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6·25 때도 교과서 인쇄는 계속됐다…‘민족기업’ 미래엔의 교과서박물관 [중기+]

홍석희 2026. 8. 2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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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찾은 세종시 미래엔 세종공장.

대한교과서(현재 미래엔)는 6·25가 발발하자 부산으로 회사 인쇄 설비들을 옮겨 전시 교재 4종 12책을 생산했다.

활자를 한 자씩 맞추던 시대에서 거대한 카메라로 원고를 촬영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 미래엔 세종공장에서는 컴퓨터가 생산정보를 관리하고 자동화 설비가 교과서를 찍어낸다.

"최우량 교과서를 최저 가격으로 최단 시일에 생산 공급한다" 김기오 창립자가 이념으로 내세운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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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엔 세종공장 입구 좌측에 위치한 교과서 박물관. 이곳엔 미래엔이 소유한 ‘월인천강지곡’의 영인본과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의 자필 이력서가 전시돼 있다. [홍석희 기자]
국보 ‘월인천강지곡’ 주시경 친필 이력서·6·25 전쟁기 교재까지 한자리에
북한 ‘심리학초보’ 교과서도…마지막 전시실엔 인쇄·제판 기계 빼곡
신간회 활동 독립운동가 창업주 김기오…정부도 ‘독립운동가’로 소개
‘월인천강지곡’은 세종이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해 지은 찬불가로 1447년께 제작됐다. 지난 1963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2017년 국보로 승격됐다. 월인천강지곡을 소유한 미래엔은 영인본을 세종공장 교과서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홍석희 기자]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최근 찾은 세종시 미래엔 세종공장. 공장 입구 좌측에 자리 잡은 ‘교과서박물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은 것은 국보 320호인 ‘월인천강지곡’ 영인본이다. 이는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직후 지은 작품인데 세종이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해 지은 찬불가로 1447년께 제작됐다. 1책 71장으로 전해지는 원본의 소유자는 미래엔이며, 현재 소재지는 판교로 알려져 있다. 지난 1963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2017년 국보로 승격됐다.

미래엔측 관계자는 “월인천강지곡 원본이 향후 세종시에 건립되는 박물관에서 전시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과서의 역사를 보러 들어온 박물관에서 한글 창제 초기의 기록부터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이 작성한 본인 소개 이력서. 모든 글자들이 기계에서 뽑혀 나와 인쇄된 듯 반듯반듯 하다. [홍석희 기자]

몇 걸음 옮기자 이번에는 글씨 하나가 발길을 붙잡았다.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의 친필 이력서다. 가까이 다가가 유리장 안을 들여다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사람이 쓴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다. 글자 크기와 간격이 기계가 쓴 듯 동일하다. 먹으로 직접 적은 글인데도 인쇄기에서 막 뽑아낸 활자처럼 반듯하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체계화하는 데 평생을 바친 학자의 이력서를 그의 글씨 자체가 설명하는 듯했다.

이후엔 1940년대 공책과 오래된 교과서, 학생들이 받았던 상장이 차례로 나타난다. 유리장 안에 놓인 낡은 공책에는 당시 학생이 연필로 눌러쓴 글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시간이 1950년대로 넘어가면 전시물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6·25 전쟁 한복판에서도 학생들은 책을 폈다. 전시장에는 전쟁 중 초등학생들이 사용한 공책이 놓여 있다. 내용은 불과 5~6쪽밖에 되지 않는다. 종이 한 장이 귀했던 당시 학교생활을 말보다 선명하게 보여준다.

6·25 전쟁이 진행중이던 1952년 당시 생산됐던 교과서. 미래엔은 인쇄 설비를 부산으로 가져가 교과서를 인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질좋은 교과서를 저렴한 가격에 제 때 공급한다는 것이 독립운동가이자 대한교과서(현 미래엔)의 창립자 김기오 선생이 세운 창립 이념이다. [홍석희 기자]

전쟁은 교과서 인쇄는 멈추지 못했다. 대한교과서(현재 미래엔)는 6·25가 발발하자 부산으로 회사 인쇄 설비들을 옮겨 전시 교재 4종 12책을 생산했다. 폭격과 피란이 이어지던 시기에도 누군가는 활자를 맞추고 인쇄기를 돌려 학생들이 볼 책을 만들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지나면 부모 세대에게 익숙한 풍경이 등장한다. 키가 낮은 나무책상과 의자, 교탁과 칠판을 배치해 당시 교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바른 생활’, ‘말하기·듣기’ 같은 1980년대 교과서를 지나 최근 교과서가 전시된 공간에 도착하면 색감부터 달라진다. ‘국어’, ‘사회’, ‘과학’, ‘도덕’, ‘실험관찰’ 표지는 그림책을 연상시킬 정도로 화려하다. 몇십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누렇게 바랜 종이에서 형형색색의 교과서까지 한국 교육 70여년의 변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미래엔 세종공장에 설치된 교과서박물관에는 북한의 교과서도 전시돼 있다. [홍석희 기자]

한쪽 전시장에선 의외의 교과서도 있었다. 북한 교과서다. ‘심리학초보 5’. 1997년 발행된 북한 고등학교 교과서다. ‘지리’, ‘전자공학기초’ 등 북한 학생들이 실제 배웠던 책들도 함께 놓여 있다. 특히 ‘심리학초보’라는 제목은 국내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익숙한 관람객이라면 한 번쯤 다시 표지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왜 교과서박물관이 북한 교과서까지 모아놓았을까. 현장 관계자는 “언젠가 통일이 됐을 때 남북 학생들이 서로 어떤 말을 쓰고 무엇을 배워왔는지를 알아야 말이 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엔 남북관계가 경색돼 북한 교과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도 했다.

박물관 관람의 마지막은 책을 만들었던 기계들이 전시장이다. 인쇄기계 전시공간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단숨에 바뀐다. 앞선 전시장에서 작고 얇은 책을 들여다봤다면 이곳에서는 사람 키보다 큰 검은색 철제 장비들이 관람객을 내려다본다. 활판 인쇄기와 수동 사철기, 제판 장비 등 과거 교과서 제작현장을 지켰던 기계들이 줄지어 서 있다.

1950~1960년대 사용된 활판 인쇄기는 녹이 슨 톱니바퀴와 체인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옆에는 인쇄물을 사람이 직접 실로 꿰매 제본하던 수동 사철기가 놓였다. 종이가 들어가 책으로 나오는 오늘날 자동화 설비와 비교하면 책 한 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교과서 박물관에서 가장 큰 기계 인쇄 설비는 독일산 크림쉬 카메라다. 과거엔 이를 활용해 단판 촬영을 진행했다. [홍석희 기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독일산 ‘크림쉬(Klimsch) 카메라’다. 거대한 검은 몸체에 기다란 레일과 주름진 암막이 붙어 있다. 1960~1980년대 단판 촬영에 주로 쓰였고 전자 색분해기가 등장하기 전에는 원고의 4색 분해 작업에도 활용했던 장비다.

활자를 한 자씩 맞추던 시대에서 거대한 카메라로 원고를 촬영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 미래엔 세종공장에서는 컴퓨터가 생산정보를 관리하고 자동화 설비가 교과서를 찍어낸다. 만드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럼에도 1948년 창립 당시 내걸었던 창립 이념 문장은 박물관을 다 돌아본 뒤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는다.

“최우량 교과서를 최저 가격으로 최단 시일에 생산 공급한다” 김기오 창립자가 이념으로 내세운 문구다. 창립자는 ‘교육입국’과 ‘출판보국’을 내걸고 출발했다. 78년 전에는 활판 인쇄기를 돌렸고 6·25 전쟁 때는 부산으로 내려가 교과서를 만들었다. 이후 제판 카메라와 자동 인쇄기를 거쳐 지금은 디지털 데이터까지 관리한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배웠던 바른생활 교과서. [홍석희 기자]

한편 미래엔의 창립자 김기오(1900년생) 선생은 일제강점기 언양청년회와 울산기자단 등에서 활동하며 주민 계몽과 항일운동에 나섰고 신간회 양산지부와 서울 경동지회에서도 활동했다. 광복 후인 1948년엔 김기오를 비롯한 출판인 10명이 발기해 세운 대한교과서주식회사가 오늘날 미래엔의 전신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미래엔을 제2회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하면서 김기오를 “독립운동가 우석 김기오 선생”으로 소개했다.

최근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했던 카메라. 현장 관계자는 “내가 이 기계를 직접 사용했었다”며 애정을 표하기도 했다.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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