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칩 지정학] ⑲ 딥마인드 고향 영국은 왜 SF 국가로 전락했나
옥스브리지 인재 금융·언론으로 이동
톨킨 판타지 AI 공학의 주어까지 침범

영국은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에서 기이한 위치에 있다. 데미스 하사비스를 비롯한 세계적인 연구자를 배출했고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중심으로 수학·컴퓨터과학·AI 연구의 강력한 지적 기반을 구축했다. ARM이라는 세계적인 프로세서 설계자산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18세기 산업혁명을 시작한 영국은 AI 시대에 이르러 기계를 만드는 나라에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오면 어떻게 대처할지를 토론하는 나라로 이동했다. 미국이 GPU와 클라우드를 쌓고 대만은 파운드리를, 한국은 HBM을 쌓는 동안 영국에서 태어난 설계와 연구는 실리콘과 전력, 공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해외 자본의 생산체계로 흘러들어갔다.
미국에는 엔비디아와 AMD를 비롯한 가속기 설계기업과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이라는 클라우드·운영체제(OS)·플랫폼 기업이 있다. 대만에는 TSMC를 중심으로 설계와 제조, 첨단 패키징을 연결하는 거대한 반도체 생산 생태계가 있다. 한국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구축한 메모리와 파운드리, HBM 생산능력이 있다. 영국은 다르다. 세계를 움직이는 컴퓨터 아키텍처를 연구할 두뇌는 있었지만 그것을 자국의 실리콘과 데이터센터, 전력망으로 복제하는 생산체계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다. 제조업과 기술기업이 빠져나간 자리를 금융과 언론, 정책과 철학의 언어가 채웠다. 세계적인 대학에서 배출된 엘리트들은 금융시장과 글로벌 언론, 연구기관으로 흘러갔고 AI를 둘러싼 영국의 영향력 역시 실리콘 생산량보다 담론 생산량에서 훨씬 크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AI에 권리를 부여하면 인간이 기계의 '애완견'이나 '가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기괴한 사설 하나로만 보기 어렵다. 공장을 잃은 나라의 엘리트가 기계를 만드는 대신 기계의 영혼을 토론하기 시작한 역사의 결과일 수도 있다.
ARM 만들고도 생산망은 못 만들고
그래프코어마저 해외 자본에 편입
설계에서 제조로 이어질 회로 끊겨
영국이 AI 시대에 놓친 것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기업은 ARM이다. ARM의 명령어 집합과 CPU 설계 IP는 스마트폰을 넘어 서버와 자동차, AI PC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전 세계 수많은 반도체가 ARM의 설계자산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 중요한 자산을 영국이 국가 산업체계 안에 붙잡아 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2016년 일본 소프트뱅크가 ARM을 약 320억달러에 인수했다. 손정의 회장은 이후 ARM을 엔비디아에 매각하려 했고 거래가 규제당국의 반대로 무산된 뒤 ARM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다. 본사는 케임브리지에 남아 있지만 지배주주는 소프트뱅크다. 영국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컴퓨터 설계자산이 영국 산업자본의 축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일본 자본과 미국 자본시장의 회로에 들어간 셈이다.

딥마인드는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연구성과 키운 실행환경 구글 것
두뇌와 산업주권은 끝내 분리됐다
소프트웨어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데미스 하사비스와 셰인 레그, 무스타파 술레이만이 런던에서 창업한 딥마인드는 현대 AI 연구사를 바꾼 기업 가운데 하나다. 알파고에서 알파폴드까지 이어지는 성과는 영국의 수학·컴퓨터과학 연구 기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딥마인드는 2014년 구글에 인수됐다. 지금의 구글 딥마인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AI 연구조직이지만 그 연구성과를 실제 산업으로 확장하는 컴퓨팅 기반은 영국 국가경제가 아니라 구글이라는 미국 플랫폼 안에 존재한다. TPU를 설계하고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모델을 서비스하며 클라우드에서 수익화하는 실행환경까지 미국 기업의 자본 안에서 연결된다.

옥스브리지 인재는 금융·언론으로
기술 만들기보다 사후 해석에 몰두
실리콘 빈자리엔 초지능 담론 팽창
그렇다면 영국이 보유한 막대한 지적자본은 어디로 갔을까. 상당 부분은 금융과 컨설팅, 정책기관과 글로벌 언론으로 흘러갔다. 파이낸셜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경제와 기술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정치·철학·경제학과 역사학을 공부한 엘리트들은 세계의 사건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탁월한 훈련을 받았다. 문제는 AI가 전례 없이 물리적인 산업으로 변하면서 이 전통적 강점과 산업 현실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생겼다는 점이다.
AI 데이터센터를 움직이는 것은 철학이 아니다. GPU에 공급되는 전력이고 HBM에서 SRAM으로 이동하는 데이터이며 인터커넥트의 대역폭과 패키지 내부의 신호거리다.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려면 변압기와 송전망, 냉각설비와 토지가 필요하다.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EUV 장비와 웨이퍼, 소재·부품·장비와 수율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물리적 생산기반에서 멀어질수록 AI는 다시 인간에게 익숙한 언어로 번역된다. 'AI가 생각한다', 'AI가 두려워한다', 'AI가 자신을 보존하려 한다', 'AI가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식이다. 기술의 내부를 설명하는 대신 인간의 심리와 정치철학을 기계 위에 투영한다.

판타지와 AI 공학 융합의 비극
美 기술기업도 톨킨 언어 빌려
여기서 중간점검이 필요하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기술의 관념화가 영국 안에서만 끝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서양을 건너간 순간 미국 기술산업에서는 아예 기업 이름과 기술 비전의 언어가 됐다. 대표적인 회사가 팔란티어다. 피터 틸 등이 창업한 팔란티어(Palantir)의 이름은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서 가져왔다. 작품 속 팔란티르는 멀리 떨어진 장소와 사건을 볼 수 있는 '보는 돌(Seeing Stone)'이다. 현실의 팔란티어는 정보기관과 군대, 기업의 방대한 데이터를 연결하고 분석해 상황을 파악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데이터 통합 소프트웨어가 판타지 세계에서는 모든 것을 바라보는 돌이 된다.
팔란티어에서 한 발 더 가면 안두릴이 나온다. 미국 방산기술기업 안두릴(Anduril)의 이름 역시 톨킨 세계관에서 가져왔다. 안두릴은 『반지의 제왕』에서 아라곤이 사용하는 검의 이름이다. 현실의 안두릴은 드론과 센서, 자율시스템과 군사용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한쪽에는 모든 것을 보는 돌이 있고 다른 쪽에는 적을 베는 검이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데이터베이스와 센서, GPU, 네트워크와 액추에이터가 작동하는데 인간이 붙인 이름만 보면 중간계 전쟁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앤트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도 최근 자신의 AI 정책 글에서 톨킨의 '나무수염(Treebeard)'을 불러냈다. AI 기술의 변화 속도와 정치·제도의 속도 차이를 설명하면서 느리게 판단하고 움직이는 엔트의 지도자 나무수염을 비유로 사용했다. 개별 작명이나 문학적 비유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팔란티어와 안두릴은 현실의 물리적 시스템을 만드는 기업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데이터센터와 방산기술 산업을 가진 미국조차 자신의 기술을 설명할 때 20세기 영국 판타지의 언어를 빌려온다는 사실이다.

코드는 만들어도 '스스로'는 다른 명제
목표·권한·도구가 반복경로 만들어내고
자동화가 길어진다고 목적주체 안 생겨
같은 오류는 'AI가 스스로 코딩한다'는 표현에서도 반복된다.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코딩'보다 '스스로'에 있다. LLM 입장에서 자연어와 파이썬, C++, 자바스크립트 사이에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만큼 거대한 존재론적 경계가 없다. 모두 토큰으로 변환되고 내부 표현을 거쳐 다음 토큰 확률분포에서 다시 출력된다. 코드가 특별한 마법의 언어여서 AI가 어느 순간 프로그래머로 각성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로그인 기능을 만들어라"라고 입력하면 모델은 학습된 분포와 현재 컨텍스트, 시스템 지침과 사용할 수 있는 도구에 따라 코드 토큰을 생성한다. 실행 권한이 연결돼 있으면 생성한 코드를 실행할 수 있고 오류가 반환되면 그 결과가 다시 컨텍스트에 들어가 다음 출력을 바꾼다. 이 반복이 길어지면 외부에서는 AI가 코드를 작성하고 실행하고 오류를 찾아 수정하며 '스스로 개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스템을 한 층 아래로 내려가 보면 인간이 설정한 목표와 실행환경, 권한, 평가기준과 피드백 루프가 있다.

칩 안에 '생각하는 데카르트' 없어
이코노미스트 황당 사설의 정체
기계의 인간 지배란 주어 바꿔치기
LLM 내부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이러한 의인화가 얼마나 큰 비약인지 더 명확해진다. 모델이 문장을 생성할 때 마지막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다음 토큰 후보들에 대한 점수, 즉 로짓(Logit)이다. 소프트맥스와 디코딩 과정을 거쳐 특정 토큰이 선택되고 그 토큰이 다시 입력 컨텍스트에 들어가 다음 계산을 만든다. 모델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출력했다고 해서 자신의 무지를 철학적으로 깨달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입력과 학습분포, 정렬과 시스템 지침 아래에서 그러한 토큰 시퀀스가 생성된 것이다.
생각의 사슬(Chain of Thought, CoT)도 마찬가지다. 중간 추론 토큰을 추가하면 다음 토큰을 계산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컨텍스트와 연산경로가 늘어난다. 이것을 곧바로 인간의 사색과 동일시할 근거는 없다. 물론 이것만으로 인간의 의식이 무엇인지, 미래의 기계가 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까지 결론낼 수도 없다. 그 문제는 별개다. 다만 현재 모델에서 관측된 언어적 출력을 곧바로 동일한 이름의 내적 경험에 대한 증명으로 사용하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살고 싶다"는 문장을 생성하는 능력과 실제로 죽음을 경험하는 능력 사이에는 설명해야 할 간극이 남아 있다.
이코노미스트의 '인간이 AI의 애완견이 될 수 있다'는 문장에서 먼저 검사해야 할 것은 미래예측보다 주어다. 데이터센터가 주택이나 농지와 전력을 놓고 경쟁할 수는 있다. 실제로 AI 데이터센터의 급증은 전력망과 토지, 냉각용수, 발전설비 투자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AI가 데이터센터를 원해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연구와 공장 사이 연결고리가 갈랐다
미국·대만·한국은 물리적 기반 축적
영국의 문제를 단순히 제조업 쇠퇴라고 정리하면 절반밖에 보지 못한다. 영국은 세계적인 수학자와 컴퓨터과학자, AI 연구자를 계속 배출하고 있다. 문제는 그 지적 능력을 국가의 산업자산으로 증폭시키는 생산회로가 충분히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ARM이 있었지만 소프트뱅크로 넘어갔다. 그래프코어가 있었지만 역시 소프트뱅크에 인수됐다. 딥마인드가 있었지만 구글 딥마인드가 됐다.
그 사이 미국은 GPU·클라우드·OS·AI 플랫폼을 연결했고 대만은 파운드리·EDA·IP·패키징을 하나의 제조 실행환경으로 만들었다. 한국은 HBM과 메모리, 거대한 반도체 팹을 구축했다. 영국은 뛰어난 두뇌를 계속 생산하면서 그 두뇌가 만들어낸 기술을 대량으로 복제할 물리적 산업기반을 다른 국가와 기업의 자본에 넘겨줬다. 그 빈 공간에서 금융과 언론과 철학의 언어가 비대해졌다.

韓 공장 있지만 컴퓨팅층은 얇아
둘 중 하나만 가져선 산업 안 돼
이 지점에서 영국 이야기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한국에는 영국이 갖지 못한 거대한 물리적 기반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팹이 있고 HBM이 있으며 첨단 패키징과 소재·부품·장비 산업이 있다. 발전설비와 변압기, 배전기기, 케이블과 냉각설비를 생산하는 제조업도 있다. 데이터센터를 연결할 통신망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아직 하나의 컴퓨터로 연결돼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아키텍처를 설계한다. 대만은 세계의 설계를 실리콘으로 구현한다. 영국은 뛰어난 연구자를 배출했지만 생산회로를 잃었다. 한국은 반대로 세계적인 생산회로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하나의 컴퓨팅 시스템으로 설계하는 층이 얇다. 영국의 사례가 한국에 주는 교훈은 그래서 '제조업을 지켜야 한다' 정도가 아니다. 두뇌와 공장 가운데 하나만 가져서는 부족하다.
설계→로직→메모리→인터커넥트→패키징→전력→데이터센터→소프트웨어가 하나의 피드백 루프로 연결돼야 한다. 논문이 실리콘으로 내려오고 실리콘에서 발견된 병목이 다시 아키텍처 설계로 올라가는 회로가 있어야 한다. 영국은 세계를 해석할 언어와 사람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ARM과 딥마인드와 그래프코어를 자국의 거대한 생산체계로 묶지 못했다. 그 사이 미국과 아시아는 팹과 GPU, HBM과 데이터센터를 쌓았다.

☞ AI 생산회로(AI Production Loop) = AI 연구와 알고리즘을 실제 계산능력과 산업가치로 전환하는 일련의 연결구조를 뜻한다. 아키텍처와 칩 설계에서 시작해 로직·메모리·인터커넥트·첨단 패키징을 거쳐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냉각·통신망,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까지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각 요소를 개별적으로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설계에서 발견한 요구가 제조로 내려가고, 제조와 운영에서 드러난 병목이 다시 설계로 올라오는 피드백 루프가 작동하는가다.
영국은 ARM·그래프코어·딥마인드처럼 생산회로의 중요한 상단을 만들어낼 연구자와 설계역량을 갖고 있었지만 이를 자국의 대규모 반도체 제조·패키징·데이터센터·전력 인프라와 결합하지 못했다. 반대로 미국은 GPU와 클라우드·AI 플랫폼을, 대만은 파운드리와 패키징을, 한국은 HBM과 대규모 반도체 생산능력을 축적했다. 따라서 AI 산업의 경쟁력을 논문 수나 모델 성능만으로 판단하기보다 지능을 설계하고 실리콘에 새기고 전력을 공급해 반복 생산할 수 있는 전체 회로가 존재하는지로 봐야 한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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