 내려면 미국 바깥의 해외 자본이 자국 통화를 버리고 스테이블코인으로 유입돼야 순수 신규 수요가 발생한다. 씨티그룹은 2030년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4조 달러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다. 다만 현재는 3008억 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탈중앙화를 원하고 기업은 낮은 수수료를 원한다. 미국 재무부는 단기 국채 매수처가 필요하다. 이해관계가 다르지만 달러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접점에서 이들의 이익은 하나로 맞물린다.

미국이 코인을 제도권이라는 거대한 자석으로 끌어당겨, 전 세계인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디지털 달러'를 살 때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미국 국채'까지 강제로 사게 만드는 기막힌 매트릭스를 짜놓은 것이다. 폭주족에게 배달통을 쥐여준 동네 청년회장의 웃음소리가 월스트리트 너머로 들리는 듯하다.

☞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달러 등 법정화폐와 1대 1로 가치가 고정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다.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해 가상자산 시장에서 결제·송금용 기축통화 역할을 한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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