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형의 닥터 사이언스] ‘고된 노동’ 대신하는 로봇, 우주 정비에 뛰어들다

박건형 미래기획부장 2026. 8. 24. 23: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주 비행사 네 명이 목숨 걸고 고쳐 살려낸 허블 우주 망원경
이제 로봇이 추락 우주선 붙잡고, 우주 쓰레기도 치우는 시대로
일러스트=이철원

1990년 4월 발사된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에는 대형 버스 크기의 첨단 장비가 실렸다. ‘우주를 보는 지구의 눈’으로 불리는 허블 우주망원경이다. 지구 대기 영향이 없는 610㎞ 상공에서 먼 우주를 훨씬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기대는 곧 무너졌다. 15억달러짜리 망원경이 보내온 사진은 흐릿하고 뿌옇기만 했다. 지름 2.4m에 이르는 망원경의 주경(主鏡) 연마 오류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3년이 넘는 고민 끝에 NASA가 찾아낸 해결책은 주경에 새 보정 광학계(COSTAR), 즉 특수 안경을 씌우는 것이었다. 우주왕복선 인데버가 임무를 맡았다. 1993년 12월, 우주비행사 네 명이 번갈아가며 다섯 차례 인데버 밖으로 나가 허블 망원경의 부품을 교체하고 광학계를 갈아 끼웠다. 35시간 28분에 걸친 우주 공간에서의 정비 작업이었다.

16m 길이 안전줄에 목숨을 맡긴 우주 정비사들의 노력은 우주에 대한 인류의 지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허블 망원경은 138억년이라는 우주의 나이를 밝혀냈고, 보이지 않는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확인했다. 허블 데이터를 활용한 논문은 2만3000편 이상, 인용 수는 140만회에 이른다.

우주왕복선과 용감한 정비사만 있다면 무엇이든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3년 일곱 명의 승무원을 태운 컬럼비아가 폭발하면서 2011년 우주왕복선이 모두 퇴역했기 때문이다. 대규모 정비 장비나 교체 부품을 실어나를 수단이 사라지자 과학자들은 지상에서 소프트웨어를 원격 업데이트하는 것 외에는 우주선이나 위성에 손을 쓸 수 없게 됐다.

카탈리스트 스페이스 테크놀로지스의 로봇 우주선 링크(왼쪽)가 스위프트 우주망원경과 결합해 지구 상공의 더 높은 궤도로 운반하는 모습의 상상도. /NASA

지난달 3일 새로운 우주 시대의 시험대가 열렸다. 정비사는 사람이 아닌 미국 기업 카탈리스트의 로봇 우주선 ‘링크(LINK)’, 구조 대상은 NASA의 우주망원경 ‘스위프트’였다.

별의 마지막 순간인 감마선 폭발을 관측하기 위해 5억달러를 들여 2004년 발사된 스위프트는 임무 궤도가 지상 600㎞였지만, 최근 360㎞까지 낮아졌다. 태양의 고에너지 입자에 밀려 내려온 것이다. NASA와 카탈리스트는 링크의 로봇 팔 세 개로 스위프트를 잡은 뒤 엔진을 점화해 원래 고도까지 밀어 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링크 제작 및 운용 비용은 3000만달러였다.

시속 2만7000㎞로 날고 있는 스위프트를 우주 공간에서 로봇이 낚아채 소생시키는 영화 같은 장면은 실현되지 않았다. 발사 직후 링크가 자세를 잡지 못하고 계속 회전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2주간의 노력 끝에 이를 제어하는 데 성공했지만 실제 임무는 수행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촉박한 기한 때문에 프로젝트를 서두르면서 반작용 휠 부품 검증이 충분치 않았던 것이 실패 원인으로 꼽힌다. 조난을 피하지 못한 스위프트는 곧 대기권으로 추락해 산화한다.

링크의 실패는 성장통에 가깝다. 로봇의 등장은 ‘일단 발사하면 끝’이던 우주 탐사의 패러다임을 ‘고쳐 쓰고, 뒷정리까지 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있다. 지난달 발사된 미국 방산업체 노스럽그러먼의 정비 로봇 MRV는 3만6000㎞ 상공에 있는 통신 위성 ‘옵투스 D3’로 향하고 있다. 호주·뉴질랜드를 커버하는 옵투스 D3는 발사 17년이 지나 전력이 바닥난 상태다. MRV는 3m 길이 로봇 팔 두 개로 옵투스 D3에 전기 추진기를 장착해 수명을 6년 이상 늘릴 계획이다. 로봇 정비 비용은 새 위성 발사 비용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노스럽그러먼은 MRV가 매년 20~25기의 정지 궤도 위성을 정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은 위성에 연료를 보충하는 우주 로봇 주유소 프로젝트를 시험하고 있고, 스위스 클리어스페이스는 올해 안에 고장 난 위성을 궤도에서 치우는 견인 로봇을 발사한다.

1920년 차페크의 희곡에 처음 등장한 ‘로봇’이라는 단어는 ‘고된 노동을 대신하는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우주 정비야말로 로봇의 원뜻에 가장 걸맞은 일 아닐까. 로봇은 인류가 막 닻을 올리기 시작한 우주 대항해 시대를 얼마나 앞당겨줄까. ‘스타워즈’에서 우주선을 고치던 R2-D2, 버려진 행성 쓰레기를 홀로 치우던 월-E 같은 로봇 정비사를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