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빈의 스몰데이터] 가을옷 성패는 ‘9월 첫째 주’가 아닌 ‘밤 기온 22도’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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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올여름 폭염이 입추를 지나며 한풀 꺾였지만, 처서를 지나서도 무더위는 이어지고 있다.
기온이 전반적으로 오른 데다 여름내 데워진 바다가 초가을까지 열을 뿜어내며 여름의 꼬리를 붙잡기 때문이다.
가을옷이 기온에 반응하는 상품이라면, 당장 닥치는 여름 상품은 어떨까.
한여름의 소비자가 가을옷을 사지 않는 것은 아직 가을을 몸으로 느끼지 못해서고, 폭염 당일 선풍기부터 다급히 찾는 것도 같은 본능의 양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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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위 여파로 ‘니트 검색’ 5년 새 평균 11일 간 밀려
폭염 잡화 수요 수명은 단 4일…실제 날씨 아닌 ‘일기예보’에 즉각 반응하는 소비 심리
관행적인 ‘시즌 달력’의 한계… 기온과 예보 데이터 연동형 산업 시간표로 재편 시급
(시사저널=김하빈 한양대 연구조교수)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올여름 폭염이 입추를 지나며 한풀 꺾였지만, 처서를 지나서도 무더위는 이어지고 있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사이 패션 업체들의 셈법도 분주하다. 절기에 따라 맞춤형 마케팅이 이어지지만, 우리의 소비는 날씨에 따라 움직인다.
달력에 새겨진 절기는 마법이 아니라 수백 년 전 기후를 기록해 둔 관측의 산물이다. 기상청 기록을 보면 절기와 실제 기후의 간극은 이미 크게 벌어져 있다. 기상청은 '가을의 시작'을 일평균기온이 20℃ 아래로 내려간 뒤 다시 올라가지 않는 첫날로 본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서울의 가을은 1910년대 9월 15일에서 2020년대 10월 2일로 한 세기 만에 17일이나 늦어졌다. 기온이 전반적으로 오른 데다 여름내 데워진 바다가 초가을까지 열을 뿜어내며 여름의 꼬리를 붙잡기 때문이다. 절기가 어긋난 것이 아니라, 기후라는 거대한 판 자체가 이동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는 여전히 달력상의 절기를 따를까, 아니면 변해버린 날씨를 따를까. 네이버 데이터랩의 10년 치 의류 검색 지표와 기상 데이터를 나란히 놓고 소비의 이면을 추적해 보았다.
밤공기가 켜는 '소비의 온도계'
사람들이 가을옷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하는 날짜는 해마다 달랐지만, 그 무렵의 '기온'은 일정했다. 가디건 검색은 밤 기온이 22.1℃ 부근까지 내려오는 주에 어김없이 늘어났고, 트렌치코트는 21.2℃, 니트는 18.0℃, 목도리는 5℃ 부근이 명확한 기준점이었다. 10년간의 편차는 품목마다 1℃ 안팎에 불과했다. 한낮의 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밤공기가 식기 시작하면 소비자는 순서대로 가을옷을 찾는다. 옷장 속에 일종의 '온도계'가 숨어 있는 셈이다.
물론 습도나 강우량 등 복합적인 기상 요인 역시 우리의 체감 온도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그러나 이 거시적인 데이터가 증명하는 본질은, 소비의 스위치를 켜는 결정적 기준이 '고정된 달력'이 아니라 몸이 반응하는 '실제 날씨'라는 점이다.
무더위가 일상이 된 만큼 이 기준 온도도 함께 올라갔을까. 데이터를 앞뒤 5년으로 나눠 계산해도 기준 온도의 차이는 0.3℃ 안쪽이었다. 신체의 체감 온도 기준은 변하지 않았다. 늦어진 것은 온도가 아니라 날짜다. 니트 검색이 시작되는 시점은 5년 새 평균 11일(9월8일→19일) 밀렸고, 트렌치코트는 9일, 가디건은 5일 늦어졌다. 9월 밤 기온이 높았던 해일수록 트렌치코트 검색은 그만큼 늦게 시작됐고, 둘의 상관계수는 0.83에 이른다. 유통업계가 매년 겪는 가을 장사 부진은 옷에 대한 수요가 줄어서가 아니라, 옷이 필요한 기상 조건에 도달하는 시점 자체가 늦더위에 밀려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옷은 온도를, 폭염 상품은 예보를 기다린다
가을옷이 기온에 반응하는 상품이라면, 당장 닥치는 여름 상품은 어떨까. 유난히 더웠던 날 즉각 반응한 상품은 휴대용 선풍기나 쿨토시 같은 잡화뿐이었다. 냉감 침구나 여름 수면용품은 덥다고 급히 찾는 물건이 아니기에 검색이 늘지 않았다. 폭염에 냉감 침구 판매가 급증했다는 보도의 이면에는 무더위가 아니었어도 여름이 오면 자연히 늘었을 계절 효과가 섞여 있다. 반대로 제습기 검색은 폭염에 오히려 줄어든다. 한여름 소비의 대립축은 더위와 비인 셈이다.
폭염 잡화는 반응 기간도 짧았다. 더위 예보가 나오는 하루 전부터 오르기 시작해 당일 정점을 찍고, 나흘이면 잦아들었다. 이러한 단기 소비를 이끄는 것은 실제 날씨가 아니라 '일기예보'다. 더위가 도착하기도 전에, 예보만으로 검색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이 패턴을 '투영편향(projection bias)'으로 묶는다. 지금 몸의 상태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여기는 착각이다. 미국의 의류 카탈로그 연구에 따르면 주문 당일이 추울수록 방한용품의 반품 비율이 치솟았다(Conlin 외, 2007). 며칠 뒤 날이 풀리면 금세 마음이 바뀌는 것이다. 한여름의 소비자가 가을옷을 사지 않는 것은 아직 가을을 몸으로 느끼지 못해서고, 폭염 당일 선풍기부터 다급히 찾는 것도 같은 본능의 양면이다.
달력에 갇힌 시간표를 재조정하라
실제 판매 데이터를 다룬 해외 연구에서도 가을 기온이 높은 해에는 가을·겨울 의류 매출이 실제로 감소해(Bertrand & Brusset, 2020), 검색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이 결과는 패션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계절을 파는 산업은 유통이든 가전이든 모두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업계의 시즌 운영은 여전히 달력의 숫자에 맞춰져 있다. 정해진 날짜에 신상품을 내고, 물량을 채우며, 할인에 들어가는 식이다. 소비자는 날씨에 반응하는데 기업의 운영 방식은 여전히 낡은 달력에 묶여 있는 것이다.
물론 소비자의 눈에 띄려면 상품 정보는 미리 쌓여 있어야 한다. 결국 심는 일과 거두는 일을 분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씨는 달력대로 미리 뿌리되, 대규모 물량과 광고 예산의 승부처는 '9월 첫째 주'가 아니라 '밤 기온 22℃가 예보되는 주'로 유연하게 잡아야 한다. 성과를 읽는 눈도 마찬가지다. '전년 대비 부진'이라는 숫자에서 날씨의 몫을 가려내야 비로소 실력이 보인다. 날씨 예보를 판매 예측에 반영할 때 이커머스의 운영 성과가 개선된다는 점(Steinker 외, 2017)도 이를 뒷받침한다.
옛사람들은 수백 년의 온도를 관측해 달력에 절기를 새겼다. 그 달력이 현실과 맞지 않다면, 지금의 기후에 맞춰 새롭게 기준을 세우는 것이 관측의 본질이다. 서울의 낮 기온 30℃ 초과일이 1980년대 27일에서 2020년대 55일로 두 배나 급증한 현실에서, 기후의 흐름이 되돌아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5년 만에 11일이나 벌어진 간격은 앞으로 더 벌어질 공산이 크다. 올해 가디건의 절기가 언제 도착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작년보다 빠르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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