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옥수수 밭이 된 신흥무관학교 터...잊힌 만주지역 '독립운동' 사적지를 가다

구현모 2026. 8. 2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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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중국 지린성 퉁화시에 위치한 부강향 마을.

24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에 위치한 독립운동 사적지는 총 244곳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 남은 독립운동가들은 군사훈련, 고등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에 매진했으며 '영릉가 전투', '15만 원 탈취 사건' 등 눈부신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박 이사장은 "인지도가 낮은 독립운동가나 사적지는 보존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정부가 중국 당국과 항일 공동의 역사에 대한 발굴 및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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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국외보훈사적지 답사 동행
중국 랴오닝성·지린성 15개 사적지 답사
비석, 표지판 없어 사적지 식별 어려워
만주지역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 제고해야
17일 국가보훈부 국외보훈사적지 답사단이 방문한 길림성 퉁화현의 배달학교 7열사 묘. 다롄·옌지=구현모 기자

"전체 묵념"

17일 중국 지린성 퉁화시에 위치한 부강향 마을. 사람 키보다 높이 자란 옥수수 밭 사이로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음악이 흘러나왔다. 1920년 경신참변으로 일제에 의해 희생된 배달학교 교사 등 7명이 묻힌 '7열사 묘'가 있는 곳이다. 이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국외보훈사적지 답사차 방문한 한국 고등학생들은 흐트러짐 없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옥수수 밭에 둘러싸인 진입로는 사람의 발길이 끊긴 듯 흔적을 찾기 어려웠고 7개의 얕은 무덤과 추모비는 우거진 수풀에 거의 가려져 있었다.

배달학교는 1918년 평안북도 정주 출신 독립운동가 조용석 열사와 남만주 한인 조직 한족회가 설립한 민족학교다. 수많은 애국청년을 배양했으며 군사교육도 병행했던 곳으로 전해졌다. 일제는 봉오동·청산리 전투 패배에 대한 보복으로 만주지역 동포사회를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경신참변'을 일으켰는데 배달학교가 있던 '배달촌'도 비극을 피해 가지 못했다. 1920년 11월 3일 일제 토벌대는 조용석 교장, 김기선 교감, 조용주 교사와 한족회 자치회원이었던 조동호, 승대언, 승병균, 최찬화, 김기준 등을 인근 야산으로 끌고 가 무참히 살해했다.

답사단과 동행한 독립운동사학자인 박환 고려학술문화재단 이사장(전 수원대 교수)은 "이들의 독립유공 포상은 1990년대 초 이뤄졌지만 묘는 1996년에야 조성됐다"며 "한국 정부가 아니라 희생자들의 후손이 조성한 묘소"라고 말했다.

국가보훈부의 2026 국외보훈사적지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등학생 45명이 배달학교 7열사묘를 바라보며 묵념을 하고 있다. 다롄·옌지=구현모 기자

24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에 위치한 독립운동 사적지는 총 244곳이다. 중국 내 사적지 중 절반이 동북 3성에 모여있지만 알려졌거나 잘 보존되어 있는 사적지는 많지 않다. 일본이 당시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이후 보복으로 한인사회에 대한 학살극을 자행하면서 독립운동이 위축됐고, 이후 이 지역 독립운동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 남은 독립운동가들은 군사훈련, 고등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에 매진했으며 ‘영릉가 전투’, ‘15만 원 탈취 사건’ 등 눈부신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한국일보는 2026 국가보훈부 국외보훈사적지 답사에 동행해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1920년대 만주지역 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봤다.


흔적도 남지 않은 항일 무장투쟁

중국 지린성 유하현에 위치한 신흥강습소의 터. 현재는 비석이나 표지판 없이 작은 우물 하나만 남아있다. 다롄·옌지=구현모 기자

1910년대 독립전쟁론의 산실은 '신흥무관학교'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과 우당 이회영 선생 일가가 주축인 경학사를 중심으로 설립됐다. 신흥무관학교의 뿌리인 길림성 유하현 삼원포의 '신흥강습소' 터에는 작은 우물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우물 뒤쪽으로는 경학사가 결성된 '대고산'이 있고 산 밑은 온통 옥수수 밭뿐이었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의 눈을 피해 산 깊숙한 골짜기로 이동하게 되는데 중국 지린성 퉁화현 광화진의 합니하 신흥무관학교 터다. 퉁화 시내에서 차로 한 시간 떨어진 곳으로 '합니하'라는 하천이 흐르고 있다. 박환 이사장은 하천 오른편의 언덕을 가리키며 "내무반 건물 같은 곳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여름에는 훈련을 마치고 하천에서 몸을 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표지석 하나 남아있진 않지만 역사적 사실을 알고 현장을 보니 당시 교육과 훈련이 이뤄지던 모습들이 머리에 그려졌다.

지린성 퉁화현 광화진에 위치한 신흥무관학교 터. 왼쪽에는 '합니하'라는 하천이 흐르고 있고 오른쪽 옥수수 밭 위에 신흥무관학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롄·옌지=구현모 기자

1920년대 들어 일제의 탄압으로 신흥무관학교는 대부분 폐교됐지만 무장투쟁의 명맥은 끊기지 않았다. 1932년 양세봉 장군이 이끄는 조선혁명군과 중국의용군이 연합해 일본 관동군과 만주국 군대를 상대로 승전을 거둔 '영릉가 전투'가 대표적인 사건이다. 오늘날의 영릉가는 평지지역으로 왕복 4차선 도로와 4~5층 높이 상가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대부분 독립군은 산 깊숙한 곳으로 일제를 유인해 싸웠지만 이곳에서는 시가전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성남외고 1학년 강지호군은 "봉오동·청산리 전투 외에도 만주 여러 지역에서 전투가 있었다는 걸 이번 답사를 통해 알게 돼 많은 걸 느꼈다"라고 말했다.

중국 랴오닝성 신빈현에 위치한 영릉가. 다롄·옌지=구현모 기자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모티브가 됐던 '간도 15만 원 탈취사건'의 기념비와 주역 최봉설 의사의 거주지 터도 지린성 룽징주 룽징(용정)시와 옌지(연길)시에 남아있었다. 다만 거주지 터에는 표지판이나 비석 없이 폐가만 자리를 지켰다.


중국 민족단결법 시행, "사적지 보존 노력 강구해야"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일아감옥구지박물관 내 안중근 의사가 수감됐던 장소. 다롄·옌지=구현모 기자

이번 답사 중 시내에 위치한 주요 사적지에서는 외국인이 직접 해설하는 것이 금지됐다. 이는 중국이 7월부터 시행한 민족단결진보촉진법(민족단결법) 때문이다. 민족단결법은 교육기관 등에서 중국어 대신 소수민족의 언어가 우선시되는 걸 막고 민족 분열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이다.

주요 사적지에 대한 '스토리텔러' 역할로 동행한 박 이사장도 주요 사적지에서는 해설을 하지 못했고 박물관은 주로 중국어로만 표기돼 있어 내용을 알기 어려웠다. 다만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았던 다롄시 관동지방법원에서는 조선족인 현지인이 서툰 한국어로 해설을 해주고 있었다. 그는 안 의사의 공판을 설명하며 "결론이 정해진 형식적인 재판이었지만 이 법정은 일제의 죄를 공론화하는 자료로 유용하게 사용된다"고 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은 없었지만 우리 독립운동사에 대한 상세한 설명보다는 일제의 잔혹성 등에 초점이 맞춰진 모습이었다.

안중근·신채호·이회영 등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됐던 뤼순감옥(뤼순일아감옥구지박물관)에도 변화가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했던 사형장 내 전시시설도 다소 간소화됐고 신채호 선생이 수감됐던 곳에 대한 표지판도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린성 룽징시 명동촌 내 윤동주 시인 생가의 표지판은 남아있지만 윤동주 시인의 사촌인 독립운동가 송몽규 생가 표지판은 보이지 않았다. 박 이사장은 "인지도가 낮은 독립운동가나 사적지는 보존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정부가 중국 당국과 항일 공동의 역사에 대한 발굴 및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롄·옌지= 구현모 기자 nine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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